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故 안성기 애도 “따뜻한 미소 벌써 그립다”

2026-01-0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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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배우’로 기억될 것…고인 명복 빌며 영면 기원

이재명 대통령이 별세한 원로 배우 고(故) 안성기를 추모하며 “믿고 보는 배우를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배우 안성기 / 뉴스1
배우 안성기 / 뉴스1

이재명 대통령은 5일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영화사와 문화예술 전반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안성기 선생님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전한다”고 적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 대통령은 안성기의 연기를 “곧 삶”이라고 표현하며 그가 남긴 작품들이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었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시간이 되어주었다고 했다. 또 고인이 생전에 “영화를 꿈으로 연기를 인생으로 살아왔다”고 했던 말을 언급하며 안성기의 삶이 곧 연기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관객과 시청자에게 믿음을 주고 싶다”는 바람을 덧붙이며 안성기가 ‘믿고 보는 배우’로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진정성 있게 그려낸 배우로 오래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69년 동안 17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았던 열정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도 했다. 화려함보다 겸손을 보여줬고 경쟁보다 품격을 선택했던 삶에 경의를 표한다는 문장도 함께 남겼다. 마지막에는 “따뜻한 미소와 부드러운 목소리가 벌써 그립다”며 영면을 기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고인의 사망 소식에 근조화환을 보내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재명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이재명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배우 안성기는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30일 쓰러져 입원한 뒤 6일 만이다. 그는 2019년 혈액암 진단 이후 치료와 회복에 집중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2020년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이후 검진 과정에서 재발이 확인됐고 2022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투병 사실을 알린 바 있다. 몸을 추스르며 지내는 와중에도 가까운 이들에게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혀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그의 삶은 한국 영화의 시간과 나란히 흘렀다.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고 영화감독 김기영과의 인연을 계기로 1957년 ‘황혼열차’에 아역으로 출연하며 카메라 앞에 섰다. 어린 시절부터 수십 편 작품을 거쳤고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1968년 ‘젊은 느티나무’를 끝으로 잠시 연기를 멈췄다. 동성고를 졸업한 뒤 한국외대 베트남어과에 진학했고 전공을 살려 사회로 나가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10년 만에 다시 영화로 방향을 틀었다. 1978년 ‘병사와 아가씨들’로 복귀했고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청춘 덕배를 연기하며 대중에게 “어른 배우 안성기”의 출발을 각인시켰다.

이후 그는 장르와 인물을 가리지 않는 얼굴로 스크린을 채웠다. ‘만다라’에서는 수행자의 고뇌를 담았고 ‘고래사냥’에서는 삶의 밑바닥을 헤매는 인물도 마다하지 않았다. ‘남부군’ ‘하얀전쟁’에서는 전쟁의 상처를 끌어안은 캐릭터로 시대극의 중심을 잡았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피아노 치는 대통령’과 ‘한반도’에서 서로 결이 다른 대통령을 표현하며 중후한 존재감도 보여줬다. 웃음의 감각도 선명했다. ‘투캅스’로 대중적 흥행을 이끌었고 박중훈과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거친 액션으로 강렬한 장면을 남겼다. ‘라디오 스타’에서는 매니저로 분해 한 시대를 지나온 두 남자의 우정을 담아냈고 이 작품은 그가 특히 아꼈던 출연작으로도 거론된다.

대중의 기억 속 장면을 꼽자면 ‘실미도’를 빼기 어렵다. 한국 영화 최초 ‘천만’에 닿은 작품에서 그는 684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으로 서사를 지탱했고 “날 쏘고 가라!”라는 대사는 오랫동안 회자됐다. 최근작으로는 ‘노량: 죽음의 바다’에 출연해 마지막까지 배우로서의 밀도를 놓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연기상을 40여 차례 받은 이력도 그의 필모그래피와 함께 반복해서 언급된다.

작품 밖에서도 그는 ‘구설수 없는 배우’로 기억됐다.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을 지냈고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현안에서도 영화계 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1992년부터 20년 넘게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했으며 생명 존중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2013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2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늘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 “영화는 새로움의 연속이라 설렌다”는 그의 말은 끝까지 현장을 향했던 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남는다.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진행된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월 9일 오전 6시로 안내됐다. 장지는 경기 양평 별그리다다.

home 정혁진 기자 hyjin27@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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