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검찰 간부 “검찰 역사 통틀어 가장 치욕적으로 권력에 굴복”
2025-11-1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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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노만석 총장 대행에게 사퇴 요구
“항소 포기 지시하면서 항소 기준을 고려했다는 말은 헛소리”

정유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이 9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지난 7일 검찰이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에 대한 항소를 포기한 데 대한 공개 비판이었다. 글 제목은 ‘대검 차장은 내 책임이라고 하였으니 응당한 책임을 지라’였다.
정 연구위원은 글에서 “대검 차장(노 권한대행)은 ‘대장동 사건은 통상의 중요 사건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는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다’라고 강조했다”라면서 “그의 입장문은 짧고 실질적인 내용도 없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킬링포인트가 있다. 그는 검찰 역사를 통틀어 가장 치욕적으로 권력에 굴복한 검사로 이름을 남기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연구위원은 “이제 와서 그만둔다 해도 이미 돌이킬 수 없지만, 권력에 굴종한 자를 조직의 수장으로 두고 같은 치욕을 감당해야 하는 후배들의 입장을 생각할 능력이 있다면 ‘저의 책임’이라고 내뱉었으니 책임지고 그 자리를 사퇴하라”고 말했다.
그는 항소 포기 결정을 비판하며 “노 차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장동 사건과는 다른 사건의 판결문을 참고했는가? 아니면 다른 검사들과 다른 항소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또 “판결문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무리 봐도 1심 판결문에서 ‘이건 항소를 포기해야겠구나’ 하는 결론이 나오지 않던데, 대검 차장은 어떤 논리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정 연구위원은 “공소장에 따르면 대장동 사건은 단군 이래 최대, 최악의 권력형 부패비리이자 현직 지자체장이 민간인들과 결탁해 수천억 원의 개발이익을 빼돌린 엄청난 사건이다. 일부 공소사실이 무죄로 선고됐고, 수천억 원을 추징 구형했지만 피고인 김만배에 대한 추징이 10%도 인용되지 않았다”며 “통상적인 기준이라면 항소는 당연한데, 항소 포기를 지시하면서 항소 기준을 고려했다는 말은 헛소리”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대검 차장은 법무부의 의견을 참고했다고 했는데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모르는 일’이라며 부인했다. 대검 차장이 거짓말을 한 건가, 아니면 장관의 지시에 따랐음에도 버림받은 건가. 어느 쪽이든 굴욕적이다. 아니면 장관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참고했다는 말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어 “만약 법무부 관계자의 의견을 참고했다면 그 사람은 대장동 사건의 내용과 증거관계를 제대로 아는 사람인가. 일선 검사들이 항소 제기가 맞다고 강력히 주장했는데 이를 묵살하고 사건을 잘 알지도 못하는 관계자의 의견에 더 무게를 실은 이유가 무엇인가. 후배들을 믿지 못하고 외부 의견을 더 신뢰하는 사람이 조직 수장 역할을 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중앙지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항소 포기를 밀어붙여놓고 ‘협의했다’며 책임을 분산시키는 태도는 비루하고 치졸하다. 같은 검사라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또 “이 말도 안 되는 항소 포기 지시로 대통령 관련 사건 재판에서 다른 피고인과 증인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거짓 진술을 이어가며 수사검사들을 욕보일 것이다. 그 결과를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비판했다.
그는 “대검 차장은 ‘일선 검사들의 노고에 감사한다’고 했는데 그 말조차 분노를 자아낸다. 수년간 정치권의 비방과 음해에 시달리며, 국회에서 피고인 앞에 불려 나가 수모를 겪으면서도 정의감과 책임감으로 일해온 후배들이다. 그들의 노고를 허무하게 짓밟으면서 ‘감사한다’는 말이 입에 나올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대검은 일선 검사와 직원들이 맡은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곳이지, 정치권의 영향이 일선까지 내려가게 만드는 곳이 아니다. 개별 사건에 일일이 관여하는 건 갑질이고 정치질이다. 이번 어리석은 결정에 동의한 대검 간부들도 국민과 후배 앞에 석고대죄하고 함께 사퇴하라”고 밝혔다.
정 연구위원은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 명태균 씨의 공천 개입 등 의혹에 대한 수사를 뭉갰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앞서 박영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은 전날 노 권한대행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대장동 사건 항소를 포기하도록 지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검사로서 법치주의를 허물고 정권에 부역해 검찰에 오욕의 역사를 만든 책임을 지고 당장 사퇴하라. 더 이상 당신을 검찰 선배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박 연구위원은 또 차순길 대검 기획조정부장에게도 사퇴를 요구하는 문자를 보냈다. 노 권한대행은 심우정 전 검찰총장 사퇴 이후 권한대행으로 직무를 수행 중이며, 항소 포기 결정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차 부장은 노 대행을 보좌하는 대검 참모진의 대표로 지목됐다.
박 연구위원은 이진수 법무차관, 성상헌 법무부 검찰국장에게도 “항소 포기 결정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는 대장동 관련 사건 보고 라인에 있는 정성호 법무장관을 제대로 보좌하지 않고 검찰이 독단적으로 항소 포기를 결정하게 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은 과거 전주지검장으로 재직하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전 사위 서모씨가 연루된 ‘타이이스타젯 특혜 채용’ 의혹 수사를 지휘하고 문 전 대통령을 재판에 넘긴 바 있다.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단행된 검찰 인사에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됐다. 그는 다이아몬드 반지 등 수천만 원대 결혼 예물 가격을 모두 1000원으로 신고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