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로 가족을 잃은 아버지가 꾸는 꿈, 너무 가슴 아프다
2025-12-27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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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야 너희를 기억할 수 있다” 세 가족을 잃은 아버지의 편지가 남긴 말
제주항공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로 아내와 두 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의 편지 글이 시민들의 마음을 깊이 울렸다.
차분하게 읽어 내려간 문장 하나하나에는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홀로 감당해온 슬픔과,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겠다는 다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편지는 추모의 자리를 넘어, 남겨진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기록이 됐다.
12·29 여객기 참사 유가족인 김 모 씨는 27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광주전남 시도민 추모대회에 섰다. 그는 하늘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무대 위에서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문장은 또렷했다. 말 사이사이마다 광장은 조용해졌고, 많은 시민들이 고개를 숙였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7C2216편 폭발 사고로 아내와 두 아들을 잃었다. 가족은 태국에서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던 길이었다. 인도에서 근무 중이던 김 씨는 태국 공항에서 “곧 다시 보자”며 가족을 먼저 한국으로 보냈다. 그 인사가 마지막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김 씨는 인도에 도착한 지 4시간 만에 사고 소식을 접했다. 그는 편지에서 “사고 소식을 듣고 숨을 쉴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24시간 동안 그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다짐했다고 했다. “절대 무너지면 안 된다.” 어떤 뉴스도 보지 않았고, 감정을 애써 눌렀다. 온전한 정신으로 가족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 하나뿐이었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 지인들의 문자로 비보를 접하며 “결국 크게 잘못됐구나”라는 예감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자신까지 무너지면 가족을 기억해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그를 붙잡았다. “나라도 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이유가 그를 버티게 했다.

김 씨는 여전히 가족의 카카오톡 프로필이 태국 여행 중인 모습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가족이 나오는 꿈을 자주 꾼다. 꿈에서는 함께 웃고 걷지만, 잠에서 깨는 순간 다시 현실이 찾아온다. 그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온다고 했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늘 웃음을 잃지 않았던 아내에 대한 미안함도 전했다. “더 잘해줄 수 있었는데 아무 것도 못해줬다”는 말에는 자책과 사랑이 함께 담겨 있었다. 장성해 술잔을 부딪히며 아버지를 응원해주던 첫째 아들, 세상을 막 알아가던 둘째 아들에 대한 기억도 하나하나 꺼냈다.
김 씨는 며칠 전 첫째 아들의 학교에서 열린 1주기 추모식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아들의 친구들과 교수님을 마주한 자리에서 그는 비로소 알게 됐다고 했다. “내 아들이 정말 잘 살아왔구나.” 그 사실이 가슴에 와닿는 순간, 그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막내아들은 꿈속에서 늘 초등학생 시절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귀엽게 아빠에게 매달리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김 씨는 “아빠라는 말이 이렇게 친근한 단어인 줄 이제야 알았다”며, 더 이상 들을 수 없기에 그 말이 더욱 아프다고 털어놨다.

김 씨는 대한민국에서 유가족으로 살아가는 현실이 너무나 힘들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겠다고 했다. 가족들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목이 터져라 외치고, 세상에 진실을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내 아들들의 삶을 파괴한 이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말은 분노이자 아버지로서의 책임이었다.
편지의 끝에서 그는 조심스레 바람을 전했다. “요즘 아무도 꿈에 나오지 않아 서운하다.” 누구든 꿈에 나와 아빠를 응원해달라는 말에는 깊은 외로움이 묻어났다. 마지막으로 그는 말했다.
“나는 영원히 너희들의 아빠임을 잊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