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가 대대장 명령 거부 가능"…군인 '무조건 복종' 바뀐다

2025-12-1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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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도 위법한 명령 거부 가능, 변화하는 군 문화
맹목적 복종 시대 종료, 헌법 중심의 군 조직으로

이제 군대에서도 '까라면 까'라는 말은 옛말이 될 모양이다.

법이 바껴 군에서도 이제는 “이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그동안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절대적인 의무로 여겨졌지만, 앞으로는 명백히 위법한 명령에 대해서는 거부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뀔 전망이다. 공무원 사회를 넘어 군 조직까지 변화의 흐름이 번지고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국방부는 최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범여권 의원 10명이 발의한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에 찬성 의견을 밝혔다. 개정안의 핵심은 ‘위법한 명령은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원칙을 법에 명확히 적시하는 것이다. 단순한 내부 지침이 아니라 법률 조문으로 규정하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개정안에 따르면 군인복무기본법 제25조, 명령 복종의 의무 조항에 중요한 문장이 추가된다. 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경우에는 이를 거부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인사상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지금까지는 위법 여부가 의심되더라도 일단 명령을 수행한 뒤 문제를 제기하는 분위기가 강했다면, 앞으로는 사전에 거부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 셈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상관의 책임도 함께 강화된다. 제24조에는 군인은 헌법과 법령을 준수해 명령을 발령해야 한다는 문구가 새로 들어간다. 또 제36조 상관의 책무 조항에는 헌법이나 법령에 반하거나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는 사항을 명령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추가된다. 군 조직 전체가 헌법과 법률 위에 서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취지다.

충성의 개념도 재정의된다. 개정안은 제20조 충성의 의무 조항에 군인에게 헌법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국가와 상관에 대한 충성 이전에, 헌법 가치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충성이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라 헌법 질서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메시지다.

국방부는 제도 도입 과정에서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위법 명령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고려해, 구체적인 사례와 대처 방안을 교육하겠다고 밝혔다. 단순히 “싫으면 거부하라”는 식이 아니라, 어떤 경우가 명백한 위법에 해당하는지, 거부 절차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체계적으로 안내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명령의 위법성을 둘러싼 해석 차이로 현장 혼선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다소 이견이 있어도 일단 따르고 사후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제는 명령을 수행하기 전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행정과 업무가 지연되고, 그 피해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다.

육해공 전방부대 대비태세 점검에 나선 진영승 합참의장이 12월 15일 육군22사 GOP대대를 방문해 임무수행에 매진하고 있는 장병을 격려하고 있다. / 뉴스1
육해공 전방부대 대비태세 점검에 나선 진영승 합참의장이 12월 15일 육군22사 GOP대대를 방문해 임무수행에 매진하고 있는 장병을 격려하고 있다. / 뉴스1

군 내부에서는 전투 상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시나 작전 현장에서는 신속한 판단과 명령 이행이 생명인데, 명령의 적법성을 두고 논쟁이 벌어질 경우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투 현장에서 민주적 토론이나 합리적 의사결정이 항상 옳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정 논의는 군 조직의 오랜 숙제를 다시 꺼내 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 군에서 벌어진 인권 침해와 불법 행위 상당수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논리로 정당화돼 왔기 때문이다. 위법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군인을 명령 수행의 도구가 아닌 책임 있는 헌법 주체로 인정하는 변화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결국 관건은 기준과 교육이다. 어디까지가 명백한 위법인지, 현장에서 군인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구체적 지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혼란은 피하기 어렵다.

군의 기강과 헌법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 이번 법 개정 논의가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home 김민정 기자 wikikmj@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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