안세영이 또 일 냈다... 역사상 이런 여자 배드민턴 선수는 없었던 이유
2025-10-26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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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단식 역사상 가장 지배적인 시즌... 천적 천위페이 꺾고 결승 진출

코트 위에 쓰러진 두 올림픽 챔피언. 25일(한국시각) 프랑스 세송 세비녜 글라즈 아레나에서 87분간 펼쳐진 격전 끝에 안세영과 천위페이는 모두 바닥에 누워 숨을 몰아쉬었다. 파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대결. 이날 승자는 안세영이었다. 세계선수권 패배의 악몽을 떨쳐내고 '천적'을 넘어섰다.
배드민턴 여자 단식 세계 랭킹 1위 안세영은 이날 프랑스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750 프랑스오픈 준결승에서 중국의 천위페이(5위)를 2-1(23-21 18-21 21-16)로 제압했다. 이로써 안세영은 천위페이와의 상대 전적에서 14승 14패로 균형을 이뤘다.
안세영은 대회 전날 8강에서 중국의 가오팡제를 상대로 위기를 겪었다. 1게임을 17-21로 내준 안세영은 2게임 초반 1-6으로 밀리며 고전했지만, 이후 21-11, 21-18로 역전승을 거뒀다. 준결승 진출까지 이미 상당한 체력을 소모한 상태였다.
천위페이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를 꺾고 올라왔다. 천위페이는 8강에서 세계선수권 챔피언 야마구치 아카네를 3게임 접전 끝에 제압하며 4강에 진출했다. 두 올림픽 챔피언의 대결은 시작 전부터 치열한 접전이 예고됐다.

안세영에게 천위페이는 넘어야 할 산이었다. 지난 8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5 세계개인배드민턴선수권 준결승에서 안세영은 천위페이에게 0-2(15-21 17-21)로 완패했다. 당시 안세영은 경기 후 "솔직히 멍청하게 플레이한 것 같다. 실수하는 게 두려웠다"며 "준비는 매우 잘했지만 내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세계선수권 2연패 도전이 좌절된 뼈아픈 기억이었다.
세계선수권 준결승에서 천위페이는 안세영의 여러 비강제 실책을 정확한 스매시로 파고들었고, 2게임에서는 발목 부상을 당하고도 기적적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려 역전승을 거뒀다. 그날의 패배는 안세영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다.
이날은 달랐다. 1게임은 박빙의 승부였다. 리드가 여러 차례 바뀌며 팽팽한 접전이 펼쳐졌다. 양 선수는 14번이나 동점을 기록하며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공방을 이어갔다. 20-20 상황에서 안세영이 먼저 실점하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후 3점을 연속으로 따내며 23-21로 첫 게임을 가져갔다. 듀스 상황에서 정신력이 빛을 발했다.
2게임에서 천위페이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2게임을 21-18로 따내며 최종 3게임으로 승부를 끌고 갔다. 2게임 초반 천위페이가 리드를 잡았지만 안세영이 10점을 연달아 쓸어 담으며 13-8로 뒤집었다. 그러나 막판 천위페이가 5연속 득점을 올리며 21-18로 역전에 성공했다. 경기는 진흙탕 싸움으로 접어들었다.
3게임에서 천위페이는 더 집중된 모습을 보이며 3-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안세영이 흐름을 되찾았다. 앞선 두 게임에서 치열하게 몸을 날린 안세영은 땀으로 흠뻑 젖은 채 무릎을 짚고 잠시 숨을 고르기도 했다.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었지만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앞서가는 천위페이를 끈질기게 추격하며 세 차례 동점을 만들어낸 안세영은 14-13으로 흐름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 잠시 2점을 내줬지만 곧바로 5점을 연속 득점하며 20-15로 승기를 확실히 잡았다. 안세영은 날카로운 대각 공격으로 천위페이의 허를 찔러 마지막 게임 포인트를 따냈다.
승리가 확정되자 안세영은 라켓을 던지고 코트 위에 누워 기쁨을 만끽했다. 네트 반대편에서는 27세의 천위페이도 잠시 바닥에 누워 있다가 악수를 위해 일어났다. 두 올림픽 챔피언은 모든 것을 쏟아부은 87분간의 혈투 끝에 지쳐 있었다.
안세영은 지난 14~19일까 덴마크 오덴세에서 열린 BWF 월드투어 슈퍼 750 덴마크오픈을 제패했다. 덴마크오픈 결승에서 안세영은 중국의 왕즈위를 2-0(21-5 24-22)으로 꺾고 8번째 시즌 타이틀을 획득했다. 덴마크오픈 우승 후 이틀 만에 프랑스오픈에 참가한 안세영은 짧은 회복 기간에도 불구하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결승까지 올라왔다. 이번 대회는 안세영의 시즌 11번째 준결승 진출이었다.
안세영은 결승에서 다시 왕즈위(2위)와 맞붙는다. 왕즈위는 준결승에서 같은 중국 선수인 한웨(4위)를 2-1(21-14 20-22 21-14)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이는 2년 연속 두 선수가 덴마크오픈 결승에서 만난 데 이어 프랑스오픈에서도 재회하는 것이다.
덴마크오픈 결승에서 안세영과 왕즈위의 2게임은 41랠리의 긴 공방전으로 진행됐고, 모든 기술이 총동원된 장면이 펼쳐졌다. 이번 프랑스오픈 결승에서도 비슷한 명승부가 예상된다.
안세영이 왕즈위를 넘어서면 올해 9번째 국제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게 된다. 2025시즌 안세영의 우승 행진은 배드민턴 여자 단식 역사상 가장 지배적인 시즌 중 하나로 기록될 전망이다. 1월 말레이시아오픈과 인도오픈을 시작으로 3월 올리앙 마스터스, 전영오픈, 6월 인도네시아오픈, 7월 재팬오픈, 9월 차이나 마스터스, 그리고 최근 덴마크오픈까지 우승 행진을 이어온 안세영이 프랑스오픈에서도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왕관을 지켜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안세영의 올 시즌 8회 우승은 여자 배드민턴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보기 드문 기록이다. BWF가 2018년부터 도입한 월드투어 체계 이후 한 시즌 7회 이상 우승한 여자 단식 선수는 안세영이 유일하다. 과거 시스템에서 우승을 쌓은 전설적인 선수들도 지금처럼 대회가 많고 일정이 빽빽한 환경에서 이 정도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