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변화 시작... 공무원들도 내년 5월에 5일 연속 쉴 수도

2025-10-2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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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공무원들도 쉰다... 달력에 '빨간 날' 추가
'노동절'로 이름 복원... 정부, 법정공휴일도 추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사진.

64년간 사용돼온 '근로자의날'이라는 이름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회가 26일 본회의에서 매년 5월 1일을 '노동절'로 지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1963년 이후 잊힌 명칭이 내년부터 다시 부활하게 됐다. 정부가 노동절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어서 5월 1일을 둘러싼 변화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5월 1일은 1886년 미국에서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한 것을 기념하는 '메이데이'다. 한국에서는 1923년부터 이날을 '노동절'로 기념해왔다. 1958년 정부는 대한노동조합총연맹의 창립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지정했으나, 1963년 4월 17일 박정희 정부가 노동법 개정 과정에서 '노동'이라는 용어가 사회주의적 색채를 띤다며 '근로자의날'로 명칭을 변경했다. 법률 제정 과정에서 '노동자'라는 개념 속에 내포된 계급의식을 희석하기 위해 '근로자'라는 명칭을 사용했다는 견해도 있다.

근로자의날법 제정 당시 근로자의날은 3월 10일이었는데, 1994년 법 개정으로 다시 5월 1일로 옮겨졌다. 하지만 날짜는 세계적 흐름에 맞췄지만 명칭은 바뀌지 않아 30년 넘게 '근로자의날'이라는 이름이 유지돼왔다.

이번 명칭 변경의 핵심 배경에는 '근로'와 '노동'이라는 용어를 둘러싼 오랜 논쟁이 자리한다. 노동절 명칭을 지지하는 측은 근로자라는 용어가 일제강점기부터 사용된 용어로, 산업화 시대 '통제적이고 수동적인 의미'를 내포해 노동의 자주성과 인간으로서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사전상으로도 근로는 '부지런히 일함', 노동은 '몸을 움직여 일함'이므로 노동이 더 '가치중립적 용어'라는 지적이다.

노동계는 오랫동안 '근로'를 '노동'으로, '근로자'를 '노동자'로 바꾸는 것을 숙원 사업으로 추진해왔다. 특히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5월 1일을 '노동절(Labour Day)' 또는 '메이데이(May Day)'로 기념하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만 다른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국제적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반면 명칭 변경에 반대하는 측은 근로라는 단어가 일제강점기 이전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할 만큼 오래된 단어이며, 헌법에도 근로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만큼 근로자의날을 굳이 노동절로 바꿀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다. 21대 국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여야 이견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9월 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법안이 처리됐고, 9월 19일 환노위 전체회의를 거쳐 26일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명칭 변경이 정치권 전반의 공감대를 얻으면서 64년 만에 역사적 복원이 이뤄진 것이다.

더 주목할 부분은 노동절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하는 걸 추진한다는 점이다. 현재 근로자의날은 법정공휴일이 아닌 근로기준법에 따른 유급휴일로 지정돼 있다. 이 때문에 민간 기업 근로자는 쉴 수 있지만 공무원 등 일부 업종은 출근해야 했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절이 공휴일로 지정될 수 있도록 관계 부처와 협의하고 국회 내 논의도 적극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재 노동절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하는 법안이 발의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법정공휴일로 지정되면 달라지는 점이 많다. 우선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라 공무원도 쉴 수 있게 된다. 또한 달력에 빨간 날로 표시돼 국민 전체가 명실상부한 휴일로 인식하게 된다.

만약 내년 5월 1일 전에 노동절이 법정공휴일로 지정되면 공무원들도 5월 1일 금요일부터 5월 3일 일요일까지 사흘 연속 쉴 수 있다. 어린이날(5월 5일)과 연결돼 5일 연속 쉬는 연휴가 형성될 가능성도 있어 국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노동절 명칭 복원과 법정공휴일 지정은 단순한 명칭 변경이나 휴일 증가를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절을 되찾게 돼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노동을 단순히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권리가 담긴 활동으로 인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날 국회에서는 노동절 명칭 복원 외에도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한 여러 법안이 함께 통과됐다. 임금 체불로 명단이 공개된 사업주가 퇴직급여 등을 체불하는 경우에도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지 않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기존에는 피해 당사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를 처벌할 수 없어, 사업주가 이를 악용해 임금을 주지 않은 뒤 나중에 슬쩍 합의하는 경우가 있었다. 개정안은 상습적인 임금체불 사업주의 퇴직금 체불에 대해서는 반의사불벌 조항을 배제해 사법처리를 쉽게 만들었다.

근로복지공단,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한국산업인력공단 등 준정부기관 비상임이사에 노동이사를 두게 하는 법안도 통과됐다. 노동이사는 노동자가 직접 경영에 목소리를 내기 위한 제도로, 노조 등 근로자대표가 추천한다. 청년 발달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장애인 표준사업장 설립 규제 완화 법안도 함께 통과됐다. 장애인 표준사업장은 장애인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갖춘 직장으로, 근로환경·복지·임금 등에서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

64년 만에 되찾은 '노동절'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명칭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노동을 통제와 복종의 대상이 아닌, 인간 존엄의 표현으로 보겠다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법정공휴일 지정까지 이뤄진다면 5월 1일은 명실상부 모든 국민이 노동의 가치를 되새기는 날이 될 수 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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