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400만원인데…취업난에도 아무도 안 하려는 직업의 정체
2026-02-18 09:24
add remove print link
고액 급여 뒤 숨겨진 열악한 노동 조건

최근 한 구인 사이트에 올라온 사택 기사 모집 공고가 온라인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월 400만원이라는 비교적 높은 급여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근무조건 탓에 지원자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냉소가 쏟아지고 있다. 일부 고소득층 가정의 가사 노동자들이 처한 답답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17일 에펨코리아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된 공고문을 보면 모집 직무는 사택 기사로, 사모님 외출 시 차량 운행은 기본이고 잡다한 잡무가 뒤따른다. 주된 업무와 부수 업무의 경계가 모호할 지경이다.
우선 반려견 수발을 들어야 한다. 반려견을 산책시키고 반려견을 위한 간식·용품을 사 와야 하고 반려견을 병원·미용실로 데리고 가야 한다.
사모님 심부름도 골칫거리다. 백화점, 마트에서 사모님이 적어주는 물품을 쇼핑해야 하고, 세탁소에서 세탁물도 찾아와야 한다. 수시로 집 마당도 정리해야 한다.
지원 자격은 경력 무관이지만 중소기업 총무팀이나 영업직, 물류회사 근무 경험자를 원한다고 암시돼 있다. 센스와 운전 능력을 갖춘 사람을 우대하며, 서울 강남 지역 지리에 익숙할 경우 가산 요소로 안내됐다.
실제 채용 과정에서는 운전 테스트를 통해 주행 능력을 평가한다. 또 성실한 태도와 함께 반려견 관리가 가능하고 정리정돈에 능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자격도 갖춰야 한다.
근무 조건을 보면 고용 형태는 개인 고용이며, 근무일은 평일에 더해 격주 토요일, 월 1회 공휴일 근무까지 포함된다.
근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로, 하루 11시간 근무가 기본이다.
급여는 월 400만원으로 제시됐으나, 중식대가 포함된 금액이며 4대 보험은 적용되지 않는다.
또 별도의 주차장이 없어 인근 거주자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할 수 있는 지원자를 찾고 있다.
이 같은 구인 공고가 알려지자 온라인에서는 "명목상 400만원이지 실질적으론 200만원대 수준"이라는 비아냥이 이어졌다.
한 누리꾼은 "4대 보험 고용주 부담분만 해도 월 70~80만원은 되는데, 이게 없다는 건 사실상 그만큼 임금을 깎아 먹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급여에 중식대가 포함된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일반적으로 직장에서 제공하는 식대는 급여와 별도로 지급되는 복리후생 항목이다. 그러나 이 공고는 중식대를 월급에 포함해 실질 임금을 낮춘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월 22일 근무(평일+격주 토요일) 기준으로 하루 1만원씩 중식비를 계산하면 월 22만원이 되는데, 이를 제외하면 실제 급여는 378만원 수준으로 줄어든다.
근무시간도 문제다. 하루 11시간씩 주 5.5일 근무하면 월평균 242시간을 일하게 된다. 법정 근로시간인 주 40시간(월 174시간)을 훨씬 초과하는 수준이다. 초과근무 68시간에 대한 수당이 제대로 반영됐는지 의문이다.
한 인사 전문가는 "4대 보험 미가입 일자리는 사실상 불법 고용에 가깝다"며 "근로자는 산재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퇴직금이나 실업급여 같은 기본적인 보호장치도 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업무 내용도 불공정 소지가 있다. 강아지 산책부터 백화점 쇼핑, 세탁소 심부름까지 기사 본연의 운전 업무를 넘어서는 잡무가 상당하다. 한 댓글에는 "이건 기사가 아니라 만능 집사를 구하는 것"이라는 반응이 달렸다.
'센스 있고', '태도가 좋으며', '깔끔한 성격'이라는 자격 요건도 눈총받았다.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감정노동을 강요하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한 구직자는 "차라리 택배 기사나 대리운전을 하는 게 수입도 낫고 자유롭다"며 "이 정도 조건이면 누가 하려 하겠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