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 한덕수에게 '징역 23년' 선고하며 울컥... 목메어 말 못 잇기도 [전문]

2026-01-22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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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의 내란, 친위쿠데타”

이진관 부장판사 / 뉴스1
이진관 부장판사 / 뉴스1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가 21일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구형량인 15년보다 8년 많은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정부 국무위원에게 내려진 법원의 첫 유죄 판단이다.

이진관 부장판사는 "12·3 내란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인 윤 전 대통령과 추종 세력에 의한 것이며, 성격상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한다"라며 "이런 형태의 내란은 이른바 친위 쿠데타라고도 불린다"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3년형을 선고하려는 순간 이 부장판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부장판사는 12·3 불법 계엄을 "위로부터의 내란"이자 "윤 전 대통령과 그 추종 세력에 의한 친위 쿠데타"라고 규정하며 선고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이 부장판사는 "12·3 내란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내란 행위 자체는 몇 시간 만에 종료됐다"라는 피고인 측 주장을 언급한 뒤 잠시 말을 멈췄다. 이어 "그러나 이는 무엇보다도 무장한 계엄군에 맨몸으로 맞서 국회를 지킨 국민의 용기에 의해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 언급 직후 그는 울컥해 목이 메인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안경을 고쳐 쓰며 감정을 추스른 뒤에야 판결을 이어갔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방조,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사건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뉴스1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방조,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사건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뉴스1

<전문>

판결 이유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피고인은 내란 우두머리 방조, 허위 공문서 작성, 허위 작성 공문서 행사,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공용서류 손상, 위증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그 후에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와 관련하여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가 추가되었습니다. 이러한 공소 사실에 대하여 피고인은 위증 혐의 중 일부에 한해서만 자백하고 있고, 나머지 혐의는 모두 부인하고 있습니다.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그 세부적인 내용이 복잡하므로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로 인정합니다. 참고적으로 내란 중요임무종사가 아니라 내란 우두머리 방조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면, 처음 기소된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는 범죄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내란죄는 필요적 공범으로서 관여자의 의사 방향이 일치하는 집합범이므로, 내부자들 사이에서는 각자 수행한 역할에 따라 우두머리, 지휘자, 중요임무종사자 등으로 처벌될 뿐 방조범에 관한 형법 총칙 규정이 적용될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내부자에 해당하는 피고인에게는 형법 총칙에 규정되어 있는 형법 32호에 따른 방조범이 성립 여지가 없으므로, 내란 우두머리 방조 공소 사실은 범죄로 되지 않을 때에 해당하게 됩니다.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가 택일적·추가적으로 병합되는 형태로 공소장이 변경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변호인은 '특별검사가 당초 공소 제기한 내란 우두머리 방조 공소 사실과 택일적으로 추가할 것을 신청한 내란 중요임무종사 공소 사실은 기본적 사실 관계가 동일하지 않고, 공소장 변경을 허가할 경우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있으므로 공소장 변경을 허가한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검사가 당초 공소 제기한 내란 우두머리 방조 공소 사실과 이 법원이 공소 사실의 택일적 추가를 허가한 내란 중요임무종사 공소 사실은 범행의 주체, 시기와 장소, 구체적 행위 태양 등이 모두 동일합니다.

두 공소 사실은 그 법률적 평가를 피고인이 윤석열의 내란 우두머리 범행을 용이하게 하여 방조한 것과 윤석열이 국헌을 물러나게 할 목적으로 일으킨 폭동에 있어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것으로 달리하지만, 이러한 사정만으로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또한 공소사실을 택일적으로 추가하는 경우 방어의 대상이 확대되는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으므로, 두 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이상 피고인과 변호인이 주장하는 사정만으로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능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피고인과 변호인은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먼저 12·3 비상 계엄 선포와 이에 근거하여 포고령을 발령하고 군 병력과 경찰 공무원을 동원하여 국회, 중앙선관위 등을 점거·출입통제하거나 압수수색한 행위가 내란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국회 다수당이 쟁점 법안들에 대한 단독 처리를 강행하고 형법상 간첩죄 개정에 반대하며 정권 퇴진 탄핵 집회를 지속하고 국무위원 등 다수의 고위공직자들을 탄핵하며 정부가 추진한 주요 사업의 예산을 삭감하고 중앙선관위 부정선거 관여 의혹과 여론조사기관의 여론조작 등으로 국정운영이 어려워졌다'는 이유를 내세워 비상계엄을 선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에 따라 윤석열과 김용현은 비상계엄 선포 후 군과 경찰을 동원하여 국회를 봉쇄하고 장악하여 비상계엄 해제 요구한 의결을 저지하는 등 국회를 무력화시킨 다음 국가비상입법기구를 창설하고 중앙선관위를 장악한 후 부정선거와 여론조작 관련 증거 확보를 내세워 전산자료를 영장 없이 압수수색하며, 더불어민주당 중앙당과 선거여론조사기관인 '여론조사꽃' 사무소를 장악하는 한편, 포고령에 근거하여 국회의원, 정치인 등 주요 인사와 중앙선관위 관계자들을 영장 없이 체포·구금하고, MBC · JTBC · 한겨레신문 · 경향신문 · 김어준 운영 인터넷 신문 등 당시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특정 언론사에 대한 봉쇄, 단전·단수 조치를 하려고 계획하였습니다.

윤석열과 김용현은 위와 같은 모의에 따라 국회 등 주요 기관 봉쇄,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국가 비상 입법 기구 관련 예산 편성 등 소관 부처 장관들에게 지시할 사항을 미리 준비한 후, 국무회의 심의 없이 2024년 12월 3일 22시경을 기하여 전국에 비상 계엄을 선포하기로 결의하고, 비상 계엄 선포에 따른 조치 사항이 있거나 비상 계엄 선포와 함께 그에 따른 직무 수행이 필요한 피고인(한덕수 전 국무총리), 법무부 장관 박성재,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통일부 장관 김용호, 외교부 장관 조태열 및 국정원장 조태용만을 사전에 대통령실로 불러 비상계엄 선포 계획과 조치 사항을 알리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윤석열과 김용현은 2024년 12월 3일 10시 30분경부터 20시 6분경까지 사이에 이들에게 연락하여 대통령실로 오도록 한 다음 "이들에게 국회가 탄핵을 계속하고 예산을 삭감하여 국정 운영이 어렵다, 종북 좌파들을 이 상태로 놔두면 나라가 거덜 난다, 경제든 외교든 아무것도 안 된다"는 취지로 말하며 피고인에게 대국민 담화문, 계엄사령부 포고령, 비상 계엄 관련 지시 사항이 담긴 문건을 이상민에게 국회 등 주요 기관에 대한 시간대별 봉쇄 계획과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지시가 담긴 비상계엄 관련 문건을, 조태열에게 재외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켜라는 취지로 기재된 비상계엄 관련 문건을 각각 건네주는 등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조치 사항을 지시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윤석열은 피고인으로부터 비상계엄 선포를 위해서는 국무회의 심의라는 요건을 갖춰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 국무회의 심의라는 외관 형성을 위하여 필요한 의사 정족수 확보를 목적으로 대통령 비서실 제1부속실장 강의구와 수행 비서 선임행정관 김종환으로 하여금 국무위원 중 일부에게만 연락하게 하였습니다. 윤석열은 국무회의 의사 정족수인 11명이 모인 직후인 2024년 12월 3일 22시 16분경부터 22시 18분경까지 사이에 대통령 집무실과 연결된 대접견실에서 김용현을 통해 비상계엄 선포문을 그곳에 모인 피고인과 국무위원들에게 배부하고, 실질적인 심의 없이 일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고 통보한 후, 같은 날 22시 23분경 대통령실 1층 브리핑룸으로 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22시 27분경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습니다.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박안수는 2024년 12월 3일 23시 23분경 윤석열, 김용현의 순차 지시에 따라 "<1>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2>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 뉴스, 여론 조작, 허위 선동을 금한다. <3>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령부의 통제를 받는다 <4>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 행위를 금한다. <5>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에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6> 반국가 세력 등 체제 전복 세력을 제외한 선량한 일반 국민들은 일상생활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하여는 계엄법 9조에 의하여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고, 계엄법 14조에 의하여 처단한다"는 내용의 포고령을 발령하였습니다.

윤석열은 2024년 12월 3일 22시 27분경부터 그 다음 날 4시 26분경까지 김용현, 박안수, 여인형, 곽종근, 이우, 문상호, 경찰청장 치안총감 조지호, 서울특별시 경찰청장 치안정감 김봉식 등을 통해 성명 불상의 군인과 경찰 공무원에게 순차 지시하여 국군 방첩사령부, 육군 특수전사령부, 수도방위사령부, 정보사령부 등에 소속한 무장 군인 1,605명과 경찰청, 서울특별시 경찰청, 경기남부경찰청 등에 소속된 경찰 공무원 약 3,790명 등을 동원하여 국회, 중앙선관위 등을 점거, 출입 통제하거나 압수수색하였습니다.

다음으로 관련 법률 규정을 살펴봅니다. 형법 87조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 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고 규정하면서, 그 각 호에서 '우두머리는 사형, 무기 징역 또는 무기 금고에 처한다.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그 밖의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사람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살상, 파괴 또는 약탈 행위를 실행한 사람도 같다. 부하 수행하거나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법 91조는 2장에서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이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함을 말한다고 규정하면서 1호에서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 2호에서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형법 87조에서 규정하는 폭동이란 다수인이 결합하여 폭행 또는 협박하는 것을 말하고 여기서 폭행 또는 협박은 일체의 유인력 행사나 외포심을 생기게 하는 해악의 고지를 의미하는 최광의의 폭행 협박을 말하는 것으로써, 이를 준비하거나 보조하는 행위를 천천히 파악한 개념이며 그 정도가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위력이 있음을 요한다고 합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윤석열과 김용현 등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이에 근거하여 포고령을 발령하였는데, 그 포고령은 헌법과 법률의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헌법에 의하여 보장되는 의회·정당 제도, 영장주의를 소멸시키고 헌법에 의하여 금지되는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 검열을 시행함으로써 헌법과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려는 목적, 즉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발령한 것이고, 또한 다수의 군 병력과 경찰 공무원을 동원하여 국회, 중앙선관위 등을 점거, 출입 통제하는 등 다수인을 결합하여 유력을 행사하고 해악을 고지함으로써 한 지역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위력이 있는 폭동을 일으켰다고 인정됩니다.

따라서 12·3 비상계엄 선포와 이에 근거하여 위헌 위법한 포고령을 발령하고 군 병력 및 경찰 공무원을 동원하여 국회, 중앙선관위 등을 점거, 출입 통제하는 등의 행위는 형법 87조에서 정한 내란 행위에 해당합니다. 이하에서는 12·3 내란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다음으로 내란 중요임무종사 행위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윤석열이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일으킨 폭동의 수단으로 선택한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에 있어 피고인이 국무회의 심의라는 외관을 형성하거나 국무위원들로부터 부서를 받아 절차적 요건을 갖추는 등으로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경우에는 형법 87조 2호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처벌된다고 할 것입니다.

피고인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위를 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공소장에 많은 행위들이 기재되어 있으므로 먼저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요임무종사로 인정되는 행위는 국무회의 심의라는 외관 형성 관련 행위,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피고인에게 인정되는 작위 의무 위반 관련 부작위, 국무위원 부서 외관 형성 관련 행위, 주요 기관 봉쇄 계획 및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관련 지시 이행 방안 논의입니다. 공소사실 중에 중요임무종사로 인정되지 않는 행위는 윤석열로부터 행사에 대신 참석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부분 관련 행위, 비상계엄 선포 후 절차적 요건 구비 시도 관련 행위, 계엄 해제 국무회의 심의 지연 관련 행위입니다.

그러면 중요임무종사에 해당하는 행위를 순서대로 보겠습니다. 먼저 국무회의 심의라는 외관 형성 관련 행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피고인은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에 관하여 국무회의 심의라는 절차적 요건을 외형적으로나마 갖추도록 함으로써 윤석열 등이 내란 행위를 함에 있어 중요한 임무에 종사했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헌법과 법률 규정에 따르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고, 그 국무회의 심의는 구성원 과반수의 출석으로 이루어집니다. 당시 국무회의 구성원은 총 21명이었으므로 과반수에 해당하는 11명의 의사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서는, 당시 대통령실에 있었던 7명에 더하여 4명이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피고인은 윤석열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비상계엄 선포의 필요성과 정당성에 대하여 강변하고, 피고인 등의 우려 표명에도 불구하고 미리 준비한 대국민 담화문과 포고령, 비상계엄 관련 지시 사항 문건 등을 건네주자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비상계엄 선포를 위해서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피고인은 윤석열에게 국무회의 심의를 건의하였고, 윤석열이 국무회의 소집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자 일단 그 의사 정족수라도 갖출 것을 제안하여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로 계획한 22시 전에 대통령실로 올 수 있다고 예상한 최상목, 송미령, 조규홍, 오용주, 박상우, 안덕근을 추가로 부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윤석열은 이에 따라 이들 국무위원과 평소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대통령 비서실 소속 수석 비서관급 이상 직원들을 대통령실로 소집하였습니다. 피고인은 대접견실에서 박성재, 이상민과 논의하여 헌법과 관련 법령을 검토한 결과, 비상계엄 선포를 위해서는 국무회의 심의라는 요건을 갖춰야 하고 의결 사항이 아닌 심의 사항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하였습니다. 피고인은 윤석열이 추가로 소집한 국무위원들의 도착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계획하였던 22시에 비상계엄을 선포할 태세를 보이자, 재차 국무회의 심의라는 요건을 갖추어야 하니 의사 정족수가 채워질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취지로 윤석열을 설득하였습니다. 김용현과 이상민은 피고인에게 손가락으로 숫자 4 또는 1을 표시하며 국무회의 의사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남은 인원수를 공유하였습니다.

피고인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송미령에게 전화하여 22시 전에 대통령실에 도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였고, 송미령이 그 후에 도착한다는 취지로 답하자 빨리 올 것을 수차례 재촉하는 등 국무위원들의 도착 상황을 점검하였습니다.

윤석열은 피고인 등의 헌법 등 법리 검토 결과에 따라 이미 계획한 22시를 넘겨 오영주가 마지막으로 도착함으로써 국무회의 의사 정족수가 갖추어진 22시 14분경 이후까지 비상계엄 선포를 연기하였고, 의사 정족수가 갖추어진 직후 김용현을 통해 국무위원들에게 비상계엄 선포문을 배부한 뒤에 이 사건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습니다.

피고인과 변호인은 국무위원들의 뜻을 모아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를 만류하기 위하여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하였고 비상계엄에 반대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실에 있는 국무회의장에는 원격 영상회의 방식으로 회의를 진행할 수 있는 장치가 갖추어져 있었으므로, 피고인이 국무위원들의 뜻을 모아 비상계엄 선포를 만류하고자 했다면 세종시 등지에 있는 국무위원들까지 모두 참석할 수 있도록 국무회의장에서 원격 영상회의 방식으로 개의할 것을 제안한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피고인이 원격 영상회의 방식의 국무회의를 제안하였다고 볼 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습니다. 오히려 피고인은 윤석열이 국무회의 의사 정족수를 갖출 수 있는 일부 국무위원만을 선별하여 소집하는데 관여하였고, 윤석열이 그 중 한 명인 기획재정부 장관 최상목에게 소집 전화를 하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피고인 스스로도 그 중 한 명인 송미령에게 전화하였습니다. 특히 피고인은 송미령을 재촉하면서도 대통령실로 소집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는 바, 송미령이 비상계엄 선포 관련 국무회의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송미령이 대통령실로 오지 않아 의사 정족수가 갖추어지지 않음으로써 윤석열이 이 사건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하였다고 보입니다.

피고인은 윤석열에게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였을 뿐, 명확히 비상계엄 선포에 반대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추가로 소집한 국무위원들이 대통령실에 도착했음에도 그들에게 비상계엄 선포에 관한 의견을 말해보라거나 자신은 비상계엄 선포에 반대한다거나 윤석열에게 반대 의사를 표시하라는 취지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피고인은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위해 이석한 이후에야 최상목에게 자신도 반대했다는 취지로 강변하였을 뿐, 조태열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윤석열에게 비상계엄 선포에 관하여 반대의사를 표시할 때나 최상목, 조태열이 대접견실에서 일어나 윤석열에게 반대의사를 표시할 때에도 별다른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고 최상목이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와서 설득해보겠다고 말할 때에도 자신의 휴대전화를 사용할 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피고인은 국무회의 의사 정족수가 채워져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러 나갈 때에도 윤석열을 만류하지 않았고 오히려 윤석열에게 국무회의 심의를 마쳤다는 취지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피고인 김용현이 비상계엄 관련 문건이 들어있는 서류봉투를 찾으러 대접견실로 돌아왔을 때에도 김용현을 만류하지 않았고 오히려 김용현에게 그 서류 봉투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런데 피고인과 국무조정실장 방기선의 진술에 따르면, 피고인은 평소 윤석열이 비상계엄 선포 사유로 든 국회의 탄핵소추와 예산 삭감, 쟁점 법안 단독 처리 등이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는 데 공감해 왔다는 것인 바 이러한 사정까지 고려하면, 당시 피고인이 별다른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던 것은 윤석열이 주장하는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의 필요성과 정당성에 동의하여 그 실행을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인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의사가 확고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필요성과 정당성에 동의하여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에 필요한 국무회의 심의라는 절차적 요건을 형식적으로나마 갖추도록 함으로써 윤석열 등의 내란 행위에 있어서 중요한 임무에 종사했다고 봄이 타당합니다.

다음으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피고인에게 인정되는 작위 의무 위반 관련 부작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피고인은 국무회의 부의장으로서 국무회의 구성원들이 전 정부적 차원에서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자유로운 발언과 토론을 통하여 의견을 교환하거나 조정할 수 있도록 국무회의를 운영하여야 하고, 그 전제로서 모든 국무회의 구성원에게 빠짐없이 소집을 통지하여야 하며, 비상계엄 선포에 의한 심의에 필요한 검토 의견 등을 분명히 밝혀 제출하도록 하여야 하고, 국무회의 간사인 행정안전부 의정관을 참석시켜 국무회의록을 작성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작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윤석열이 국헌을 물러나게 할 목적으로 일으킨 폭동의 수단으로서 비상계엄을 선포하려고 한다는 사정을 인식하면서, 그에 필요한 국무회의 의사정족수를 갖출 수 있을 만큼의 특정 국무위원을 대통령실로 소집하는 데 관여하였습니다. 이러한 경우 피고인은 소집한 국무위원들에게 소집 사유와 국무회의 의안들을 미리 알려주어, 그들이 의사정족수에 포함되지 않는 차관을 대리 출석시키는 등으로 국무회의 심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를 저지하였어야 할 작위 의무를 부담한다고 봄이 타당합니다. 피고인은 이러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채 오히려 송미령에게 전화하여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고 예고한 22시 이전에 전에 대통령실에 도착하도록 수차례 재촉하는 등, 이들이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의사정족수를 갖추는 데 이용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피고인은 그와 같이 소집한 국무위원들이 도착하자, 윤석열이 일방적으로 비상계엄 선포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설명하고 퇴장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실질적인 국무회의 심의 없이 이 사건 비상계엄을 선포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피고인은 국무총리로서 자신의 지휘감독을 받는 이상민이 윤석열로부터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지시를 받아 이를 이행함으로써 윤석열 등이 내란 행위에 가담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경우, 이를 중지 또는 취소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자기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이러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채 오히려 이상민과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지시에 관하여 긴밀히 협의함으로써 이상민으로 하여금 그러한 지시를 수용하고 이를 이행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피고인이 국무총리로서 부여받은 권한을 행사하지 않은 것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피고인이 이러한 작위 의무를 이행하였더라면 윤석열의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등 내란행위라는 결과를 쉽게 방지할 수 있었다고 인정됩니다.

이러한 피고인의 부작위로 인한 법익 침해는 작위에 의한 법익 침해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써 이 또한 형법 제87조 2호에서 규정하는 내란 중요임무종사 범죄 실행 행위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국무위원 부서 외관 형성 관련 행위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피고인은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에 관하여 국무위원들로부터 부서를 받아 절차적 요건을 갖추도록 시도함으로써 윤석열 등의 내란 행위에 있어 중요한 임무에 종사했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82조는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서 하며, 그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다. 군사에 관한 것도 또한 같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헌법 규정에 따르면 비상계엄 선포는 문서의 형식으로 하여야 하고, 그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의 부서가 있어야 합니다. 이는 대통령의 권한 행사를 명확하게 하고 책임 소재를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헌법상 요구되는 기관 내부적 권력 통제 절차입니다.

피고인의 수사기관 진술과 국무총리 집무실에서 이루어진 논의 내용을 고려하면, 피고인은 과거 비상계엄 선포에 모든 국무위원이 부서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에 관여 국무위원의 부서가 필요하다는 사정 역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박성재와 이상민이 참석자 서명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논의한 뒤, 강의구에게 국무위원 서명을 받도록 준비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피고인이 지켜보았고, 강의구가 대접견실을 나가는 국무위원들에게 서명 작업을 준비하고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말하는 것도 지켜보았습니다. 피고인은 최상목, 조태열이 서명을 하지 못하겠다는 취지로 말하자, 여기 모여서 회의에 참석했다는 의미로 서명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국무위원들에게 서명할 것을 직접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통상적인 국무회의의 경우에는 참석한 국무위원을 전자적 방식으로 확인하여 국무회의록에 기재하고, 국무위원이 수기로 서명하는 절차는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결국 박성재와 이상민의 논의에 따라 피고인이 국무위원들에게 지시한 서명은 국무회의 참석 여부를 확인하는 의미의 서명이 아니라,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인 비상계엄 선포에 관하여 절차상 요구되는 국무회의 부서를 의미합니다.

피고인은 최상목, 조태열 등 일부 국무위원의 반대로 결국 비상계엄 선포에 관한 국무회의 부서가 이루어지지 않자, 비상계엄 해제 국무회의를 마친 직후 국무위원들에게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비상계엄을 해제했지만, 앞서 있었던 비상계엄 선포 국무회의 심의의 하자로 해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취지의 논리를 내세우며 국무위원들을 설득하여 다시금 부서를 받으려고 시도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앞서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에 관하여 국무회의 심의라는 절차적 요건을 외형적으로나마 갖춘 것과 같은 취지에서 국무위원들로부터 비상계엄 선포의 절차적 요건에 해당하는 부서를 받고자 시도함으로써 윤석열 등의 내란 행위에 있어 중요한 임무에 종사했다고 봄이 타당합니다.

다음으로 주요 기관 봉쇄 계획 및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관련 지시 이행 방안 논의와 관련해서 살펴봅니다. 피고인이 이상민과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관련 지시 이행 방안 등을 논의하고 이를 이행하도록 함으로써 윤석열 등의 내란 행위에 있어 중요한 임무에 종사했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와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검열은 그 명칭이나 형식과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행정권이 주체가 되어 사상이나 의견 등이 발표되기 이전에 예방적 조치로서 그 내용을 심사, 선별하여 발표를 사전에 억제하는, 즉 허가받지 않은 것의 발표를 금지하는 제도를 뜻하고, 이러한 사전 검열은 법률로서도 불가능한 것으로서 절대적으로 금지됩니다. 언론 출판에 대하여 사전 검열이 허용될 경우에는 국민의 활동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침해하여 정신 생활에 미치는 위험이 클 뿐만 아니라, 행정 기관이 집권자에게 불리한 내용의 표현을 사전에 억제함으로써 이른바 관제 의견이나 지배자에게 무해한 여론만이 허용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헌법이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민이 윤석열의 지시에 따라 소방청장 허석곤에게 전달한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는 경찰이 2024년 12월 3일 24시경 특정 언론사를 진입 봉쇄하면 소방이 단전·단수 조치를 하라는 취지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특정 언론사를 물리적으로 봉쇄하여 단전·단수 조치를 하면 그 업무 수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는 결국 행정권이 주체가 되어 사전에 특정 언론사의 발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으로써, 헌법에 의하여 절대적으로 금지되는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 검열에 해당합니다. 피고인은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후 이상민과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지시의 이행 내용과 근거, 그 이행 방안 등에 관해 논의하였고, 피고인은 이상민이 그 지시에 따르지 않도록 제지하거나 만류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대통령실 CCTV 영상에 따르면 피고인은 그 지시의 이행을 독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 따라 이상민은 포고령 발령 후 조지호, 허석곤에게 전화하여 거짓 지시를 이행하였고, 그 다음 날 거짓 지시 이행 여부를 확인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정에다가 피고인이 국무총리로서 갖는 지위와 권한을 더하여 보면, 피고인이 국무총리로서 자신의 지휘 감독을 받는 이상민과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지시에 관해 논의하고 이를 이행하도록 함으로써 윤석열 등의 내란 행위에 있어 중요한 임무 종사였다고 봄이 타당합니다.

공소사실에는 기재되었으나 내란 중요임무종사로 인정되지 않는 부분을 보겠습니다. 먼저 윤석열로부터 행사에 대신 참석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부분 관련입니다. 윤석열이 이 사건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대접견실로 돌아와 피고인에게 "내가 당분간 가야 하는 임박한 행사를 대신 가줘야겠다"는 취지를 말하였고, 이에 피고인이 "알겠다"는 취지로 수락한 사실은 인정이 됩니다. 그러나 피고인이 대통령이 전반적인 국정 운영을 대신하기로 하였다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윤석열이 참석하기로 예정된 행사에 대신 참석할 것을 수락했다는 사정만으로 윤석열 등의 내란 행위에 있어 중요 임무에 종사했다고 평가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습니다.

다음으로 비상계엄 선포 후 절차적 요건 구비 시도 관련입니다. 피고인이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경호와 통화하면서 "추 대표 걱정하지 마라"는 취지로 말한 사실, 피고인이 국무총리 집무실에 도착하여 국무총리 비서실장 손윤택, 국무조정실장 방기선 등과 국회 상황을 확인한 사실, 피고인이 방기선에게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가 국회에 통보되었는지 여부를 알아보도록 지시한 사실은 인정됩니다. 그러나 피고인이 추경호와 통화하면서 그러한 말을 했다는 사정만으로 추경호를 통해 국회 상황을 확인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설령 피고인이 추경호를 통해 국회 상황을 확인하거나 방기선 등 국무조정실 소속 직원을 통해 비상계엄 선포의 국회 통보 여부를 점검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고인 윤석열 등의 내란 행위에 있어 중요한 임무에 종사했다고 평가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습니다.

다음으로 계엄 해제 국무회의 심의 지연 관련입니다. 특별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계엄 해제 국무회의 심의를 지연하여 중요한 임무에 종사하였다거나 피고인에게 그러한 고의가 있었다고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헌법과 법령 규정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한 경우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해야 하고, 대통령이 그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주재하며 대통령이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 국무총리가 그 직무를 대행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은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의결된 직후인 2024년 12월 4일 1시 8분경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로 향하였다가 1시 51분경 대통령 집무실로 돌아왔을 뿐, 당시 윤석열이 사고로 인하여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자료가 없습니다. 따라서 피고인이 윤석열의 직무를 대행하여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주재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설령 피고인이 윤석열의 직무를 대행하여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주재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비상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 심의를 지연하였다거나 피고인에게 그러한 고의가 있었다고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국회법 98조 1항은 국회에서 의결된 의안은 의장이 정부에 이송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의결된 경우 국회의장이 정부에 이를 이송하여야 합니다.

피고인은 국회의장 우원식이 2024년 12월 4일 2시 1분경 대통령실과 국방부에 비상계엄 해제 요구 통지를 송부했다는 취지로 발표한 직후, 대통령 비서실장 정진석으로부터 국무위원들을 소집해달라는 취지의 전화를 받았고, 그로부터 몇 분 지나지 않아 방기선을 통해 국무위원들을 대통령실로 소집하였습니다. 피고인은 같은 날 2시 28분경 대통령실에 도착해 윤석열에게 비상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 개의를 건의하였고, 윤석열의 승낙을 받아 국무회의를 주재할 권한을 위임받았습니다. 피고인이 소집한 국무위원들은 2시 35분경부터 순차로 대통령실에 도착하였고, 4시경까지도 국무회의 의사 정족수가 부족하여 국무위원들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피고인은 비상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 의사 정족수가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방기선을 통해 비상계엄 해제 의안을 만들고 의안 번호를 확인하는 등 국무회의를 개의하기 위한 절차를 밟았고, 의사 정족수가 채워지자 지체 없이 국무회의를 주재하여 비상계엄 해제 의안을 심의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한 것이 의결된 후 약 1시간가량 국회의장의 의안 이송을 기다려 방기선으로부터 국무위원들에게 국무회의 소집을 통보하게 한 것을 두고 비상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 심의를 지연시켰다고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공소 사실에는 기재되어 있으나 내란 중요임무종사로 인정되지 않는 부분은, 이와 일체 관계있는 범죄 사실을 앞서 본 바와 같이 내란 중요임무종사죄 유죄로 인정하므로 따로 주문에서 무죄로 선고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피고인에게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과 내란 중요임무종사의 고의가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피고인에게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과 윤석열이 그러한 목적으로 포고령을 발령하고 군 병력과 경찰 공무원 등 다수인을 집합하여 폭동을 일으킨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과 의욕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피고인은 2024년 9월 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얼마 전부터 야당 대표를 필두로 많은 야당 인사들이 계엄 해제를 막기 위해 계엄 선포와 동시에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하는 계획을 꾸몄다느니, 국방부 장관 후보자와 국군 방첩사령관에 같은 고등학교 선후배를 기용한 것이 탄핵 대비와 계엄 준비용이 아니냐하며 계엄 선동 전치를 펼치고 있다. 피고인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지에 서일준 의원의 질의에 대하여, "헌법 규정에 따르면 계엄을 선포하더라도 국회가 과반수로 의결하면 즉각 해제하게 돼 있지 않느냐. 그러면 결국 그 논리는 계엄을 통해서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킨다는 이야기냐"는 취지로 답한 바 있습니다.

피고인은 이 법정에서 이에 대하여, "국회의원들이 2024년 9월경 계엄 준비설이 언급되던 시기에 '비상 계엄을 할 것이다'고 계속 질의했기 때문에 얼마나 가능성이 없는 일인지 강조하는 취지에서 비상 계엄을 선포하더라도 국회에서 해제 요구를 하면 해제할 수밖에 없다고 답하였던 것 같다"라는 취지로 진술하였습니다. 피고인이 국회에서 한 답변과 이 법정에서의 진술에 따르면, 피고인은 이 사건 비상 계엄 선포 이전부터 정치권에서 윤석열이 비상 계엄 선포 후 국회의원을 체포, 구금하여 국회의 비상 계엄 해제 요구를 저지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었고, 이에 비추어 윤석열이 비상 계엄을 선포하는 경우 군 병력을 동원함으로써 결국 국회의 권능 행사를 정지시키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2024년 12월 3일 20시 45분경 대통령 집무실에서 윤석열로부터 국회의 탄핵 소추와 예산 삭감으로 국정 운영이 어려워 비상 계엄을 선포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고, 같은 날 21시 52분경 대접견실에서 김용현이 조태열에게 군대가 대기하고 있다는 취지로 답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이러한 윤석열과 김용현의 발언에 따르면, 피고인은 윤석열이 이 사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김용현을 통해 군 병력을 동원함으로써 강압에 의하여 국회의 권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등 다수인을 집합하여 폭동을 일으킬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같은 날 대통령 집무실에서 윤석열로부터 대국민 담화문과 포고령을 교부받았고,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후 이상민과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지시에 관하여 논의하였습니다. 이러한 대국민 담화문, 포고령, 이상민이 받은 지시 내용에 따르면, 피고인은 윤석열이 '반국가 세력인 국회를 척결하겠다는 이유에서 이 사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군병력을 동원하고 포고령을 발령하여 국회와 정당의 활동을 금지하고, 특정 언론사의 활동을 불가능하게 하며, 이를 위반한 사람을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하여 형사처벌함으로써 헌법과 법률에 의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헌법에 따라 보장되는 의회 정당 제도와 영장주의를 소멸시키고 헌법에 의하여 금지되는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 검열을 시행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유로 피고인에게 국헌을 물러나게 할 목적과 내란 중요임무종사의 고의가 있다고 인정됩니다.

다른 혐의들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는 유죄로 인정합니다. 관련 공소사실은 피고인은 강의구, 김용현, 윤석열과 순차 공모하여 마치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인 비상계엄 선포가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비상계엄 선포 전에 부서한 문서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게 하여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관련 사법 절차 등에 행사할 목적으로 그 직무에 관하여 윤석열이 서명하고 피고인과 김용현이 부서한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를 허위로 작성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피고인과 변호인은 피고인은 강의구로부터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에 서명을 요청받으면서 별다른 설명을 듣지 못하였고, 그에 부착된 비상계엄 선포문이 자신이 소지한 문서와 동일하다는 취지에서 서명하였으며, 문서의 기재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부합함으로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가 허위 공문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고, 피고인에게는 허위 공문서라는 인식과 이를 행사할 목적이 없었으며 피고인은 윤석열, 김용현, 강의구와 공모한 사실이 없다고 다투고 있습니다.

살피건대 여기서 허위란 표시된 내용과 진실이 부합하지 않아 그 문서에 대한 공공의 신용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허위 공문서 작성죄는 허위 공문서를 작성함에 있어 그 내용이 허위란 사실을 인식하면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는 2024년 12월 3일자로 성립한 문서로서, 대통령이 헌법 규정에 따라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 문서로서 이 사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사실 관계 및 그로써 헌법상 요구되는 기관 내부적 권력 통제 절차가 작동하였음을 증명하는 기능을 갖습니다. 그러나 사실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는 2024년 12월 3일 이후에 피고인 김용현, 윤석열이 순차 서명함으로써 문서로서 성립하였고, 윤석열은 피고인과 김용현의 부서한 문서로 이 사건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국 표시된 내용과 진실이 부합하지 않아 문서에 대한 공공의 신용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허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피고인의 진술에 따르더라도 피고인은 강의구로부터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를 받아 자신의 서명란 외에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서명란이 있는 것을 보았고, 작성일이 2024년 12월 3일로 소급되어 기재해 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강의구는 피고인에게 부서라는 요건을 갖춰야 한다, 윤석열의 서명을 받아야 하고, 피고인과 김용현의 서명도 필요하다는 취지로 설명하며 서명을 요구하였고, 피고인은 작성일을 소급한 문서를 작성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피고인은 강의구에게 '나중에 작성된 게 알려지면 괜한 논란이 될 수 있겠다, 문서가 없더라도 국무회의 실체는 있지 않느냐'고 말하며 폐기를 요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인은 강의구가 헌법에 따른 문서주의와 국무총리 및 관계 국무위원의 부서란 절차 요건을 갖추어 이 사건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음을 증명하려는 허위의 문서를 작성하기 위해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에 서명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이 국무총리 서명란에 서명한 후 윤석열과 김용현이 각각 그들의 직위에 해당하는 서명란에 서명하리라는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피고인은 강의구 등이 추구하는 목적으로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를 사용함으로써 작성일을 소급한 문서를 허위로 작성한 것이 알려지면 논란이 되리라는 것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피고인은 윤석열, 김용현, 강의구와 순차적 암묵적으로 공모하여 각각 자신의 직위에 해당하는 서명란에 서명함으로써 공동하여 허위공문서를 작성하였고, 피고인에게 허위공문서라는 인식과 이를 행사할 목적이 있었다고 봄이 타당합니다.

허위작성 공문서 행사 혐의는 무죄입니다. 관련 공소사실은 피고인은 윤석열, 강의구, 김용현과 공모하여 허위로 작성한 공문서인 윤석열이 서명하고 피고인과 김용현이 부서한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를 그 무렵 대통령 비서실 부속실에 보관하는 방법으로 행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서의 행사란 위조된 문서를 진정한 문서인 것처럼 그 문서의 효용 방법에 따라 이를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강의구는 피고인, 김용현, 윤석열로부터 차례로 서명을 받은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를 관련 절차에 따라 문서관리대장에 철하는 등으로 비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무실 서랍에 보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별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강의구가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를 그 효용 방법에 따라 사용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습니다.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합니다.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 위반 공용서류 손상 혐의는 유죄로 인정이 됩니다. 관련 공소사실은 피고인은 2024년 12월 8일 강의구에게 전화하여 '사후의 문서를 만들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또 다른 논쟁을 낳을 수 있으니 내가 서명한 것을 없던 것으로 하자'는 취지로 말하면서 허위로 작성된 윤석열이 서명하고 피고인과 김용현이 부서한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를 폐기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윤석열은 2024년 12월 10일 서울 용산구 소재 대통령 관저에서 강의구로부터 위와 같은 피고인의 말을 보고받고 강의구에게 총리의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라는 취지로 말하여 그 문서를 폐기할 것을 승인하였으며, 이에 강의구는 그 무렵 위와 같은 피고인의 요청과 윤석열의 승인을 받아 대통령 비서실 부속실에 보관하고 있던 그 문서를 세단기로 넣어 파쇄하는 방법으로 폐기함으로써, 피고인은 강의구, 윤석열과 순차 공모하여 무단으로 대통령 기록물인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를 손상함과 동시에 공무소인 대통령실에서 사용하는 서류인 같은 문서를 손상하였다는 겁니다.

이에 대하여 피고인과 변호인은, 피고인은 자신이 서명한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에 추후 윤석열이 서명할 것임을 알지 못하였고 이를 예상할 수도 없었으며, 피고인은 그 문서가 추후 김용현과 윤석열의 서명을 거쳐 완성된다는 것도 알지 못하였고, 피고인은 강의구에게 자신이 서명한 부분 폐기를 요청하였을 뿐 문서 전체를 파쇄를 요구하지 않았으므로, 피고인에게 그 문서가 대통령 기록물 또는 공용 서류이거나 이를 폐기 또는 손상한다는 고의가 없었다고 다투고 있습니다.

먼저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는 대통령 기록물 및 공용 서류에 해당한다고 인정됩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려는 경우 문서로서 하여야 하고, 그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인 국방부 장관이 부서하여야 합니다.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는 대통령이 직무 수행인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한 기록물에 해당하고,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하고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에 대한 문서주의 원칙을 실현하는 기능을 합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에 피고인과 김용현이 부서하고 윤석열이 서명하는 것은 결재권자의 결재에 해당하므로, 이로써 공문서로 성립하고 그에 따라 대통령 기록물로 생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가 공문서로 성립되어 대통령 기록물로 생산되었고, 대통령실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보관되어 있었던 이상 정식 절차를 밟아 접수, 편철되었는지 등과 관계없이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서류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합니다.

다음으로 피고인에게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가 대통령 기록물 및 공문서 서류에 해당한다는 사실과 이를 손상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인정됩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이 국무총리 서명란에 서명한 후 윤석열과 김용현이 각각 그들 직위에 해당하는 서명란에 서명함으로써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가 대통령 기록물이자 공문서 서류로 성립하려는 사정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강의구 등이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를 사용하려는 것을 인식하면서 그로 인해 발생한 논란을 우려하여 그 문서 폐기를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이 서명한 부분을 특정하지 않은 채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의 폐기를 요구하였고, 달리 피고인이 강의구에게 대통령기록물법 등 관련 법령에 따른 절차를 거쳐 폐기할 것을 요구하였다고 볼 자료도 없습니다.

위증 혐의는 모두 유죄로 인정됩니다. 위증 공소 사실에 대하여 피고인과 변호인은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실에서 특별한 문건을 받은 사실이 없고, 김용현이 이상민에게 문건을 건네주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헌법재판소에서 기억하는 바에 따라 진술하였으므로 위증이 아니라고 다투고 있습니다.

먼저 피고인이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실에서 특별한 문건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은 기억에 반한 진술이라고 인정이 됩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피고인은 2024년 12월 3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대국민 담화문, 포고령과 비상계엄 관련 지시사항 문건을 교부받았고, 그중 비상계엄 관련 지시사항 문건은 상의 안주머니에, 나머지는 하의 뒷주머니에 놓고 대접견실을 떠났습니다. 피고인은 그 다음 날 대접견실로 돌아올 때에는 하의 뒷주머니에 문건을 소지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대통령실에서 나와 국무총리 집무실에 들렀을 때 그러한 문건을 꺼내 놓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피고인의 진술에 따르더라도 피고인은 국무총리 집무실에 문건을 꺼내 놓고 며칠 뒤에 조태열이 받은 재외공관 관련 지시사항 문건 등을 살펴보았음에도 특별한 내용이 아니어서 폐기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국무총리 비서실 공보실장 김수혜의 진술을 더하여 보면, 피고인은 하의 뒷주머니와 상의 안주머니에 넣어 가져간 문건을 단순히 국무총리 집무실에서 문서 세절기에 넣어서 폐기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 가지고 나와 별도의 방법으로 폐기하거나 또는 아직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피고인은 국무총리 집무실에 들러 자신이 받은 문건을 꺼내 놓고 며칠 뒤에 문건을 살펴보아 특별한 내용인지 여부를 판단한 다음 외부로 가지고 나와 그 폐기 또는 보관 여부를 결정하였습니다.

피고인은 그로부터 약 3개월이 지나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실에서 특별한 문건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증언하였습니다. 피고인과 변호인은 '피고인은 비상계엄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많은 자료들을 보며 다수의 사람들과 대화하였기에 당시 상황을 하나하나 모두 기억하기 어려웠고, 일부 기억은 혼재되었기도 하였다', '피고인이 형사재판소에서 증언하는 것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이루어진 것이어서, 피고인이 그 당시 상황을 모두 기억하며 진술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등으로 진술을 유보하지 않은 채 단정적으로 문건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하였습니다. 여기에 기록에 나타난 피고인의 학력, 경력, 사회적 지위 등 반 사정을 더하여 보면, 피고인이 불과 약 3개월 만에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문, 포고령, 비상계엄 관련 지시사항 문건, 비상계엄 선포문을 받은 기억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주장은 도저히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다음으로 피고인이 헌법재판소에서 김용현이 이상민에게 문건을 건네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도 기억에 반하는 진술이라고 인정됩니다. 피고인은 김용현이 2024년 12월 3일 22시 16분경 강의구를 통해 복사한 비상계엄 선포문을 피고인, 이상민, 송미령 등에게 나누어 주는 것과 이상민이 같은 날 22시 43분경 대접견실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비상계엄 선포문 등 문건을 한데 모아두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습니다. 피고인은 대접견실에서 이상민과 대화를 마친 후 그 문건 더미를 하의 뒷주머니에 집어넣어 가지고 나왔고, 별도의 방법으로 폐기하였거나 아직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피고인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등으로 진술을 유보하지 않았을 때 단정적으로 보지 못했다는 식으로 진술하였습니다. 여기에 기록에 나타난 피고인의 학력, 경력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불과 3개월 만에 김용현이 이상민에게 비상계엄 선포문을 나누어 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였다는 식의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유무죄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양형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법원 양형 기준과 관련하여 내란 중요임무종사죄와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위반죄에 대하여는 양형 기준이 설정되어 있지 않고, 양형 기준이 설정된 범죄와 그렇지 않은 범죄 사이의 경합범에 관하여는 그 하한만을 양형 기준이 설정된 범죄의 양형 기준상 형량 범위의 하한에 따르도록 돼 있습니다. 따라서 양형 기준은 이 사건 양형에 중요한 영향이 없습니다.

양형 사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피고인은 1970년 6월경 공무원으로 임용된 이래 약 50년 동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국무조정실장,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국무총리 등으로 재직하면서 다수의 훈장과 포장을 받았습니다. 피고인 윤석열 등의 내란 행위에 관하여 사전에 모의하거나 실행 행위를 지휘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고 볼 자료는 없습니다.

피고인은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의결되자 이 사건 비상계엄을 해제하기 위한 국무회의를 소집 주재하였고, 그에 따라 비상계엄이 약 6시간 만에 해제되었습니다. 피고인은 현재 만 79세의 고령임에도 벌금형을 포함하여 아무런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습니다. 피고인은 최근에 이르러 경도 인지 장애와 우울증을 진단받아 그에 대한 치료가 필요하고, 피고인의 배우자는 독립적인 거동이 어려워 피고인의 돌봄과 간호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관련 자료가 재판부에 제출된 바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이 있더라도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에게 엄한 처벌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입니다.

윤석열이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이에 근거하여 헌법에 따라 보장되는 의회·정당 제도 등을 부인하는 내용의 위헌·위법한 포고령을 발령하며 군 병력과 경찰 공무원을 동원하여 국회, 중앙선관위 등을 점거, 출입 통제하거나 압수수색한 행위는 앞서 본 바와 같이 형법 87조에서 정하는 내란 행위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12·3 내란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인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 추종 세력에 의한 것으로서 성격상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형태의 내란은 이른바 친위 쿠데타라고도 불립니다.

세계사적으로 살펴보면 이러한 친위 쿠데타는 많은 경우 성공하여 권력자는 독재자가 되었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같은 기본권은 본질적으로 침해되었으며, 국가의 경제와 외교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독재자의 권력이 약해지는 시기가 되면 내전과 같은 전쟁이나 정치 투쟁으로 국가와 사회 전반이 회복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지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12·3 내란은 이러한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되는 점에서 그 위험성의 정도가 '아래로부터의 내란'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을 경시하고 이를 위반하는 내란 행위를 함으로써 국민이 가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 자체를 뿌리째 흔들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 주위에는 민주적 기본 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있거나 이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고 △이미 유효한 구제 수단이 남아있지 않는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에서나 논의되는 저항권을 평상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주장하는 사람들 △헌법과 법률에 정한 바 없어 위헌·위법한 주장에 불과한 계몽적 계엄, 잠정적 계엄, 경고성 계엄을 당연하더라도 주장하는 사람들 △지난 2025년 1월 19일 발생한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건과 같이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위해서는 헌법과 법률을 쉽사리 위반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민주주의의 근본이 되는 선거 제도를 정당한 근거 없이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2·3 내란은 이와 같이 잘못된 주장이나 생각을 양산하거나 그 상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내란에 해당하는 기존 내란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들은 위로부터의 내란에 가담한 피고인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 기준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존 내란 사건이 발생했던 시기와 12·3 내란이 발생한 시기에 대한민국의 국제적인 위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납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고, 이에 따라 국제 무역과 국제 정치 등에 있어서 그 위상도 기존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대한민국에서 친위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사실로 인해 생긴 경제적·정치적 충격은 기존 내란 행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른다고 보입니다. 이러한 점에서도 기존 내란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들은 피고인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12·3 내란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내란 행위 자체는 몇 시간 만에 종료되긴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무엇보다도 무장한 계엄군에 맨몸으로 맞서 국회를 지킨 국민의 용기에 의한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이러한 국민의 저항을 바탕으로 신속히 국회에 진입하여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한 일부 정치인들의 노력, 대한민국 역사에 있었던 내란의 암울한 기억을 상기하면서 위법한 지시와 명령에 저항하거나 혹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르더라도 소극적으로 참여한 일부 군인과 경찰 공무원의 행동에 의한 것입니다. 결코 12·3 내란 가담자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12·3 내란 가담자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 피해 발생이 경미하였다거나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는 사정을 깊이 고려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의 폭동이 발생하면, 이로 인하여 막대한 인명과 재산상 피해, 사회적 혼란이 초래될 것은 분명하고 혹시라도 내란이 성공하여 국민적 합의로 성립한 현재의 헌법 질서가 폭력에 의하여 무너지게 되면 이를 원래대로 회복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내란 행위를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내란 행위에 가담한 사람들을 무겁게 처벌하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피고인은 간접적으로나마 민주적 정당성과 그에 대한 책임을 부여받은 국무총리로서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헌법을 수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헌법적 의무를 부담합니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12·3 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러한 의무와 책임을 끝내 외면하고 오히려 그 일원으로 가담하기를 선택하였습니다. 이러한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대한민국은 자칫하면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유린당하였던 어두운 과거로 회귀하여 독재정치라는 수렁에서 장기간 헤매 나오지 못하게 될 수 있었고 국민은 씻을 수 없는 상실감과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피고인은 국무총리로서 12·3 내란의 진실을 밝히고 그의 합당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사후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이 사건 비상계엄 관련 문건을 은닉하고 비상계엄 선포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기 위해 허위 공문서를 작성하였다가 폐기하였으며, 헌법재판소에서 위증하였습니다. 피고인 재판 과정에서도 허위로 진술을 번복하고, 대통령실 CCTV와 같은 객관적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는 등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벗어나고자 할 뿐입니다.

피고인이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한 행위들로 인해 우리 사회의 정치적 분열과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고, 앞으로도 이러한 상처와 갈등이 쉽사리 봉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피고인 제2회 공판기일에서 12·3 내란에 관하여 여러 가지 법적인 검토가 필요하여 공개적으로 제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만 진술하였다가, 이 법원의 요구에 따라 내란 중요임무종사 공소사실이 추가되고 대통령실 CCTV 영상 재생 및 증인 신문 등 증거 조사를 거쳐 자신의 범죄 사실이 탄로 나 형사 처벌의 기로에 서자 마지못해 최후진술에 이르러서야 국민이 겪은 고통과 혼란에 대해 가슴 깊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는 취지로 진술하였지만, 그 사과의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달리 피고인이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거나 자신의 범죄 행위로 인하여 국가와 국민이 입은 피해를 회복시키기 위한 어떠한 노력을 하였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습니다. 이러한 점과 그 밖의 양형 조건이 되는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합니다.

주문. 피고인을 징역 23년에 처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 중 허위 작성 공문서 행사의 점은 무죄. 판결에 불만이 있으면 일주일 이내에 항소장을 제출해서 다툴 수 있습니다. 항소하는 경우는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됩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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