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킥보드 사망사고' 여고생에게 실형... 도로 위 시한폭탄에 경종

2025-10-3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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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킥보드 사고 44% '무면허 10대 질주'
'안전모가 뭐죠?' 미성년자들의 무법 질주

전동킥보드 자료 사진/ 뉴스1
전동킥보드 자료 사진/ 뉴스1
전동킥보드를 놀이 기구처럼 여기며 무면허로 이용하는 미성년자들에게 경종이 울렸다. 친구를 뒤에 태우고 전동킥보드 운전하다 산책 중이던 60대 부부를 들이받아 부부 중 아내를 숨지게 한 여고생 가해자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경기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이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치사상과 무면허 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양에게 장기 8개월, 단기 6개월의 금고형과 벌금 20만 원을 선고했다고 연합뉴스TV가 30일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망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초래했고,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A양은 미성년자이고 초범이었지만, 무면허 상태로 제한속도를 초과하고 2명이 함께 전동킥보드를 탔다는 점에서 중한 처벌을 받았다. 이번 판결은 전동킥보드가 더 이상 가벼운 이동수단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교통수단임을 확인시켰다.

사고는 지난해 6월 8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 자전거도로에서 발생했다. 친구 B양과 함께 전동킥보드를 몰던 A양은 도로 오른편을 걷던 60대 부부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남편은 크게 다쳤고, 부인은 머리를 심하게 다쳐 9일 만에 숨졌다.

두 여고생은 원동기 면허가 없었던 것은 물론 안전모조차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경찰은 이들에게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과 무면허 운전 혐의를 적용했다. 뒤에 탑승했던 B양은 직접적인 운전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면허 운전에 따른 범칙금 10만 원 처분을 받았다.

전동킥보드 자료 사진/ 뉴스1
전동킥보드 자료 사진/ 뉴스1

재판부는 "자전거를 피하려 방향을 틀다 사고가 났다"는 A양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전거의 영향보다 공원에서 무면허로 제한 속도를 초과해 2명이 동시에 탄 것이 사고의 주요 원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피해자 유족 측은 검찰에 항소에 관한 의견서 제출을 적극 검토하는 한편, 1심 선고 결과를 바탕으로 민사 소송도 준비할 계획이다.

전동킥보드를 포함한 개인형 이동장치 교통사고는 최근 5년간 급증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 225건이던 사고는 2019년 447건, 2020년 897건, 2021년 1735건, 2022년 2386건으로 늘었다. 2023년에는 2389건으로 2022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5년 만에 사고 건수가 10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2232건으로 다소 감소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사망자 수도 심각하다. 2018년 4명이던 사망자는 2019년 8명, 2020년 10명, 2021년 19명, 2022년 26명으로 증가했다. 2023년에는 24명이 목숨을 잃었다. 5년 사이에 사망자 수가 6배 증가한 셈이다. 부상자는 2018년 238명에서 2022년 2684명으로 11배 이상 급증했고, 2023년에는 2622명이 부상을 입었다.

단독사고 치사율이 특히 문제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개인형 이동장치의 단독사고 치사율은 5.6%로, 전체 교통사고 치사율 1.3%보다 4.3배나 높다. 외부 충격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해줄 별도의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에 공작물 충돌이나 전도, 도로 이탈 등 단독사고로 발생한 사망자 비율이 62.5%에 이른다. 개인형 이동장치끼리 부딪혀 사고가 나는 경우 치사율은 0.6%, 개인형 이동장치와 사람의 사고 발생 시 치사율은 0.3%로 나타났다.

개인형 이동장치 교통사고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차 대 사람’ 사고가 차지하는 비율이 46.0%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차종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수치인 18.7%의 약 2.5배에 이른다. 전동킥보드 운전자가 통행방법을 위반하고 보도로 통행하는 경우가 많기에 다른 차종에 비해 차 대 사람 사고 비율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전동킥보드 자료 사진/ 뉴스1
전동킥보드 자료 사진/ 뉴스1

전동킥보드가 위험한 이유는 구조적 취약성 때문이다. 전동킥보드는 차체에 비해 바퀴가 작아 도로 파임, 높낮이 차이 등 작은 충격에도 넘어지는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서 있는 자세로 탑승하는 까닭에 무게 중심이 높아 균형을 잃기 쉽고, 넘어질 경우 신체가 그대로 노출돼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진다. 자동차와 달리 안전벨트나 에어백 같은 보호 장치가 전혀 없다. 2인 탑승 시에는 무게중심이 더욱 흔들려 제어가 어려워진다. 이번 일산 사고 역시 2인 탑승 상태에서 순간적인 조작 실패로 발생했다.

속도도 간과할 수 없는 위험 요소다. 현행법상 전동킥보드의 최고 속도는 시속 25km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개인형 이동장치 속력을 시속 25km에서 20km로 낮추면 정지거리는 26% 줄어든다. 시속 25km일 때 정지거리는 약 7m지만 20km에서는 5.2m로 줄어든다.

더 큰 문제는 무면허 운전과 안전수칙 위반이 만연하다는 점이다. 도로교통공단 교통과학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6년 동안 발생한 개인형 이동장치 교통사고 5860건 가운데 35%가 무면허 사고였다. 무면허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 가운데 10대가 67.6%로 가장 많았고 20대가 18.6%로 뒤를 이었다.

최근 3년간(2022~2024년) 무면허 운전으로 인한 전동킥보드 등 사고 건수는 2022년 1127건, 2023년 1148건, 2024년 1167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전체 개인형 이동장치 교통사고의 절반가량이 무면허 운전에 의한 사고인 셈. 전동킥보드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를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사고를 낸 운전자의 절반 가량인 44%가 19세 이하 청소년인 것으로 확인됐다.

법 집행의 한계도 심각하다. 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된 2021년 5월 13일부터 2022년 12월 13일까지 1년 7개월 동안 적발된 위법 건수는 총 22만5956건으로 집계됐다. 개인형 이동장치 운행 중 안전모 미착용은 18만5304건이 단속됐고, 무면허운전과 음주운전은 각각 2만8227건, 1만828건이 단속됐으며, 정원초과 운행은 1597건이 단속됐다.

전동킥보드 자료 사진/ 뉴스1
전동킥보드 자료 사진/ 뉴스1

2024년 7월 중순부터 2주간의 계도 기간에만 9500건 가까운 적발 사례가 나왔다. 안전모 미착용이 6935건으로 73.4%를 차지했으며, 무면허 운전이 1787건으로 18.9%, 음주운전은 273건으로 2.9%를 기록했다. 단속이 강화됐음에도 여전히 위반 행위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특히 10대 이용자의 무분별한 사용이 문제로 지적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정우택 의원실이 도로교통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개인형 이동장치 사고 중 20세 이하가 전체 35.4%로 가장 많았다. 증가 폭도 남달랐다. 2018년 25건에 불과하던 청소년 사고 건수는 매해 큰 폭으로 증가해 2022년에는 1096건, 2018년 대비 43.8배나 폭증했다.

면허 취득이 어려운 10대들이 전동킥보드를 놀이 기구처럼 여기며 무면허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법규 지식이 부족하고 안전 의식도 낮은 까닭에 2인 탑승, 안전모 미착용, 보도 통행 등 여러 위반 행위를 동시에 저지르는 경우가 빈번하다. 실제로 길거리에서 운전면허가 없는 학생이 이용하거나, 2인 이상 탑승하는 장면이 쉽게 목격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성년자에 대한 제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성년자의 경우 범칙금을 본인에게 부과할 수 없다는 제도적 허점이 있어 법적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공유 킥보드 업체들의 허술한 본인 인증 시스템도 문제다. 한 번만 인증하면 계속 이용할 수 있어 무면허 운전을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도로교통공단의 운전자 교통법규 인식에 관한 연구(2023)에서 개인형 이동장치 또는 자전거 이용 경험이 있는 운전자 702명 중 좌회전 방법을 모른다고 응답한 사람이 63%에 달했다. 전동킥보드가 차라는 인식이 부족한 것이다.

안전모 착용 의무화가 시행됐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킥보드 사고로 병원에 내원한 환자 중 85%가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았고, 머리와 얼굴 부상이 전체의 70%를 차지했다. 보호장비 없이 시속 20~25km 속도로 주행하는 것은 사실상 맨몸 주행에 가깝다. 게다가 대부분의 공유킥보드 서비스는 안전모를 비치하지 않아 이용자가 별도로 준비하지 않으면 보호장비 착용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도심 인프라의 문제도 크다. 킥보드를 탈 수 있는 자전거도로는 일부 구간에만 조성돼 있고, 대부분의 이용자는 인도나 차도 사이의 애매한 공간을 이용한다. 그 결과 보행자와 충돌하거나 차량과 맞부딪히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시민의 79.2%가 "전동킥보드로 인해 보행 중 불안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킥보드 없는 거리를 지정하자는 의견도 다수를 차지했다.

지역별로는 2022년 953건의 사고가 발생한 경기도에서 가장 많은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가 406건, 대구광역시가 152건, 충청북도가 104건으로 뒤를 이었다. 사망자 또한 경기도가 9명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시가 5명, 대구시가 3명으로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전동킥보드를 단순히 미래형 이동수단으로만 볼 게 아니라 교통 체계 안에서의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단속을 강화해 음주운전이나 동승자 탑승 등 개인형 이동장치 운전자 법규위반을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전동킥보드를 주로 이용하는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단속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는 사고가 잇따르자 2021년 법을 개정해 면허 소지와 안전모 착용을 의무화했지만, 현실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경찰의 단속 건수는 2022년 2만여 건, 2023년 3만 건을 넘어섰지만, 위반 행위는 여전히 줄지 않았다. 단속보다 교육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정부는 경찰청을 중심으로 안전모 미착용, 무면허 운전, 주행도로 위반, 2인 이상 탑승 등 주요 안전수칙 위반 행위에 대해 집중 단속에 나서고 있다. 또한 한국도로교통공단, 한국교통안전공단과 함께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직접 방문해 개인형 이동장치의 특성을 몸으로 이해하고 체화할 수 있는 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면허 제도의 강화, 연령별 속도 제한, 안전교육 의무화, 공유업체의 관리책임 강화 등이 거론된다. 또 보행자 보호를 위한 킥보드 금지 구역 확대와 불법 주정차 단속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가입 연령에 따라 최고 속도를 차등화하는 시스템 도입도 논의되고 있다. 예를 들어 가입 연령이 10대인 경우 최고 속도를 시속 15km로 제한하는 것이다.

전동킥보드는 공유경제의 한 축으로 도심 교통체증을 해소하는 대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안전 문제들은 제도적 보완 없이는 해결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전동킥보드 이용자의 안전뿐만 아니라 보행자의 안전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킥보드 운전자가 안전모를 착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보행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일산 호수공원 사고를 일으킨 가해 여학생에 대한 실형 선고는 하나의 경종이다. 전동킥보드가 더 이상 가볍게 타는 장난감이 아니며, 한순간의 방심이 타인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경고다. 실형이라는 단어가 교통사고 기사에 등장할 정도라면 이미 사회가 그 위험을 외면하기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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