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탐사보도] 한국도로공사, “도로 위의 공기업은 왜 변하지 않는가”

2025-11-19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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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도로공사 2025 국감, 반복되는 부실의 실체를 추적하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2025년 국정감사는 한국도로공사의 상처 난 부분을 건드린 수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공사의 ‘몸 전체’가 어디가 어떻게 망가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해부에 가까웠다. / 사진=위키트리 DB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2025년 국정감사는 한국도로공사의 상처 난 부분을 건드린 수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공사의 ‘몸 전체’가 어디가 어떻게 망가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해부에 가까웠다. / 사진=위키트리 DB

[전국=위키트리 최학봉 선임기자]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것은 ‘사건’이 아니라 ‘구조’였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2025년 국정감사는 한국도로공사의 상처 난 부분을 건드린 수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공사의 ‘몸 전체’가 어디가 어떻게 망가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해부에 가까웠다. 국감장에 쏟아진 지적들은 개별 사안으로는 서로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로 연결하면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한국도로공사는 공공기관의 기본을 잃었다.”

본 탐사보도는 국감에서 드러난 단편들을 재구성해, 도로공사 내부에서 어떤 의사결정과 관행이 문제를 반복시키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피해가 누구에게 전가되는지 전국총괄본부(부산경남취재본부)가 추적한다.

1장. 휴게소 계약 구조: “중소상인만 일방적으로 쫓겨나는 시스템”

탐사 결과, 휴게소 운영의 핵심 문제는 ‘운영사→입점업체’로 이어지는 종속적 계약 구조에 있다.

운영사 교체 1회 = 10년 생계가 하루 만에 무너짐

도로공사는 “운영사가 바뀌면 입점업체 계약도 자동 종료된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법적 필수도, 기술적 한계도 아니다. 이는 도로공사가 만든 관행이며, 그 결과 수백 개의 자영업자·지역 중소기업이 8년 동안 절반 이상 매장을 잃었다.

입점업체들은 실적을 쌓아도, 품질을 올려도, 지역 일자리 기여도를 높여도 보호받지 못한다.

운영사의 임대차 계약에 종속시키는 방식은 사실상 **“운영사가 당신의 생계를 결정한다”**는 의미다.

공사는 왜 개입하지 않는가?

취재 과정에서 한 전직 도로공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운영사와의 계약을 단순화하려고 입점업체 문제에 깊게 개입하지 않으려는 조직 문화가 있었다.”

즉, 공사가 적극적인 감독자가 아니라 운영 편의성만 따지는 조정자 역할로 후퇴한 것이다.

2장. 기록이 없는 조직: 출장보고서 7%의 민낯

공공기관은 기록으로 말해야 한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스스로 만든 원칙을 조직 내부에서 먼저 파괴했다.

‘출장 10건 중 9건 미기록’이라는 충격

탐사 취재에서 드러난 공사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록 부재였다. 출장의 목적, 회의의 결과, 결정 사항이 문서 없이 관행으로 처리되고 있었다. 시스템 개편도 소용 없었다

공사는 2025년 초 전산 시스템을 도입하고 규정을 개정했지만, 기록률은 여전히 바닥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규정은 있어도 교육과 통제가 없고, 책임자도 없고, 기록을 작성하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즉, 기록을 남기지 않아도 괜찮은 조직문화가 이미 굳어져 있다.

이 구조에서는 어떤 정책 실패가 생겨도 책임자를 특정할 수 없다. 실패는 사라지지만, 문제는 반복된다.

3장. 유휴부지 5.6배의 그림자: “공사 내부 누구도 모르는 땅이 너무 많다”

여의도 면적 5.6배에 이르는 유휴부지가 수십 년째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은 국감에서 가장 날카로운 비판을 받았다.

묻힌 땅, 묻힌 책임 도로공사는 “활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익숙한 표현을 반복하지만, 실제로는 극히 일부만 활용 계획이 세워져 있다. 절차는 느리고, 보고는 부실하고, 책임자는 없다.

더 큰 문제는, 공사 스스로 유휴부지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사례까지 있다는 점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무단점유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어도 누가, 언제, 어떻게 그 땅을 쓰고 있는지

제대로 된 데이터조차 없었다. 이는 단순한 관리 부실이 아니라 재정 리스크다. 땅은 자산이지만, 관리되지 않으면 부채의 씨앗이 된다.

4장. 공사의 본질적 질문: “공기업이냐, 대행업체냐”

탐사보도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한 질문을 던졌다.

“한국도로공사는 여전히 공기업인가?” 휴게소 계약은 운영사가 좌우하고, 입점업체는 보호받지 못하고, 자산은 방치되고, 의사결정은 기록되지 않고, 책임은 어느 누구도 지지 않는다. 이 구조는 공기업의 모습이 아니다. 민간 운영사 사이에서 조정만 하는 ‘대행업체’에 가깝다.

공기업은 국민의 권리·안전·재정·서비스 품질을 책임지는 기관이어야 한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이번 국감에서 이 기본 명제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변화는 기술이 아니라 ‘책임감 있는 조직문화’에서 시작된다

도로공사의 문제는 제도 이전에 조직문화의 실패다. 기록이 남지 않는 조직, 책임이 분명하지 않은 조직, 운영 편의성이 공공성을 앞서는 조직,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손대지 않는 조직.

이 구조에서는 어떤 기술 혁신도, 어떤 시스템 도입도 효과가 없다. 공사가 바뀌지 않으면, 2026년 국감에서도 똑같은 지적들이 반복될 것이다.

국민은 매일 통행료를 낸다. 그 통행료가 관리되지 않는 시스템, 책임지지 않는 조직, 공공성을 잃은 문화에 쓰이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국정감사 경고다.

부산경남취재본부(전국총괄본부)는 계속해서 추적하며 후속 보도를 이어갑니다.

home 최학봉 기자 hb7070@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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