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하루 만에 '뇌사'에 빠진 산모, 한 달 병원비 1천만 원인데 정부는 나 몰라라
2025-11-0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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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산 후 예기치 못한 비극, 누가 책임질 것인가?
                    
                                    
                출산 다음날 갑작스럽게 찾아온 폐색전증으로 한 산모가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의료적 과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불가항력적 사고였지만, 이로 인한 가족의 고통은 깊고 현실적인 부담은 막대하다. 무엇보다 중증 장애를 입은 산모는 현행 제도상 국가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 출산 다음날 찾아온 비극
지난 5월, 한 30대 여성이 건강히 아기를 출산한 지 하루 만에 갑자기 쓰러졌다. 제왕절개 수술은 무리 없이 진행됐고, 특별히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임신도 아니었다. 그러나 산후 혈전이 폐혈관을 막는 ‘폐색전증’이 발생했고, 이는 뇌 손상으로 이어졌다. 현재 이 여성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다.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비극에 삶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한다. 남편은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에 가장 참담한 일을 겪었다”며 “한 가정이 이 모든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벅차다”고 토로했다.
◆ 한 달 병원비만 천만 원, 가족의 버거운 현실
현재 가족은 한 달에 약 천만 원에 달하는 병원비를 감당하고 있다. 장기 입원과 재활 치료가 이어지면서 경제적 어려움은 점점 커졌고, 결국 남편은 살던 전셋집을 정리해야 했다. 산모가 의식을 잃은 지 몇 달이 지났지만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남은 가족은 의료비와 생활비 부담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이 사고는 의료진의 과실로 보기 어려운 ‘불가항력적 분만사고’에 해당한다. 대한분만병의원협회 신봉식 회장은 “수술이나 진료 과정의 문제가 아니라 산모의 신체 내부에서 예측 불가능하게 발생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럴 때는 소송을 제기해도 대부분 무과실 판정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 국가 지원 확대에도 여전한 사각지대
불가항력적 분만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은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기존 최대 3천만 원이던 지원 한도를 3억 원까지 늘렸다. 하지만 이번처럼 산모가 중증 장애를 입은 경우는 여전히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현행 제도상 보상은 신생아 사망, 뇌성마비, 산모 사망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즉, 산모가 생존했더라도 심각한 장애를 입은 경우엔 어떠한 국가 보상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가족 입장에선 ‘살아 있어도 죽은 것 같은’ 현실 속에서 아무런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셈이다.

◆ 제도 개선 요구 커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미화 의원은 “여전히 분만 관련 사고의 사각지대가 넓다”며 “보상 범위와 예산을 확대해 산모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국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또한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합병증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보상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출산은 단순한 개인의 일이 아니라 국가가 함께 지켜야 할 생명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선진국 중 상당수는 산모의 건강 피해에 대해서도 정부가 일정 부분 책임을 지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제도는 여전히 ‘출산 후 사망’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중증 장애 산모는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중증 장애를 입은 산모나 저체중아 등으로 보상 대상을 넓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며, 예산 확보 방안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시행 시기나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한 가정의 비극을 넘어 제도적 공백을 드러낸 사례다. 출산 과정에서 생긴 불가항력적 사고에 대한 지원이 보다 폭넓게 이뤄져야, 산모와 가족들이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