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선포됐을 때 미국이 윤 전 대통령에게 얼마나 배신감 느꼈으면...

2025-12-19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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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때 주한미국대사, 윤 전 대통령에게 직격탄
“윤 전 대통령, 조국도 모르고 국제 여론도 오판”

"이거 사칭 전화 아닌가?" 지난해 12월 3일 밤 주한미국대사 관저에서 잠자고 있던 필립 골드버그 당시 주한미국대사는 급하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휴대전화엔 부재중 전화가 쌓여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계엄이 선포됐다는 소식이었다. 충격이었다.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미국대사. / MBC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미국대사. / MBC

1년이 후 뉴욕에서 MBC 취재진과 만난 골드버그 전 대사는 그날 밤의 혼란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직후 미국 정부가 계엄을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하는 데 영향을 미친 그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일화를 추가로 공개했다. 윤석열 정부가 미국에 계엄을 옹호하며 야당의 국정 방해를 이유로 들었다는 사실을 처음 밝혔고,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계엄 직후 내놓은 정국 수습안에 대해 미국 측이 어떻게 판단했는지도 증언했다.

골드버그 전 대사는 현재 뉴욕대학교 국제문제센터에서 상주 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전화로 계엄 소식을 듣고 처음 든 생각에 대해 그는 "이거 사칭 전화 아닌가? 충격이었다. 빨리 상황을 따라잡고 워싱턴과 논의해야 했다"고 말했다.

외교부에서 온 전화에 회신했더니 전화를 건 이는 전혀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의 성명을 읽어 내려갔다. 통화 상대는 외교부 차관이었다. 골드버그 전 대사는 후속 이메일 인터뷰에서 당시 '용납할 수 없는 성명'을 읽은 이는 강인선 전 외교부 제2 차관이라고 확인했다. 그 순간 항의하면서 더 높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길 원했지만 주요 인사들이 용산 대통령실에 모여 있어 누구와도 통화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미국대사가 MBC와 인터뷰하고 있다.

대통령실 인사 한 명과는 간신히 통화가 됐는데 그는 실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대통령실 인사는 계엄 상황을 옹호하려 하면서 담화문을 참고하라고 했다.

정부 인사가 계엄 선포 이유를 미국 측에 설명한 내용에 대해 골드버그 전 대사는 "공식적인 설명은 야당이 윤 대통령의 비전, 입법 의제, 예산안을 가로막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일을 벌여왔다는 것이었다. 야당이 모든 것을 방해했다는 것을 매우 과장되게 강조했다. 그 이상의 논리를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의 설명도 대체로 비슷한 내용이었다. 또 하나, 계엄 조치가 서울의 대외 관계,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순간 골드버그 전 대사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아주 분명하게 경고했다. 한국 외교 관계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직접 반박했다.

미국이 사전에 경고를 받거나 계엄 징후를 파악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골드버그 전 대사는 "전혀. 어떤 것도 없었다. 주로 야당이 제기하는 소문 수준이었다. 외교가와 미국에서는 누구도 실제로 계엄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있다. / KTV 캡처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있다. / KTV 캡처

당시 한미 관계에서 매우 중요했던 경향은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마음의 합치'가 있었다는 점이라고 했다.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은 민주주의 정상회의 의장직을 맡아달라고 윤 전 대통령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이 야당에 거칠게 불만을 토로하던 순간이 있었지만 아무도 계엄 선포까지 나갈 것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국무부나 백악관에 전달했을 때 반응에 대해서는 "모두가 놀랐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주 신속하게 대응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과 논의의 초점은 미국 입장을 어떻게 대외에 알릴 것인지에 맞춰졌다. 마침 공개 행사 일정이 있었던 커트 캠벨 당시 국무부 부장관이 상당히 강경한 발언을 내놨다.

한국 측이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아 상황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에 대해 골드버그 전 대사는 "당시엔 소통 상대가 없어서 정보를 얻기가 매우 어려웠던 건 사실이다. 우리가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건 사실상 일반 국민들이나 똑같았다. 즉, 윤 대통령의 담화와 국회에서 벌어진 물리적 충돌 같은 상황들뿐이었다"고 말했다.

조태열 당시 외교부 장관에게 소통 단절의 잘못이 있다고 보진 않는다고도 했다. 그도 용산 회의에 참석해 있었기 때문이고 조 전 장관이 계엄을 지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도 충격 상태에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계엄일 조태용 당시 국가정보원장과 국정원장 공관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한 것에 대해 골드버그 전 대사는 "그날 저녁 식사는 제 송별 만찬이었다. 조태용 원장은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으로서, 이후에는 국정원장으로서 우리와 계속해서 접촉해 온 인물이다. 그래서 단순한 친교 만찬이었다"고 밝혔다.

송별연은 오후 8시에서 8시 30분쯤에 끝났고 아주 이른 저녁이었다. 이후에 벌어질 일을 짐작하게 하는 아무런 낌새가 없었다. 당시 조 전 원장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 부분은 자신이 아니라 그가 밝혀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의 '가치 외교' 행보를 고려할 때 일종의 '배신'이라고 묘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골드버그 전 대사는 "개념적인 측면에서, 분명히 그렇다. 워싱턴에서 누가 공식적으로 '배신'이라는 단어를 쓴 건 아니지만 그런 감정이 분명 존재했다고 느꼈다. 바이든 대통령이 얼마나 이 관계에 많은 것을 쏟아부었는데, 윤 대통령도 미국에 얼마나 투자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나 하는 깊은 실망감 말이다"라고 답했다.

계엄 선포를 보는 순간 한국이 민주주의에서 군부 통치로 바뀔 수 있다고 우려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골드버그 전 대사는 "그 순간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한국 국민들, 그리고 한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이 충격을 감당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모든 사태에서 가장 슬픈 부분은 윤 전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이, 자기 조국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다는 것이다. 한국에 이미 민주주의가 얼마나 깊게 뿌리내렸는지도 몰랐고, 결코 계엄 조치가 지속될 수 없다는 점도 이해 못했다"고 지적했다.

비록 당시 미국이 바이든 행정부 말기였고 정권 교체기를 맞고 있었지만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계엄 조치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은 국내 여론뿐만 아니라 국제 여론도 오판했다고 그는 말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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