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별세] 멱살 잡다 동지로... 이해찬-유시민의 특별했던 '46년 인연'

2026-01-2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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멱살 잡던 후배에서 정치적 동반자까지... 두 사람의 인연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더불어민주당 대표을 당시인 2019년 1월 29일 유시민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세종시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선언 15주년 기념행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더불어민주당 대표을 당시인 2019년 1월 29일 유시민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세종시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선언 15주년 기념행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25일 별세한 이해찬 전 국무총리(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와 유시민 작가(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40년 넘은 인연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 전 총리와 유 작가는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둘의 인연은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학교 복학생협의회와 총학생회 간부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시작됐다. 서울의 봄이란 1979년 제4공화국 당시 10·26 사건으로 유신체제가 사실상 붕괴한 후 이듬해 신군부에 의해 대한민국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된 5·17 내란 발발과 그 이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진압될 때까지의 기간을 일컫는다.

당시 두 사람은 병영집체훈련 문제를 두고 의견 차이를 보였다. 복학생협의회장이었던 이 전 총리가 사회를 보던 유 작가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하며 충돌한 일화가 유명하다. 이후 두 사람은 절친한 운동권 선후배 사이로 남았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이 전 총리는 유 작가를 보좌관으로 영입하며 본격적인 정치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당시 보좌관이었던 유 작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청문회 질의서를 탁월하게 작성해 이 전 총리를 노무현·이철 의원과 함께 청문회 3대 스타의 반열에 올려놨다.

이 전 총리는 당시를 회고하며 "당시 유 보좌관이 작성한 질의서는 토씨나 고쳐야 할 정도로 대단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이 전 총리는 유 작가가 정치적 요직을 거치며 성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전 총리는 교육부장관이었던 1999년 1월 유 작가를 교육부 산하 학술진흥재단 기획실장으로 추천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1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유 작가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기용하려 하자,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 전 총리는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이 전 총리는 유 작가가 야당에 미운털이 박힌 상황을 고려해 임명을 반대하며 국무위원 제청권을 행사하려 했다.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쓴 '바보 산을 옮기다'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과 이 전 총리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노 전 대통령이 "당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언성을 높이자, 이 전 총리는 "감정적으로 그러지 마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원칙대로 가는 게 맞는다"며 발표를 강행했고, 이 전 총리가 계속 반대하자 "그럴 거면 그만두라"는 말까지 했다. 이후 유 작가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았고, 2013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정계 은퇴 이후에도 이어졌다. 2018년 10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 전 총리는 노무현재단 이사장직을 내려놓으며 후임으로 유 작가를 지명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당시 유 작가는 정계 복귀 가능성을 경계하며 이사장직 수락을 망설였으나, 이 전 총리는 "자네가 내 등골 빼먹으려고 나를 당 대표로 밀었다는데 그러면 자네도 내가 비우게 되는 자리를 맡아줘야 할 것 아니냐"며 "자유인으로 남고 싶으면 차라리 재단 이사장을 맡는 게 나을 것"이라는 논리로 유 작가를 설득해 결국 승낙을 받아냈다.

이 전 총리는 당시 이취임식에서 유 작가에 대해 “2002년 선거부터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노 전 대통령의 가치를 가장 잘 실천하는 공직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유 작가는 2007년 펴낸 자신의 책에서 이 전 총리에 대해 "이해찬이라는 사람을 안 지 28년이 됐다. 나에게 그는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선배였다. 나는 그에게서 현실 정치와 입법의 원리를 배웠다. 그는 내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귀한 가르침을 주었고, 지금도 주고 있는 인생의 스승이다"라고 썼다.

유 작가는 또 "이해찬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사무사의 정치인'이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삿되거나 간사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라며 "매 순간 선택을 요구받는 것이 정치인데, 그는 스스로 정당화할 수 없는 타협이나 아부를 절대 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운동권 대부’였던 이 전 총리는 7선 국회의원과 장관, 국무총리, 당 대표를 거치며 4명의 대통령 탄생에 기여했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며 175석으로 압승하는 데 기여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했던 그는 지난해 10월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됐다.

이 전 총리는 지난 22일 베트남 호찌민 출장 중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으나 상태가 악화돼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별세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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