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착제인데 전기가 흐른다? 네이처도 주목한 'SK온'의 역발상
2026-01-15 15:08
add remove print link
실리콘 음극의 300% 팽창 문제, 전도성 바인더로 해결되다
SK온이 연세대학교 연구진과 공동으로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의 난제로 꼽히던 실리콘 음극의 수명 불안정 문제를 해결할 핵심 소재 기술을 확보하고 상용화 가능성을 입증했다.
SK온은 연세대학교 정윤석∙김정훈 교수 연구팀과 협력해 전고체 배터리 환경에 특화된 전도성 고분자 바인더 PPMA 개발에 성공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기존 전고체 배터리가 가진 구조적 한계를 신소재 도입으로 극복했다는 점에서 학계와 산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 8일 서울대학교와 단결정 양극재 연구 성과를 공개한 데 이어 일주일 만에 음극 분야에서도 기술적 진전을 이뤄내며 차세대 배터리 주도권 확보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도 이번 성과를 비중 있게 다뤘다. 연구 논문은 배터리 내부의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바꾸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저항 문제를 해결하고, 기존에 사용이 제한적이었던 전도성 소재를 전고체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난해 12월 게재됐다.
이번 기술의 핵심은 실리콘 음극이 가진 치명적인 단점을 보완했다는 데 있다. 실리콘은 현재 음극 소재로 쓰이는 흑연보다 이론적으로 10배 이상의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 전기차 주행 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어 꿈의 소재로 불리지만 상용화 문턱은 높았다. 충전과 방전을 반복할 때마다 부피가 300% 이상 팽창하고 수축하는 물리적 특성 탓이다.
배터리 내부에서 음극 입자가 풍선처럼 부풀었다 줄어들기를 반복하면 입자 간 연결이 끊어지기 쉽다. 연결이 끊긴 구간은 전기가 흐르지 않는 죽은 공간이 되고 배터리 내부 저항을 높여 성능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액체 전해질을 쓰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그나마 입자들이 전해액 속에 떠 있어 접촉 유지가 수월하지만, 고체 전해질을 쓰는 전고체 배터리는 사정이 다르다. 고체 입자끼리 빈틈없이 닿아 있어야만 전기가 흐르는 구조라 입자 간 접촉 단절은 곧 배터리 수명 종료를 의미한다.
연구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접착제 역할을 하는 바인더에 주목했다. 기존에 널리 쓰이던 PVDF(폴리비닐리덴플로라이드) 바인더는 접착력은 있지만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였다. 접착력을 높이려 바인더 양을 늘리면 오히려 전기의 흐름을 막아 효율이 떨어지는 딜레마가 있었다. 물리적으로 입자를 짓누르기 위해 수백 기압의 높은 압력을 가하는 공정도 필수적이었다.
새로 개발된 PPMA는 이러한 모순을 기술적으로 풀어냈다. 이 소재는 입자들을 단단하게 묶어주는 강력한 접착력을 제공함과 동시에 소재 자체가 전기가 통하는 길 역할을 한다. 실리콘 입자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해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더라도 유연한 전도성 연결 통로를 유지해 성능 저하를 막는 원리다. 연구팀은 실리콘 음극의 성능 저하가 리튬이온의 이동 문제가 아닌, 전극 내부의 전자 이동 단절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규명하고 이에 맞춘 소재 설계를 적용했다.

상용화 가능성도 한층 높아졌다. 이번 연구는 동전 크기의 실험실용 코인 셀이 아니라 실제 전기차에 탑재되는 형태인 파우치형 배터리로 검증을 마쳤다. 고에너지 밀도를 갖춘 상태에서 수백 회의 충·방전 테스트를 거친 결과, 배터리 용량 감소 없이 초기 성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제조 공정 측면에서도 효율성이 입증됐다. 특수 화학 용매 대신 물을 사용하는 수계 공정이 가능해져 환경 부담과 제조 비용을 동시에 낮출 수 있다. 전극 제조에 필요한 압력도 기존 대비 80% 이상 낮췄다.
SK온은 이번 기술을 발판으로 전고체 배터리 양산 로드맵을 차질 없이 이행한다는 방침이다. 박기수 SK온 미래기술원장은 이번 성과가 산학 협력을 통해 만들어낸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하며 차세대 배터리 기술 혁신 속도를 높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SK온은 2029년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대전 미래기술원에 약 4628㎡(약 1400평) 규모의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플랜트를 구축하고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대학 및 연구기관과의 협력을 확대하며 소재부터 공정 기술까지 전 영역에 걸친 기술 내재화에 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