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술’이 몸을 녹인다고?… 알고 보면 진짜 위험하다
2025-10-2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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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술, 몸을 녹이지민 위험해
요즘처럼 기온이 뚝 떨어지는 계절이면, 차가운 맥주 대신 따뜻한 술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식 사케나 정종을 데워 마시거나, 따뜻하게 데운 막걸리를 즐기는 식이다. 겉으로는 몸을 녹여주는 듯하지만, 뜨거운 술이 실제로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따뜻한 술이 일시적으로 몸을 데우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적으로 보면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술을 데워 마셨을 때 처음에는 체온이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알코올이 혈관을 확장시키면서 피가 피부 표면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오히려 체열을 빠르게 빼앗는다. 피가 피부 쪽으로 이동하면서 몸속 중심부의 체온은 떨어지고, 땀이 나면서 열 손실이 더 커진다. 즉, 따뜻한 술은 순간적으로 따뜻함을 주지만, 실제로는 체온을 떨어뜨리는 ‘착각 효과’를 일으킨다.

겨울철 등산이나 외출 후 몸을 녹이기 위해 뜨거운 술을 찾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알코올이 혈관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혈압을 낮추고, 체온 조절 능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특히 술을 마신 뒤 추운 외부 공기에 노출되면 급격한 체온 저하로 저체온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한랭 환경에서 음주 후 사고가 나는 사례 중 상당수가 이런 생리적 이유에서 비롯된다.
뜨거운 술은 위장에도 부담을 준다. 알코올은 원래 점막을 자극하지만, 고온 상태로 마시면 그 자극이 배가된다. 뜨거운 술이 식도를 지나며 점막을 손상시키거나, 위산 분비를 촉진해 위염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공복에 마신 뜨거운 술은 위 점막을 빠르게 손상시켜 통증이나 속쓰림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케를 따뜻하게 마시는 일본 문화에는 이유가 있다. 일본에서는 기온이 낮을 때 향을 더 풍부하게 느끼기 위해 술을 데워 마시는 전통이 생겼다. 하지만 현대에는 술의 향과 맛을 해치지 않기 위해 미지근한 온도(약 40도 이하)에서 데우는 것을 권장한다. 술이 너무 뜨거우면 알코올의 향이 강하게 날아가고, 자극적인 맛만 남기 때문이다.
우리 전통주 중에도 따뜻하게 마시는 문화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막걸리나 약주를 데워 마시는 풍습이다. 예부터 ‘몸이 차면 술을 덥혀 마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체온을 올리고 피로를 풀기 위한 생활의 지혜로 전해졌다. 그러나 현대의학 관점에서 보면 ‘따뜻한 술’이 체온 유지나 면역 강화에 도움을 준다는 근거는 부족하다. 오히려 간과 위장에 부담을 주는 경우가 더 많다.
온도의 문제뿐 아니라 ‘급하게 마시는 습관’도 문제다. 따뜻한 술은 체온과 비슷한 온도로 들어가므로 목 넘김이 부드럽고, 취기가 늦게 올라오는 것처럼 느껴져 과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흡수가 빠르게 일어나 혈중 알코올 농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이 때문에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이나 두통, 구토를 유발하기 쉽다. 특히 간 기능이 약한 사람에게는 단시간 내 부담이 커진다.

그렇다고 해서 뜨거운 술을 무조건 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음주량을 조절하고, 적절한 온도로 데워 마신다면 부드러운 풍미를 즐길 수 있다. 전문가들은 사케나 정종을 40도 안팎, 즉 손으로 잡았을 때 따뜻하다고 느껴지는 수준으로 데우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조언한다. 끓는 물에 직접 담그는 대신, 따뜻한 물에 병을 중탕하듯 데우면 향이 살아 있고 자극이 줄어든다.
건강을 위해서는 술의 온도보다 ‘음주량’이 핵심이다. 알코올의 열량은 1g당 7kcal로, 과음 시 체내 대사와 간 기능을 저하시킨다. 추운 날씨에 마시는 따뜻한 술이 잠시 몸을 녹여줄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탈수와 체온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따뜻한 술이 주는 순간의 온기와 편안함 뒤에는, 몸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생리 반응이 숨어 있다. 추운 날일수록 술보다는 따뜻한 차와 균형 잡힌 식사로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술의 온기보다 몸의 건강이 먼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