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관계에서 폭력 피해 겪은 적 있나?’ 여성 7000명에게 물었더니...
2025-12-0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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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이상 겪었다’ 19.2%
국내 여성 5명 중 1명이 배우자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교제폭력 피해 경험률도 3년 전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1일 '세계 여성폭력 추방주간'을 맞아 발표한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의 실태와 대응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친밀한 관계 내 폭력 피해 경험률이 최근 3년 사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분석은 성평등가족부가 2021년과 지난해 수행한 여성폭력 실태조사를 토대로 김효정 부연구위원이 작성했다. 조사는 만 19세 이상 성인여성 약 7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국제 기준에 맞춰 여성폭력의 유형을 신체적·성적·정서적·경제적 폭력과 통제, 스토킹의 여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친밀한 관계는 일반적으로 전·현 배우자(사실혼 포함)와 전·현 연인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최근에는 소개팅이나 맞선으로 만난 관계까지 포함하기도 한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친밀한 관계의 형성을 목적으로 하거나, 친밀한 관계를 형성·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 피해의 경험까지 친밀한 파트너 폭력으로 포괄해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조사에서 친밀한 파트너로부터 신체적·성적·정서적·경제적 폭력 및 통제(5개 유형) 피해를 평생 한 번 이상 겪었다고 답한 비율은 19.2%로 집계됐다. 이는 2021년 16.1%보다 3.1%포인트(p) 늘어난 수치다. 신체적·성적 폭력(2개 유형) 피해 경험률도 2021년 10.6%에서 2024년 14.0%로 3.4%p 상승했다.
주목할 점은 전체적인 여성폭력 피해율 증가 폭보다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폭력 피해율 증가 폭이 더 크다는 것이다. 지난해 5개 유형에 대한 전체 여성폭력 피해 경험률은 35.8%로 2021년 34.9%에 비해 0.9%p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친밀한 파트너에 의해 발생한 폭력 피해율은 3.1%p 증가해 상대적으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기준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폭력 피해율(19.2%)이 전체 여성폭력 피해율(35.8%)의 과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성폭력의 주요한 형태일 뿐만 아니라 지난 3년간 그 비중이 더욱 커졌음을 보여준다.
조사 시점 기준 최근 1년간 친밀한 파트너 폭력 피해 경험률은 3.5%였으며, 연령대별로는 40~60대 중장년층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40대가 4.5%로 가장 높았고, 50대 4.4%, 60대 4.0%, 20대 3.1%, 30대 2.9%, 70세 이상 1.5% 순이었다. 특히 신체적·성적 폭력 피해 경험률이 가장 높은 연령대도 40대로 확인됐다.
이는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폭력이 젊은 연령대의 문제만이 아니며 중장년층에서도 다수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교제폭력 피해도 증가세를 보였다. 평생 교제폭력 피해 경험률은 2024년 6.4%로, 2021년 5.0%에 비해 1.4%p 증가했다. 신체적·성적 폭력 피해 경험률 역시 3.5%에서 4.6%로 1.1%p 늘었다.
최근 1년간 교제폭력 피해 경험률은 0.8%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신체적·성적 폭력 경험률은 0.6%였다. 교제폭력 피해는 전반적으로 젊은 연령대에서 높게 나타났다. 지난 1년간 교제폭력 피해 경험률은 5개 폭력 유형 모두에서 20대 여성이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19~29세 피해 경험률이 2.3%로 가장 높았고, 다른 연령대는 모두 1.0% 이하였다. 
김효정 부연구위원은 "전·현 배우자를 포함한 전체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피해 경험률은 중장년층에서 상대적으로 높지만, 배우자가 아닌 전·현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 피해는 젊은 연령대에서 더 높게 나타난다"며 "초혼 지연, 비혼 연령 증가 등 인구·사회학적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정서적 폭력 피해가 신체적 폭력의 2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다양한 폭력 피해 유형을 포함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 전반의 안전 인식은 일부 개선됐지만 여성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오히려 커진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사회가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2021년과 2024년 조사 모두 과반을 기록했으나, '안전하다'는 응답은 2021년 16.3%에서 지난해 20.9%로 4.6%p 증가했다.
반면 일상에서의 두려움은 증가했다. '두렵지 않다'는 응답이 2021년 34.6%에서 지난해 25.2%로 크게 낮아지고, 같은 기간 '두렵다'는 응답은 36.4%에서 40.0%로 늘었다. 여성 10명 중 4명이 일상생활에서 여성폭력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여성폭력 피해에 대한 사회 전반의 안전 인식은 다소 개선됐지만, 일상생활에서의 두려움은 오히려 커진 이러한 상반된 결과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여성폭력 피해에 대한 안전도 인식의 평균값이 2021년에 비해 다소 개선됐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안전도 인식이 일부 개선된 것과 관계없이 여성폭력 피해에 대한 두려움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됐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일상생활에서의 여성폭력 피해에 대한 높은 두려움은 친밀한 파트너의 폭력, 교제폭력 등 친밀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여성폭력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 여성폭력 피해로부터의 안전도는 현재 우리 사회 저변에 깔린 전반적인 여성폭력 피해에 대한 안전도를 측정하는 반면, 여성폭력 피해에 대한 두려움은 평소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반영하므로,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대한 공포가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 부연구위원은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 결과는, 여성의 안전이 사적인 관계 안에서도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스토킹처벌법과 스토킹방지법 제정 등으로 사회 전반의 안전 의식은 일부 개선됐지만,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폭력 및 교제폭력 피해가 심화되면서 여성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오히려 커지는 경향이 관찰됐다"며 "이는 여성들의 활동과 생활반경을 위축시켜 젠더화된 사회질서를 재생산하고, 다시 여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배경으로 작동하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숙 원장은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이 우리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대응은 충분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교제, 동거, 비혼 등 다양한 형태의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이 현실에 맞게 정비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 부연구위원은 향후 정책과제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ㅑ, 입법 공백 해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은 혼인관계와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 교제폭력은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이 담지하고 있는 혼인 및 혈연 관계에 대한 중심성은 현대사회의 변화하는 가족구조와 가족 실천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교제관계, 동거관계 등 다양한 양상의 친밀성을 포함하고 피해자의 인권과 안전 보장을 최우선에 두는 법적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도 한국 정부에 대해 가정폭력처벌법 목적 조항 변경, 반의사불벌죄 배제,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 폐지, 가해자 처벌의 확실성과 피해자 보호·지원 강화 등을 지속적으로 권고해 왔지만 아직 실질적인 변화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김 부연구위원은 "가정폭력처벌법을 제정한 지 30주년이 다가오는 현시점에서 해당 법이 거둔 성과와 한계를 면밀히 검토하고 가족 변화와 사회 요구를 반영한 개선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사회적 논의와 입법·정책적 검토를 통해 현대사회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친밀성의 실천과 변화를 포괄할 수 있는 실효적인 법적 기반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및 여성살해에 대한 국가 차원의 통계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범죄 사건의 통계 및 집계 시 피해자와 가해자의 성별, 연령, 관계를 필수 항목으로 포함하고 각 항목별 분석이 가능하도록 통계 시스템의 개선과 산출 체계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셋째, 여성폭력 통합 실태조사 추진을 제안했다. 경찰 신고 등 공식 통계에는 포착되지 않는 피해를 파악하기 위한 통합 실태조사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여성폭력과 관련된 실태조사는 개별 법률에 근거해 가정폭력, 성폭력, 여성폭력, 스토킹 등 유형별로 분절적으로 수행돼 왔으나, 2024년 3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개정되면서 여성폭력과 관련된 통합 실태조사를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김 부연구위원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발생하는 여성폭력의 현황과 실태를 파악하고 대응정책 수립을 위한 여성폭력 통합 실태조사를 추진해야 한다"며 "변화하는 젠더기반폭력의 양상을 반영하고, 통계 자료의 양적·질적 확장을 도모하는 통합 실태조사의 성공적인 추진을 통해 젠더기반폭력으로서 친밀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 방지 정책의 수립을 뒷받침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충실한 기초자료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