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동서발전 일산본부, 지반침하 복합재난 모의훈련…“유관기관 협력 실효성 시험대에”
2025-11-10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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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시청·소방서 등 9개 기관 참여…“시나리오 훈련 넘어 현장 대응력 검증해야” 지적도

[전국=위키트리 최학봉 선임기자] 한국동서발전이 최근 일산발전본부에서 실시한 재난대비 상시훈련이 단순한 정기행사를 넘어 실제 대응체계의 문제점을 확인하는 ‘현장 검증의 장’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5일 오후 고양시 일산발전본부에서는 지반침하로 인한 복합재난 상황을 가정한 합동훈련이 열렸다. 이번 훈련에는 고양시청, 일산소방서, 주민자치회 등 9개 기관 관계자 140여 명이 참여했으며, 화재·폭발·유해화학물질 유출을 포함한 다중 재난 시나리오에 따라 대응 절차가 점검됐다.
훈련은 ▲초기상황 접수 및 비상대책본부 가동 ▲직원 전원 대피 ▲화재 진압 및 인명 구조 ▲부상자 이송 및 오염 확산 차단 등 실제 재난 단계별 조치 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현장에서는 기관 간 통신 체계와 지휘·전파 구조의 효율성, 주민 대피 안내 체계의 정확성이 중점적으로 점검됐다.
훈련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각 기관이 역할에 맞게 움직였지만, 실제로는 보고 체계가 겹치거나 현장 판단이 늦어지는 문제가 일부 드러났다”며 “훈련 이후 실질적인 매뉴얼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역주민들도 이번 훈련에 직접 참여했다. 주민들은 대피 절차와 행동요령을 숙지하며 비상 상황 시 필요한 대응법을 체험했다. 그러나 일부 주민은 “훈련이 미리 예고돼 있어 실제 긴급상황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며 “현장성 강화를 위해 불시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매뉴얼은 완벽하지만, ‘실제 대응 인력’은 비어 있다
공기업의 재난훈련은 통상적으로 보고 체계, 비상대책본부 가동, 주민 대피 등 매뉴얼 순서에 맞춰 진행된다. 그러나 문제는 현장 대응의 주체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훈련에 참여한 한 소방 관계자는 “훈련 당일은 매뉴얼대로 돌아가지만, 실제 사고가 터지면 현장 인력의 절반은 하청업체 근로자들”이라며 “이들은 매뉴얼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재난안전 전문가들은 “공기업의 재난훈련은 형식보다 실효성이 중요하다”며 “매뉴얼 점검을 넘어, 통신망 장애나 현장 인력 부족 같은 현실적 변수를 훈련에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동서발전의 이번 훈련은 형식적 행사가 아니라, 재난 대응의 ‘구멍’을 드러낸 귀중한 실험이었다. 공기업이 진정한 안전문화를 세우려면 “훈련을 했다”가 아니라 “훈련에서 무엇을 고쳤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제는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짜는 일보다, 예측 불가능한 현실을 버틸 수 있는 실행력을 세우는 일이 더 시급하다.
이번 훈련은 일산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복합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상시체계 구축의 일환으로, 동서발전은 연내 후속 평가를 통해 각 기관별 개선안을 도출할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