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반으로 잘라서 '숟가락'으로 가운데를 파내세요…보양식이 됩니다
2025-10-2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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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을 달래주는 따뜻한 향과 맛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따뜻한 차 한 잔이 그리워진다. 그중에서도 배를 졸여 만든 전통 음료 ‘배숙’은 예로부터 감기와 기침, 가래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왔다. 요즘처럼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큰 계절에는 목을 편안하게 해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음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배숙은 대추고와 비슷하게 과일의 단맛과 약재의 향을 함께 우려내는 전통 보양식이다. 다만 대추고가 진득한 농축액 형태라면, 배숙은 물을 적당히 더해 마시는 차에 가깝다. 배 특유의 청량한 단맛과 생강의 알싸함이 조화를 이루며, 마시고 나면 속이 한결 편안해진다.

배숙은 감기에 걸린 아이에게 먹이거나, 잦은 회의와 발표로 목이 자주 쉬는 직장인들에게도 좋다. 특히 배에는 루테올린, 폴리페놀 같은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 기관지 점막을 보호하고, 염증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생강은 체온을 높여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몸속의 냉기를 몰아내는 역할을 한다.
집에서 배숙을 만들려면 먼저 잘 익은 배를 준비한다. 껍질을 벗기고 속을 파낸 뒤 얇게 썬다. 냄비에 물을 붓고 배, 생강, 대추를 넣은 뒤 약한 불에서 서서히 끓인다. 약 30~40분 정도 끓이다 보면 달콤한 향이 퍼지고, 배가 투명해지면서 익는다. 여기에 꿀을 한두 스푼 넣으면 단맛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집에서 배숙을 만들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불 조절과 농도 맞추기다. 불이 너무 세면 물이 금세 졸아들어 배가 푹 익기 전에 탄맛이 나고, 너무 약하면 재료의 향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강불로 끓이다가 끓기 시작하면 약불로 낮춰 천천히 졸이는 게 요령이다. 또한 배숙이 너무 묽으면 맛이 밋밋하고, 너무 진하면 단맛이 강해지므로 중간 농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또 하나의 난관은 생강의 매운맛 조절이다. 생강을 많이 넣으면 톡 쏘는 매운 향이 강해져 아이들이 먹기 힘들고, 적게 넣으면 특유의 따뜻한 맛이 줄어든다. 생강은 2~3인분 기준으로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양이 적당하며, 처음부터 넣지 말고 끓는 중간에 넣으면 자극이 줄어든다. 생강을 얇게 썰어 물에 한 번 헹군 뒤 사용하는 것도 매운맛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요즘은 배숙을 한 번에 많이 만들어 냉장 보관하는 경우도 많다. 완성된 배숙은 식혀서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으면 3일 정도, 냉동 보관 시에는 2주 정도까지 보관할 수 있다. 마실 때는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우거나, 냄비에 약한 불로 다시 덥혀 따뜻하게 즐기면 된다.

배숙을 건강 음료로 꾸준히 마시려면 설탕 대신 꿀이나 올리고당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당분 섭취가 걱정된다면 단맛을 줄이고, 생강의 향으로 풍미를 살리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밤에 먹을 때는 꿀을 너무 많이 넣으면 숙면에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배숙은 간단해 보이지만, 손이 제법 가는 음식이다. 배 껍질을 벗기고 씨를 파내는 과정에서 힘이 들고, 생강을 다듬을 때 손끝이 얼얼하기도 하다. 하지만 한 모금 마셨을 때 목을 부드럽게 감싸는 따뜻한 단맛은 그런 수고를 잊게 만든다.
예전에는 겨울철이면 집마다 커다란 냄비에 배숙을 끓이며 감기 예방을 했다. 요즘은 생강차, 유자차, 배즙 음료 등 대체품이 많지만, 직접 끓인 배숙만큼 자연스러운 향과 깊은 맛을 내는 것은 드물다. 특히 인공첨가물이 없는 천연 재료로 만든 배숙은 몸속을 편안하게 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겨울 건강 음료로 손꼽힌다.
배숙 한 잔에는 오래된 지혜와 정성이 담겨 있다. 단순히 배를 끓인 음료가 아니라, 찬 바람에 지친 몸을 달래고 마음까지 따뜻하게 하는 겨울의 전통 한약 같은 존재다. 대추고가 진한 단맛으로 몸을 보한다면, 배숙은 부드럽고 맑은 단맛으로 속을 다독인다. 올겨울, 주방에서 피어오르는 배숙의 향으로 계절의 건강을 지켜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