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유명한데... 막상 가면 한국인들은 유독 실망한다는 독일 대표 관광지

2025-11-2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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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유럽 3대 썰렁 관광지'로 불리기까지

로렐라이 / ARD 영상 캡처
로렐라이 / ARD 영상 캡처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이 말이 가슴속에 그립게도 끝없이 떠오른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흥얼거려본 노래 '로렐라이 언덕'. 중학교 음악 시간 교과서에 실린 이 노래는 독일 라인강변의 전설적인 관광지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그런데 막상 현장을 찾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생각보다 평범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왜 그럴까.

로렐라이는 독일 라인란트팔츠 주 장크트고아르스하우젠 근방의 라인강 오른쪽 기슭에 위치한 높이 132m의 바위 절벽이다. '요정의 바위'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독일어로 '소리가 나는 바위'를 의미하는 ‘Loreley’에서 유래했다. 라인강이 이 지점에서 ㄱ자로 굽이치며 강물이 절벽에 부딪혀 특유의 소리를 낸다고 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로렐라이 풍경 / 구글맵
로렐라이 풍경 / 구글맵

이 언덕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건 전설과 문학 덕분이다. 실제로 이 부근은 강폭이 좁고 수면 아래 암초가 많은 데다 급격히 굽어 있어 예로부터 배들의 사고가 잦았다. 이런 지형적 특성을 바탕으로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문학가들이 로렐라이 전설을 만들어냈다. 맨 처음은 1802년 작가 클레멘스 브렌타노의 설화시였다. 라인강을 항해하는 뱃사람들이 바위 위 요정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도취돼 넋을 잃고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배가 물결에 휩쓸려 암초에 부딪쳐 난파한다는 줄거리였다.

로렐라이 풍경 / 구글맵
로렐라이 풍경 / 구글맵

이것이 1824년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로 이어졌고, 1837년 프리드리히 질허가 곡을 붙여 민요풍의 가곡으로 탄생했다. 이 노래는 여러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한국에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알려져 음악 교과서에 실렸다. 여러 세대에 걸쳐 불린 이 노래 때문에 로렐라이는 한국인들에게도 동경의 대상이 됐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이 말이

가슴속에 그립게도 끝없이 떠오른다

구름 걷힌 하늘 아래 고요한 라인강

저녁 빛이 찬란하다 로렐라이 언덕

저편 언덕 바위 위에 어여쁜 그 색시

황금 빛이 빛나는 옷보기에도 황홀해

고운 머리빗으면서 부르는 그노래

마음 끄는 이상한 힘 로렐라이 언덕

이 노래가 만들어낸 로맨틱한 이미지와 전설 덕분에 로렐라이는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됐다. 2003년에는 라인강변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프랑크푸르트와 쾰른 사이 라인강 중류에 위치해 접근성도 좋다. 뤼데스하임에서 유람선을 타고 라인강을 따라 이동하면 강변의 중세 고성들과 포도밭이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로렐라이 언덕에 오르면 라인강과 강변의 고성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막상 현지를 찾은 한국인 여행객들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하다. 언덕 자체가 생각보다 낮고 평범하다는 것이다. 국토의 70%가 산지인 한국에서는 강변의 이런 경치가 그리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팔당댐이나 영월 동강 주변의 풍경과 비슷하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의 하식애(하천이 깎아 만든 절벽) 지형들과 유사한 구조라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로렐라이 풍경 / 구글맵
로렐라이 풍경 / 구글맵

"평생 소원을 풀었다"고 말했던 일본 히로히토 천황도 "정작 와보니 너무 초라해서 안 오고 상상하는 게 나았다"고 중얼거렸다는 일화가 전한다. 심지어 로렐라이는 덴마크의 인어공주 동상, 벨기에의 오줌 누는 소년 동상과 함께 '유럽 3대 썰렁 관광지'로 불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로렐라이가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평범한 바위 절벽을 '요정의 바위'라는 전설로 승화해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든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라인강을 따라 늘어선 중세 고성들, 4월 중순부터 10월 하순까지 운행하는 유람선, 강변의 아기자기한 마을들이 어우러진 전체적인 분위기도 한몫 한다.

로렐라이 언덕 / ARD 홈페이지

흥미롭게도 로렐라이 언덕 방문자센터 앞 광장에는 제주도의 돌하르방이 서 있다.제주시가 독일 로렐라이시와 국제우호교류 협정을 맺으며 기증한 것이다. 높이 3m의 문관과 무관 돌하르방 한 쌍이 당당한 모습으로 라인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기증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대한민국 제주시는 독일 로렐라이시와의 우호협력관계가 지속적으로 증진되기를 기원합니다. 그 우정의 징표로 제주시의 문화상징인 돌하르방을 로렐라이 시민들에게 기증합니다.“

로렐라이 언덕의 돌하르방 / 제주시 제공
로렐라이 언덕의 돌하르방 / 제주시 제공

제주 돌하르방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적 기능과 함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제주시민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상징물이다. 독일의 전설적인 관광지에 한국의 전통 문화재가 자리 잡은 것이다. 로렐라이시는 답례로 2010년 로렐라이 요정 인어상을 제주시에 기증했다.

로렐라이는 분명 한국인 입장에서 압도적인 절경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하이네의 시와 질허의 곡이 만들어낸 로맨틱한 분위기, 라인강을 따라 펼쳐진 중세 풍경, 그리고 전설이 현실이 된 듯한 묘한 감동은 여전히 유효하다. 노래로만 듣던 그곳에 실제로 서서 라인강을 내려다보는 순간, 수십 년간 상상했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

결국 로렐라이는 장소 그 자체보다 그곳에 담긴 이야기를 즐기는 여행지다. 한국의 강변 풍경과 닮았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 주변에도 로렐라이 못지않게 아름다운 풍경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그 풍경에 어떤 이야기를 입히느냐에 따라 평범한 바위가 전설의 언덕이 될 수도 있다는 교훈을 로렐라이는 보여준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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