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절개 요청 거부한 병원, 난산 끝에 장애아 출산…법원 “6억 배상하라”
2025-10-2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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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진의 자연분만 고수, 비극적 결과를 낳다
                    
                                        
                        8년간의 법정 공방, 6억 원 배상 판결의 비밀
                    
                                    
                자연분만을 강행하다 난산 끝에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난 사건에서 병원의 과실이 인정돼 수억 원의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임산부가 반복적으로 제왕절개를 요청했음에도 병원이 이를 거부한 것이 결정적인 과실로 판단됐다. 의료과실 사건에서 이례적으로 높은 배상액이 산정된 사례다.
수원고등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이수영)는 경기도의 한 산부인과 병원(A병원)이 산모 B씨 부부와 아들 C군에게 총 6억2천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지난달 19일 판결했다. 출산일로부터 계산된 지연이자까지 포함하면 배상금은 10억 원이 넘는다.

사건은 2016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B씨는 해당 병원에서 유도분만을 통해 아들을 출산했다. 그러나 분만은 11시간 동안 이어졌고, 산모는 극심한 난산을 겪었다. B씨 부부는 이 과정에서 두 차례 제왕절개를 요청했지만 병원은 자연분만을 고수했다. 어렵게 태어난 C군은 출생 후 상태가 악화됐고, 이후 뇌병변장애와 언어·인지 기능 저하 등 심각한 후유증이 확인됐다.
B씨 부부는 2020년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태아가 골반에 장시간 끼어 있었고 심박동수도 급격히 떨어졌음에도, 병원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자연분만을 계속 시도해 장애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1심 재판부인 수원지법 평택지원 제1민사부는 2023년 8월, 병원 측이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병원은 B씨 가족에게 약 5억6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배상액은 6억2천만 원으로 늘었다. 법원은 C군의 기대여명이 더 길다고 보고 향후 돌봄 비용을 추가로 인정했다.
법원은 A병원이 분만 과정에서 태아의 상태를 충분히 관찰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고위험 산모였던 B씨의 분만이 장시간 지연됐는데도, 병원은 11시간 동안 단 3차례만 비수축검사(NST)를 시행했다. 특히 출산 직전 3시간 20분 동안은 심박 측정 기록조차 없었다. 미국산부인과학회는 고위험 산모의 경우 5~15분 간격으로 태아 심박동을 확인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재판부는 “제왕절개를 거부하고 자연분만을 유지하기로 했다면, 병원은 그만큼 세밀하게 태아 상태를 살피며 대응했어야 한다”며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또 산전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없었고, 유전적 원인도 확인되지 않은 점을 근거로, 장애가 출산 중 저산소증에 따른 뇌손상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의 “분만 중 태아곤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감정 결과도 주요 근거가 됐다.
한편 A병원은 1심 막바지에 뒤늦게 분만 후반부 NST 기록을 새로 제출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사건 발생 후 8년이 지나 제출된 점과 원본 확인이 불가능한 점을 이유로 “분만 당시 기록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B씨 부부는 병원 측이 허위 자료를 통해 배상액을 줄이려 했다고 보고 병원 관계자들을 사기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조사한 뒤 지난달 3일 검찰에 송치했다.
이번 판결은 의료사고 사건에서 환자 측의 입증이 매우 어렵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의미 있는 사례로 평가된다. 의료법률 전문가 김성주 변호사는 “의료과실은 환자가 직접 입증해야 하고, 동종 의료진의 감정을 거쳐야 하므로 승소가 쉽지 않다”며 “항소심에서 배상액이 오히려 늘어난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법원은 병원 측의 과실 비율을 30%로 산정했다. 이에 따라 C군의 장기 치료비와 돌봄 인건비 중 30%를 병원이 부담하도록 했다. C군은 현재 신체와 언어 기능이 심하게 저하돼 일상생활 전반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태다.
이번 사건은 제왕절개 여부를 둘러싼 의료 판단의 경계와 책임을 다시금 환기시켰다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법원은 “의사의 재량이 존중돼야 하지만, 그 결정은 환자 상태를 근거로 한 충분한 관찰과 조심스러운 판단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