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먹어 둘걸...가을장마에 직격탄, 21.6% 가격 치솟은 ‘국민 과일’ 정체
2025-11-08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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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장마, 국민 과일 사과의 눈물
기후변화가 만든 사과 대란의 비밀
가을장마의 여파가 국민 밥상에까지 번지고 있다. 쌀, 찹쌀에 이어 사과 가격이 크게 오르며 소비자들의 체감 물가가 다시 들썩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긴 장마와 낮은 일조량이 맞물리며 사과 착색 불량·낙과 피해가 심화된 탓이라고 분석한다.

국가데이터처가 4일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7.42(2020=100)로 전년 동월 대비 2.4% 상승했다고 이데일리는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7월(2.6%) 이후 1년 3개월 만의 최고 상승폭이다. 물가 상승률은 지난 8월 1.7%로 잠시 안정세를 보였지만, 9월 2.1%에 이어 10월에도 오름세를 이어갔다. 특히 농축수산물 가격이 3.1%나 오르며 전체 상승률을 끌어올렸다.
품목별로 보면, 가을장마의 직격탄을 맞은 쌀(21.3%)과 사과(21.6%), 찹쌀(45.5%)의 가격 상승 폭이 두드러졌다. 반면 배추(-34.5%), 무(-40.5%), 당근(-45.2%) 등 채소류는 한때 과잉 공급과 일시적 가격 급락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축산물은 돼지고기(6.1%), 달걀(6.9%) 등이 오르며 전체 5.3% 상승했고, 외식·가공식품 물가도 각각 3% 이상 상승률을 유지했다.
한 달 가까이 이어진 가을장마는 사과 농가에 치명적 피해를 남겼다. 지난달 31일 한국농정 보도에 따르면, 조중생종(양광·감홍·시나노골드 등) 사과는 대부분 낙과와 열과 피해를 입었다. 예년에는 한 과수원당 평균 10박스(18kg) 이내로 발생하던 낙과가 올해는 50박스 이상씩 쏟아졌다는 농민들의 호소가 이어졌다. 물을 머금은 사과가 터지거나 썩는 사례도 속출했다.

문제는 앞으로가 더 심각하다는 점이다. 국내 사과 재배면적 중 약 30~40%를 차지하는 조중생종이 이미 큰 피해를 본 데 이어, 부사(후지) 등 만생종마저 일조량 부족으로 착색 불량이 나타나고 있다. 경북 청송의 한 사과농가 강동수 씨는 “평년 같으면 이미 20~30% 수확이 진행됐을 시기인데, 지금은 대부분이 아직 나무에 매달려 있다”며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면 사과가 물러져 저장과 유통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국 주요 산지에서는 빨갛게 물들지 못한 부사 품종이 수확 시기를 놓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10월 전국 평균 일조시간은 평년 대비 20%가량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과수의 당도와 색이 충분히 오르지 못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낙엽병과 갈반병이 확산되면서 품질 저하까지 이어졌다.
현재 농작물재해보험은 열과 피해를 ‘생리장해’로 분류해 보상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농가들의 피해 회복은 쉽지 않다. 실제로 열과로 상품성이 떨어진 사과는 가공용으로 전환되더라도 단가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농산물 유통 전문가들은 “이상기후로 인한 생리장해 피해는 기존 재해보험 체계로 보상할 수 없다”며 “지자체별 피해 실태에 맞춘 수매지원사업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또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상기후 대응형 과수 품종 개발과 재배 기술 혁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재배 시기 조정, 배수 시설 개선, 병해충 방제 강화 등 현실적인 대응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착색 불량으로 출하가 지연되면 물류비가 증가하고 저장 비용이 늘어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사과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대표 과일이다. 전국 어디서나 생산이 가능하고, 사계절 유통망이 구축돼 있어 ‘국민 과일’이라 불린다. 가격이 안정적일 때는 도시락, 디저트, 선물용으로까지 다양하게 소비되지만, 올해는 폭우와 일조량 감소로 평년 대비 공급량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이번 ‘사과 대란’은 기후변화가 국민 식탁을 직접 흔든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긴 장마와 이상 기온이 농가의 수확량을 줄이고, 그 여파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미리 먹어 둘걸’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올해 가을 사과는 진정한 ‘귀한 과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