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하이브리드가 필요한가… 혼다 어코드 터보 시승기
2025-11-1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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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세그먼트와 디자인, 기능들… 하지만 이를 원하는 소비자 분명 있어
혼다 어코드를 시승했다. SUV와 크로스오버가 대세가 된 시장에서 세단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게다가 친환경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순수 내연기관 자동차는 더 이상 주류가 아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어코드 터보는 분명 ‘올드스쿨’에 가까운 모델이다.
그러나 이런 올드스쿨이 여전히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SUV 일변의 시대에도 “차는 세단이지”라고 말하며, 연간 주행 거리가 많지 않아 굳이 비싼 하이브리드를 선택할 이유가 없는 이들이 그들이다. 어코드의 가격은 4350만 원으로, 수입 세단 중에서도 가장 합리적인 수준이다. 과연 혼다 어코드는 어떤 매력을 지니고 있을까.

국내에서 판매 중인 어코드는 2023년 출시된 11세대 모델이다. 낮은 프런트뷰와 스포트백을 연상시키는 루프라인을 갖췄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다소 보수적이다. 경쟁 모델인 현대 쏘나타나 토요타 캠리와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다. 스포트백처럼 매끄러운 루프라인을 지녔지만 비율은 전형적인 3박스 세단에 가깝고, 얌전한 캐릭터 라인과 단정된 전·후면부는 평면적인 인상을 준다. 입체감을 강조하는 최근 디자인 트렌드와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
게다가 어코드 터보는 편의 사양을 대폭 줄이며 17인치 휠을 선택했다. 17인치는 아무런 옵션도 더하지 않은 기본형 쏘나타의 휠 사이즈와 같다. 아무래도 외형적으로 보여지는 '멋'은 덜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디자인 기조는 실내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전통적인 T자형 대시보드 구조를 갖췄으며, 대시보드의 모든 버튼은 물리 버튼으로 구성됐다. 심지어 요즘 대부분 제조사들이 선택하고 있는 전자식 기어노브 대신 '말뚝'이라고도 부르는 기계식 기어노브를 사용한다. 12.3인치의 센터 디스플레이와 전자식 클러스터를 갖췄지만, 최신 차량들과 비교하면 옛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보수적이라는 것은 다른 의미로 익숙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각종 기능을 센터 디스플레이 안에 욱여 넣은 최신 차량들과 달리, 어코드는 조작이 직관적이고 간단하다. '여기에는 이 버튼이 있겠지' 예상되는 곳에는 그 버튼이 위치하고 있으며, 물리식 버튼이기에 작동 여부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앞서 이야기했듯 혼다코리아는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많은 편의 사양을 포기했다. 대표적으로 이 차에는 통풍 시트와 내비게이션, 전동식 트렁크가 빠졌다. 내비게이션은 앱 커넥트를 활용할 수 있지만, 통풍 시트에 민감한 국내 소비자들은 아쉬워할 가능성이 높다.

어코드 터보에는 4기통 1.5ℓ 가솔린 터보 엔진이 탑재됐다. 최고출력은 190마력, 최대토크는 26.5kg·m를 낸다. 국내에서 크기와 배기량이 가장 유사한 차종은 현대 쏘나타 1.6 터보로, 두 차량의 수치는 거의 비슷하다. 출력은 어코드가 10마력 높고, 토크는 0.5kg·m 차이로 쏘나타가 더 높다. 공차중량 역시 15kg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가장 큰 차이는 변속기 구성이다. 어코드는 CVT를, 쏘나타는 8단 자동변속기를 사용한다.
어코드는 1700rpm부터 최대토크가 발휘된다. CVT 변속기와의 조합 덕분에 시내 주행에서는 2000rpm을 넘길 일이 거의 없다. 최적의 토크 구간에서 회전수가 일정하게 유지된 채 속도가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방식이기에 일반적인 가속 상황에서는 2000rpm 부근에서 충분한 힘을 낸다. 하지만 가속 페달을 깊게 밟을 경우 6000rpm까지 올라갔던 회전수가 마치 토크컨버터 변속기와 같은 변속 모션을 연출한다. 이는 CVT 특유의 단조로운 가속감을 다이나믹하게 꾸민 세팅으로 보인다.

기어 노브를 한 번 더 내리면 스포츠 모드로 전환된다. 이때 엔진 회전수는 약 3000rpm을 유지하며 가속 페달 반응이 한층 예민해진다. 그러나 배기량이 작은 중형 세단의 한계상 폭발적인 가속감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 CVT 변속기임에도 패들 시프트를 적용한 차량들이 있지만, 어코드에는 장착되지 않았다. 이 차량의 지향점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 주행에서 확인한 연비는 예상보다 좋았다. 어코드 터보의 공인 복합 연비는 12.9km/ℓ이지만, 저녁 8시 서울 중구에서 경기도 고양시까지 이동한 퇴근길 주행에서는 트립 컴퓨터상 약 16km/ℓ를 기록했다. 도심 정체 구간과 원활한 간선도로 주행이 반씩 섞인 조건이었다.최대한 낮은 회전수를 유지하려는 CVT 변속기의 특성을 잘만 살린다면, 제법 좋은 연비를 달성할 수 있다.

어코드의 승차감은 동급의 쏘나타나 캠리보다 탄탄한 편에 속한다. 특히 노면의 피드백을 탑승자에게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편이라, 전형적인 일본차보다는 유럽차의 하체 감각과 비슷하다. 탑승자에 따라서는 잔진동이 많이 들어온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속방지턱과 같은 큰 충격에는 의외로 차분한 승차감을 전달한다. 과속방지턱을 밟는 순간부터 내려가는 순간까지 균등한 충격을 운전자에게 전달하며, 높은 속도로 방지턱을 지났을 때도 불쾌한 느낌을 전하지 않았다. 이는 17인치 휠과 높은 타이어 편평비도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으리라 예상된다. 실제로 2년 전에 시승했던 어코드 하이브리드보다 과속방지턱은 더 말끔히 지나가는 듯 했다.
단단한 하체 세팅은 코너링에서도 강점을 드러낸다. 코너를 빠르게 통과할 때 롤과 피칭이 최대한 억제된 느낌이다. 이런 거동은 회피 기동에서도 잘 드러난다. 스티어링 휠의 크기가 동급 모델 대비 크다고 느껴졌지만 거동은 전륜구동 중형 세단치고 재빠르게 느껴진다. 다만 차체 거동에 비해 순정 타이어의 접지력은 다소 아쉬운 편이다. 성능이 좋은 타이어로 바꿔 장착한다면 코너링 한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어코드 터보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과 차선 중앙 유지 장치(LKAS)를 포함한 주행 보조 장치(ADAS) 성능이었다. 고속도로에서 ADAS를 작동 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ACC 버튼을 눌러 기능을 활성화한 뒤, 가운데 조그셔틀을 이용해 속도를 지정하고, LKAS 버튼을 눌러 기능을 작동시키는 3단계를 거쳐야 한다. 대부분의 최신 차량이 원버튼으로 ACC와 LKAS를 동시에 작동시키는 것과 비교하면 조작 과정이 불편하다.
ADAS의 성능도 아쉬웠다. 야간에 작동시킨 ACC는 때때로 감속하는 타이밍을 놓치며 급하게 속도를 줄이기도 했다. 추월을 위해 방향지시등을 켰을 때 가속이 즉시 이뤄지지 않아 답답하기도 했다. 최신의 적극적인 ACC 기술은 전방 차량과의 거리가 일정 수준 벌어져 있는 상황일 때, 수월한 추월을 위해 방향지시등을 켜는 순간부터 가속하기도 한다. 어코드는 차선 변경이 완료된 후 전방을 인식하고 급하게 가속했다.
LKAS 역시 곡률이 큰 도로에서는 차선 중앙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차선을 넘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토크감응형 스티어링 휠이 들어간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LKAS가 차선 중앙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많이 아쉬운 일이다. 전반적인 ADAS의 성능은 현대차나 토요타에 비해 한 세대 정도 뒤쳐진 인상을 준다.

전동화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순수 내연기관 차량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경쟁 모델인 토요타 캠리만 봐도 현 세대부터는 하이브리드 모델만 판매되고 있다. 연료 효율은 높아졌지만 배터리와 전기모터가 추가되면서 차량 가격은 상승했다.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경우 5280만 원으로, 터보 모델보다 약 1000만 원 비싸다.
하지만 주행거리가 길지 않은 운전자는 높은 연비로 인한 이득이 차량 가격을 상쇄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주행거리가 짧은 일부 소비자들은 전동화 중심의 자동차 생태계 변화를 반기지 않는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차량 가격이 수백만 원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다.
어코드 터보는 그런 소비자들에게 매우 적합한 차량이다. 보수적이지만 익숙하고, 수입 세단이지만 4350만 원이라는 낮은 가격이 책정됐다. 이는 국내에 판매되는 수입 세단 중 가장 낮은 가격이다. CVT 변속기 채택으로 순수 내연기관이지만 어느 정도의 효율성을 갖췄으며, 일본차 특유의 내구성을 생각한다면 유지 관리 부담도 크지 않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해 대거 빠진 편의사양이 아쉽긴 하지만 수긍할 수 있는 정도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아래 유튜브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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