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점' 박혀 있는 무, 먹어도 괜찮을까... 맛이 한껏 오른 가을 무
2025-11-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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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물론 속살에도 검은 점이 난 무, 손질할 때는...


요즘 시장이나 마트에서 무를 고르다 보면 간혹 겉에 검은 점이 찍혀 있는 걸 볼 수 있다. 소비자들은 대개 상하거나 썩은 것으로 오해하지만, 이는 ‘탄저병’으로 불리는 곰팡이 감염의 흔적일 수 있다. 탄저병은 곰팡이균의 일종인 ‘콜레토트리쿰(Colletotrichum)’이 원인이다. 주로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번식한다. 비가 자주 오거나 땅이 축축한 상태에서 무가 자라면 병균이 잎이나 줄기, 뿌리로 침투해 검거나 갈색의 병반을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 병반이 움푹 들어가거나 거칠게 말라붙는다. 저장 과정에서 병이 번질 수도 있어 농가에서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철저한 환기와 건조 관리를 한다.
다만 모든 검은 점이 탄저병은 아니다. 단순히 흙 자국이 남거나, 수확 과정에서 생긴 상처가 산화돼 어두워진 경우도 있다. 탄저병일 경우에는 병반 부위가 딱딱하게 굳고 색이 짙으며, 표면이 거칠고 윤기가 없다. 이런 부분은 반드시 넉넉하게 도려내야 한다. 병균이 자리 잡은 부위에는 곰팡이 독소가 생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염이 일부에 국한돼 있다면, 겉껍질을 두껍게 벗기고 남은 부분은 충분히 먹을 수 있다. 반면 무 전체가 검게 변했거나, 냄새가 나거나 물컹하게 변했다면 버리는 게 안전하다. 특히 저장 중 곰팡이 냄새가 나는 무는 내부까지 오염된 경우가 많다.
무는 전체의 95%가 수분으로 이뤄져 있다. 나머지 5% 안에 식이섬유, 비타민 C, 칼륨, 엽산, 효소 등이 들어 있다. 특히 ‘디아스타제’라는 효소는 전분을 분해해 소화를 돕는다. 그래서 고기나 튀김, 밀가루 음식을 먹은 뒤 무를 곁들이면 속이 편해진다. 디아스타제는 열에 약하기 때문에 생으로 먹는 것이 좋다. 또한 무에는 매운맛의 주성분인 ‘이소시아네이트’가 들어 있어 세균 번식을 억제하고, 몸속 독소를 배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성분은 항암 효과가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비타민 C가 풍부한 것도 무의 장점이다. 무 한 개에는 하루 권장량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비타민 C가 들어 있다. 이 영양소는 면역력을 높이고, 피부의 산화를 막아 노화 방지에 도움을 준다. 또 칼륨이 많아 체내 나트륨 배출을 돕고, 혈압을 안정시키는 역할도 한다. 무의 칼로리는 100g당 약 15kcal로 낮아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다. 무의 뿌리뿐 아니라 무청에도 영양이 풍부하다. 무청에는 베타카로틴, 칼슘, 비타민 K가 들어 있어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
가을 무가 특별히 맛있는 이유는 성장 환경 때문이다. 여름에 재배한 무는 성장 속도가 빨라 조직이 거칠고 수분이 적다. 반면 가을 무는 서늘한 온도와 풍부한 일조량 속에서 천천히 자란다. 밤에는 기온이 떨어지고 낮에는 햇빛이 강해,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당이 잎에서 뿌리로 이동한다. 서리가 내리는 시기에는 전분이 당으로 전환돼 단맛이 한층 짙어진다. 단면이 맑고 유백색을 띠며, 자를 때 물기가 촉촉이 배어나오면 최상의 가을 무다.

무를 고를 때는 모양과 감촉이 중요하다. 잔뿌리가 적고 껍질이 매끈하며 색이 균일한 것이 좋다. 손으로 눌렀을 때 단단하면서도 묵직한 무는 수분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반대로 무게감이 없고, 껍질이 쭈글하거나 갈라진 무는 수분이 빠져 맛이 떨어진다. 꼭지 부분이 푸르고 싱싱한 것도 신선도의 기준이 된다.
보관 시에는 흙이 묻은 상태로 두는 것이 좋다. 흙이 수분 증발을 막고 신선도를 오래 유지해준다. 냉장 보관할 때는 잎을 잘라내고 신문지나 키친타월로 감싸 1~5도의 서늘한 곳에 둔다. 온도 변화가 크면 수분이 쉽게 빠지고 맛이 떨어진다. 김장철에 김치와 함께 저장할 때는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일정한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무는 조리법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생으로 먹으면 매운맛과 시원함이 살아나고, 익히면 단맛이 깊어진다. 생채로 무쳐 먹거나 깍두기, 동치미, 나박김치로 담그면 특유의 아삭함이 살아난다. 국물 요리에 넣으면 시원한 맛을 더한다. 갈비탕이나 생선조림, 어묵탕에 빠지지 않는 이유다. 끓는 물에 잠시 데친 뒤 국물에 넣으면 잡내가 사라지고, 감칠맛이 배어난다. 무즙을 내서 마시면 속을 달래고, 목의 염증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무는 단순한 뿌리채소 같지만, 우리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다. 김치의 재료로, 국물의 바탕으로, 반찬의 주인공으로 늘 자리를 지켜왔다. 제철에 먹는 가을 무는 단맛이 절정에 이르고, 영양도 풍성하다. 검은 반점이 있다고 모두 버릴 필요는 없지만, 탄저병 감염 여부를 살피는 습관은 필요하다. 무는 계절을 담은 채소다. 찬 바람이 불고 입김이 흩날리는 이 계절, 단단하고 달큰한 가을 무 한 조각이 밥상 위에 오르면 그 한입 속에서 가을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