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장병 휴가·외출 때 모습, 앞으론 완전히 바뀐다
2025-10-2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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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상징 베레모 역사 속으로... 지난달부터 휴가 때도 전투모와 혼용

14년간 육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던 베레모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2011년 '강인한 이미지'를 내세우며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폭염과 통풍 불량으로 장병들의 원성을 산 끝에 결국 퇴장을 맞게 됐다. 육군은 베레모의 단계적 폐지를 추진하며, 2027년에는 전투모를 기본 군모로 전환하는 역사적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26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육군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육군은 지난달부터 베레모와 전투모 혼용 확대를 시범 적용 중이며, 2027년에는 전투모를 기본 군모로 지정해 보급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베레모는 원래 프랑스와 스페인의 피레네 지방에서 유래한 유럽 전통 모자로, 20세기 들어 영국군이 군모로 채용하면서 세계 각국 군대의 상징이 됐다. 한국군에서는 1960년대 초 특전사가 처음으로 베레모를 도입해 공식 착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해군 UDT/SEAL, 해병대 수색대, 공군 SART 등 특수부대들도 1970년대 이후 베레모를 착용하면서 한국에서 베레모는 특수부대의 상징과도 같은 군모가 됐다.
육군이 전 장병에게 베레모를 보급한 것은 2011년이다. 당시 육군은 디지털 무늬 위장복 보급과 함께 기존 근무모와 전투모를 폐지하고 흑록색 베레모를 도입했다. 육군은 '강인한 인상을 줄 수 있고, 더욱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챙 있는 전투모에서 베레모로 군모를 변경했다. 특전사 대원의 검은색 베레모와의 차별화를 위해 흑녹색을 채택했다.
그러나 베레모 도입 당시에도 일부 육군 장성들은 '덥고 습도가 높은 몬순기후의 여름날씨와 유럽에 비해 일조량이 높은 한반도 기후에 베레모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베레모 보급 직후부터 장병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챙이 없어 햇볕을 막지 못하는 데다 소재가 100% 모(毛)인 까닭에 통풍이 전혀 안 돼 장병들이 불편을 호소하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2011년 도입 당시 육군이 전 장병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베레모 착용에 압도적 찬성 의견이 나왔지만, 실제 착용 후 평가는 정반대였다. 육군이 2015년부터 해마다 장병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베레모 착용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70%를 넘었다.
올해 1월 육군이 1사단 등 8개 부대 17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봐도 베레모보다 전투모를 선호하는 장병이 93%였으며, 전투모로 군모를 단일화하는 데 찬성한 비율도 65%나 됐다.
베레모가 전통과 상징성은 있으나 점점 폭염이 심해지는 여름철에 착용·관리가 어렵고, 전투 시에는 방탄 헬멧을 착용하므로 전투력 향상에도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소재가 100% 모로 돼 있어 온도와 습도가 높은 여름철에는 불쾌한 냄새까지 유발했고, 가죽끈 재질에 대한 불만도 높았다.
예산과 조달 문제도 있다. 베레모와 전투모를 함께 착용함에 따라 예산도 중복 투입되고 있다. 베레모는 개당 6830원, 전투모는 6300원이며 지난해 베레모 조달금액은 11억원이었다. 또한 현재 베레모 제작 업체는 단 한 곳인데, 조달 지연이 빈번하고 품질 개선도 제한적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육군은 베레모 및 전투모 착용 지침을 꾸준히 개선해왔다. 2020년 3월에는 베레모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전투모를 '특수군모'로 도입했고, 같은 해 8월에는 흐리고 비 오는 날이면 영내에서 전투모를 쓸 수 있도록 했다. 2021년 2월에는 휴가와 외출·외박 등을 제외하고 영내·외에서 전투모를 착용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지침 개선 후에도 베레모와 관련한 민원이 지속하자 베레모의 단계적 폐지를 골자로 하는 기본군복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혹서기에는 외출·외박 시 부대 위병소만 나가면 더위에 베레모를 벗는 장병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이에 육군은 지난달부터 1단계로 휴가와 외출·외박 때도 베레모와 전투모를 혼용할 수 있도록 시범 적용 중이다. 11월까지 시범 적용 결과를 바탕으로 국방부에 군인복제령 개정을 건의할 계획이다. 이후 2단계로 2027년 기본군복 개정 후 전투모 보급을 1개에서 2개로 늘리는 것을 추진한다.
육군의 베레모 폐지 추진은 미군의 전철을 따라가는 것이기도 하다. 미 육군은 2001년 사기 진작 차원에서 육군 전체가 검은색 베레모를 착용하도록 했다. 당시 검은색 베레모를 쓰던 레인저 부대가 크게 반발했지만, 베레모 전 육군 도입을 추진하던 육군참모총장 에릭 신세키 장군이 레인저 출신이었기 때문에 강하게 반대하지는 못했다. 결국 검은색 베레모가 육군의 평상시 군모가 됐고 레인저는 모래색으로 바꿨다.

그러나 미 육군은 2011년 6월 장병들의 선호도 조사를 토대로 10년간 착용해온 베레모를 포기하고 전투모(패트롤캡)로 다시 변경했다. 베레모의 전군 착용은 특별히 전통이 있는 관습도 아니고, 실용적인 측면에서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10여 년간 베레모에 대한 불만 제기가 줄기차게 이어졌던 것이다.
한국 육군은 미군이 베레모를 도입하자 따라서 채택했지만, 정작 미군이 불편하다고 다시 폐지하는 시점에 아무 생각 없이 도입하는 환상적인 타이밍을 보여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제 14년 만에 다시 전투모로 회귀하면서 2011년 당시 베레모 도입이 졸속 추진이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박 의원은 "불편한 군모 착용을 강요하기보다 장병들이 편하게 쓸 수 있는 군모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한 군의 역할"이라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반영해 베레모를 폐지하고, 육군의 상징성을 살린 새 군모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