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비싸서 못 먹는데…해외선 ‘기피 대상’, 많이 먹자 장려하는 뜻밖의 ‘식재료’

2025-11-07 10:25

add remove print link

버려진 부위의 놀라운 변신, 내장의 재발견
생존의 지혜에서 미래 식량까지

한국에서는 고소한 불 맛과 쫄깃한 식감으로 사랑받는 곱창·대창 등 내장육이, 서구권에서는 오랫동안 ‘기피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영양·환경·윤리의 관점에서 내장이 ‘지속 가능한 단백질’로 재조명되고 있다. 먹기 꺼려 했던 내장 부위가 오히려 인류의 미래를 위한 식재료로 평가받는 아이러니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기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자료 사진
기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자료 사진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최근 “서구권에서도 내장육 소비를 늘려야 한다는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고 서울경제는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영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코에서 꼬리까지(Nose-to-Tail)’라는 철학을 다시 주목하고 있다. 이는 도축된 동물의 모든 부위를 남김없이 활용하자는 개념으로, 과거의 생존 지혜를 현대의 지속가능성 논의로 확장한 것이다.

서구에서는 오랫동안 스테이크나 양 다리처럼 근육 부위 위주의 소비가 절대적이었다. 반면 간, 신장, 심장 등 내장은 값싼 고기로 취급되며 식탁에서 밀려났다. 대부분의 내장이 수출되거나 사료로 전용됐고, 현지 소비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근엔 ‘저탄소 식습관’과 ‘푸드 웨이스트(음식물 쓰레기) 감소’가 전 세계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내장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내장은 영양학적으로도 고단백·고영양 식품으로 꼽힌다. 소간 100g에는 하루 권장 철분의 36%가 들어 있으며, 비타민 A·B·E와 미네랄, 필수 지방산이 풍부하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내장육의 영양 밀도는 일반 근육 부위보다 오히려 높다. 영국의 한 연구팀이 육식 소비자 39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일수록 내장 요리를 더 맛있게 예상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겹다’, ‘비위가 상한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해, 문화적 거부감이 가장 큰 장벽으로 남아 있다.

곱창구이 / Aujchareeya Duangviboon-Shutterstock.com
곱창구이 / Aujchareeya Duangviboon-Shutterstock.com

환경적 관점에서 보면 내장은 ‘윤리적인 육식’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같은 양의 단백질을 얻기 위해 도축해야 하는 동물 수를 줄일 수 있고, 버려지는 부위를 활용함으로써 탄소 배출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지속가능성 연구자들은 “내장 소비 확대는 단백질 공급의 현실적인 전환이자 윤리적 선택”이라고 평가한다. 일부 영국 셰프와 미슐랭 레스토랑은 이미 간, 심장, 위 등 내장 요리를 다시 메뉴에 올리며 이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사실 내장 소비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식습관 중 하나다. 수렵채집 시대에는 동물 한 마리를 잡으면 버리는 부위 없이 모두 먹는 것이 생존의 기본이었다. 내장은 고대 국가와 종교 의식의 제물로도 쓰였다. 한국의 곱창구이, 프랑스의 안두이유(돼지 창자 소시지), 페루의 모친치타(소 위 튀김) 등은 모두 이 오래된 식문화의 흔적이다.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내장’을 조리하고 발전시켜온 것은 단순히 입맛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환경의 문제이기도 했다.

유튜브, 요리공부

반면 한국에서 내장은 이미 ‘귀한 음식’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곱창과 대창은 씹을수록 고소한 지방의 향이 입안에 퍼지고, 숯불에 구울 때 나는 불 맛이 중독성을 만든다. 단백질과 철분, 비타민 B군이 풍부해 한때는 영양 보충식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버릴 게 없는 소’라는 한국인의 식문화 정신은 내장 요리를 자연스럽게 일상화시켰다.

내장육 / photohwan-Shutterstock.com
내장육 / photohwan-Shutterstock.com

내장 요리가 대표적인 외식 메뉴가 된 배경에는 ‘공유의 문화’와 ‘조리의 번거로움’이 있다. 내장은 손질 과정이 까다롭고 냄새 제거가 쉽지 않아 가정보다는 전문점에서 먹는 문화가 형성됐다. 여럿이 둘러앉아 곱창을 굽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풍경은 한국 회식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곱창전골, 막창구이, 대창덮밥 등으로 발전하면서 내장은 더 이상 서민음식이 아니라 하나의 ‘외식 브랜드’로 성장했다.

가격이 비싼 이유는 공급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소 한 마리에서 나오는 곱창과 대창의 양은 극히 적고, 손질 과정에 인건비가 많이 든다. 숙성·세척·숙달된 조리 기술이 필요해 유통 비용도 자연스럽게 높다. 최근 수요가 늘면서 수입 단가가 상승했고,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은 더 비싸졌다. 이제 곱창 한 접시는 단순한 ‘고기’가 아니라, 시간과 기술, 희소성이 모두 들어간 프리미엄 음식으로 인식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서구에서는 한때 ‘혐오 음식’이던 내장이, 한국에서는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 됐다. 그러나 이 차이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 환경, 건강, 윤리라는 새로운 관점 속에서 내장은 다시금 인류가 주목해야 할 단백질로 자리매김 중이다. 내장은 더 이상 낡은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증명해온 가장 오래된 지속가능한 단백질이다.

home 김희은 기자 1127khe@wikitree.co.kr

NewsC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