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콘크리트 숲, 그 안의 위태로운 생명들~712번의 구조 손길이 던지는 물음

2025-12-3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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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 이래 최다 기록 경신한 야생동물구조센터…빛나는 시민의식 뒤에 가려진 도시 생태계의 그늘

[위키트리 광주전남취재본부 노해섭 기자]우리가 살아가는 회색빛 도시, 광주. 빽빽한 아파트와 자동차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이 도시가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2025년 한 해 동안, 이 도시의 숨겨진 이웃들이 보낸 처절한 구조 신호가 712차례나 울렸다.

너구리 미아
너구리 미아

광주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가 문을 연 이래 역대 최다 기록이다.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를 넘어, 인간과 야생이 위태롭게 공존하는 도시 생태계의 현주소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도시의 숨겨진 이웃, 천연기념물부터 텃새까지

구조된 712마리, 73종의 면면은 놀랍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수달과 신비로운 새 팔색조,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 같은 귀한 생명들이 도시 한복판에서 고통 속에 발견됐다. 동시에 비둘기, 직박구리 같은 익숙한 텃새와 너구리, 족제비처럼 친근한 동물들까지, 그 목록은 광주가 얼마나 다채로운 생명을 품고 있는지를 증명한다. 센터는 이 중 261마리의 생명을 극적으로 살려내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2019년 개소 이래 6년간 센터의 손을 거쳐 간 생명은 총 4,062마리, 그중 1,435마리가 새로운 삶을 선물 받았다.

소쩍새 미아
소쩍새 미아

#빛나는 시민의식의 그늘, '과잉구조'와 '유리창'이라는 비극

이처럼 경이로운 구조 실적의 이면에는 위기에 처한 생명을 외면하지 않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소방서 등 유관기관의 발 빠른 협조가 있었다. 이러한 노력은 전국 16개 센터가 소속된 ‘한국야생동물센터협의회’가 국무총리 표창을 받는 영광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빛나는 성과의 그늘도 존재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선의의 실수'다. 특히 봄철 번식기, 어미로부터 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잠시 둥지를 떠난 어린 새(이소조)를 미아로 오인해 구조하는 '과잉구조'가 대표적이다. 어미의 돌봄 속에서 생존 기술을 배워야 할 새끼에게 인간의 섣부른 개입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구조 원인 1위로 꼽히는 '인공구조물 충돌', 즉 유리창과의 충돌은 도시 환경 자체가 야생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보여주는 비극이다.

수리부엉이
수리부엉이

#구조를 넘어 공존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

결국, 구조 건수의 증가는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그만큼 많은 동물이 인간이 만든 환경 속에서 다치고 죽어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정현철 보건환경연구원장은 "시민들의 자연보호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사고가 많았다는 뜻이라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제는 사후약방문 격인 '구조'를 넘어, 동물이 다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공존'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건물 유리창에 조류 충돌 방지 필름을 붙이는 작은 실천부터, 야생의 영역을 존중하는 도시 개발 계획까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당신의 신고가 생명을 살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우리 주변에는 고통받는 생명이 있을 수 있다. 어미를 잃었거나, 날개가 부러졌거나, 차에 치여 움직이지 못하는 동물을 발견했다면 주저하지 말고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당신의 관심 어린 신고 전화 한 통이 꺼져가는 작은 생명의 불씨를 되살리는 기적이 될 수 있다. 712번의 구조 기록은 바로 그런 기적들이 모여 만들어진 희망의 증거다.

home 노해섭 기자 nogary@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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