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없으니 산에 '돈'이 널렸다... 값비싼 최고급 식재료가 쏟아지는 곳

2025-11-1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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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발길 끊긴 민통선에 들어가 돈을 버는 사람들

민통선 내부. / EBS
민통선 내부. / EBS

사람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곳. 철책과 지뢰 표식이 어른거리는 곳. 바로 민통선(민간인통제선)이다.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일정 거리 이내 지역인 이곳은 안보상의 이유로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다. 허가를 받은 극소수의 농민이나 연구자, 군인만이 드나들 수 있다. 민통선은 '돈이 깔린 땅'으로도 불린다. 70여 년간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아 오염되지 않은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어 토종꿀과 송이버섯, 약초 같은 귀한 자원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최근 EBS '한국기행'이 이 특별한 곳으로 들어갔다. 민통선 안에서 토종꿀을 채밀하고 송이버섯을 캐는 모습을 보여줬다. 방송은 “한로에서 상강 사이, 일 년에 단 한 번만 맛볼 수 있는 토종꿀”이라는 설명과 함께 민통선에서 토종꿀을 채취하는 모습을 소개했다.

민통선에 들어서려면 반드시 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업무 출입증을 받고 검문소를 지나야 하는데,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보면 또 하나의 검문소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부턴 부대에서 시키는 대로 특별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지뢰 경고 표식이 이어지고 철책선이 보였다. 최전방이라는 게 실감나는 순간이다.

위험한 경계 안쪽엔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생태의 보고가 펼쳐졌다. 민통선 안에선 멧돼지 무리를 만나는 일이 흔하다. 자연의 생명력이 살아 있는 증거다. 오염되지 않은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자생하고, 맑은 물과 공기를 먹고 사는 토종벌들이 꿀을 모으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토종벌이 살기엔 최적의 환경인 셈이다.

토종꿀. / EBS
토종꿀. / EBS

4월에 설치한 벌통에서 가을에 채밀하는데, 올해는 늦은 장마로 비바람이 몰아치는 극한 상황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비 때문에 벌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 저장해둔 꿀을 다 먹어버리기 때문에 날씨가 나빠도 채밀은 멈출 수 없다.

벌통을 만질 때는 쑥 연기로 벌들을 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벌은 소음을 아주 싫어해서 벌통을 두드리면 위에 있던 벌들이 다 밑으로 내려간다. 벌을 밑으로 내린 다음 꿀을 따는 방식이다. 뚜껑을 열 때가 가장 조마조마하다. 꿀이 얼마나 들었는지 그때서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벌통을 여니 황금빛 꿀이 모습을 드러냈다. 빈 공간 없이 꿀이 꽉 차 있었다. 오랜 시간 벌집 안에서 숙성된 토종꿀은 자연스레 진한 빛을 품고 있었다. 오염 하나 없는 민통선 안에서 한 해 동안 모은 꿀은 색이 진하고 향이 깊었다. 북한까지 갔다 온 벌들이 만든 이 꿀은 일반 지역의 꿀보다 쓴맛이 강하고 농도가 진했다. 방송에서는 이를 '남북통일 꿀'이라고 표현했다.

민통선 밖에선 자생하지 않는 특별한 꽃들이 많아 이곳 토종꿀만의 색다른 맛이 난다. 갓 채밀한 토종꿀을 맛본 이는 "단맛보다는 쓴맛이 강하다"며 "금강산 이북까지 갔다 온 꿀의 맛"이라고 표현했다. 가을 천하일미가 입안 가득 퍼지는 순간이었다.

민통선엔 꿀만 있는 게 아니다. 귀한 가을 송이버섯도 많다. 비가 와서 며칠 못 가본 산에 주먹만 한 송이가 곳곳에 숨어 있었다. 사람의 손이 거의 닿지 않은 덕에 자연산 송이는 크기가 크고 향도 진하다.

송이버섯. / EBS
송이버섯. / EBS

1등급 송이는 주먹 크기 정도이고 갓이 오므려져 있어야 한다. 방송엔 주먹보다 큰 1등급 송이가 땅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송이는 땅 위로 고개를 내밀면 그때그때 채취해야 한다. 그만큼 섬세한 버섯이 송이다. 하루 차이에도 갓이 펴지면서 등급이 달라진다.

기후에 민감해 재배가 어려운 송이는 가을에 20일에서 길게는 한 달 동안만 반짝 나타났다가 없어진다. 맛도 가격도 버섯 중 단연 으뜸인 자연산 송이는 하늘이 선물한 가을의 풍요다. 방송에선 이를 '가을 보물'이라고 표현했다.

이날 채취한 토종꿀과 송이는 숯불에 올라가 맛을 뽐냈다. 토종꿀을 한두 스푼 넣어 만든 비법 양념장을 돼지갈비에 발라 구웠고, 산에서 막 캐온 송이는 솔잎 향을 입혀 은은한 숯불에 구웠다. 청명하고 기품 있는 가을 향을 품은 송이에 토종꿀을 찍어 먹으면 송이의 쌉쌀한 향과 꿀의 달콤함이 어우러져 특별한 맛을 낸다. 그 향과 맛을 본 이웃들은 "송이와 갈비, 꿀의 조합이 다 맞아떨어져 정말 맛있다"며 "1년을 딱 기다려야만 먹을 수 있는 맛"이라고 감탄했다.

민통선은 분단의 상징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폐쇄성이 자연을 지켜냈다. 농약과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아 산림이 살아 있고, 야생 동물과 토종벌, 버섯이 그대로 남았다. 방송에서는 멧돼지 무리가 벌통 근처를 지나가는 장면도 공개됐다.

민통선에서 나온 꿀 한 병, 송이 한 송이는 '자연이 준 현금'이다. 출입이 제한된 만큼 인위적 채취가 불가능해 희소성이 높다. 민통선의 꿀과 송이는 일반 시장에서도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민통선 안에서 토종꿀을 채밀하고 송이버섯을 캐는 모습이 최근 EBS에서 공개됐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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