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유엔군사령부 ‘민간인 DMZ(비무장지대) 출입’ 두고 정면충돌

2026-01-2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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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사 “정전협정 위배” vs 통일부 “평화이용 막는 건 영토주권 침해”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비무장지대(DMZ) 내 우리 정부의 관할권을 확대하는 이른바 ‘DMZ법’을 두고 유엔군사령부(유엔사)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유엔사는 이 법안이 정전협정에 위배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데 반해 통일부는 정전협정 위반 소지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양측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으면서 한미 관계의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기도 파주 접경지역에서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는 남북초소. / 뉴스1 자료사진
경기도 파주 접경지역에서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는 남북초소. / 뉴스1 자료사진

유엔사는 1950년 6·25 전쟁 발발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창설된 다국적군 사령부다. 전쟁 당시 북한군의 침공을 막기 위해 결성됐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한반도에서 정전 상태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핵심 기구 역할을 해왔다. 특히 정전협정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내의 출입 통제와 민사행정 등에 대한 법적 관할권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임하고 있으며 미국 합동참모본부의 지휘를 받는 구조다.

유엔사 관계자는 28일 서울 용산기지 내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DMZ법이 통과되면 한국 정부가 스스로 정전협정 적용 대상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가 DMZ 출입 승인 권한을 갖는 것은 정전협정에 정면으로 충돌하며 유엔군사령관의 권한을 과도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엔사가 언론과 정기적으로 소통하는 자리가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간담회는 매우 이례적인 행보로 평가된다.

이번 갈등의 발단이 된 ‘DMZ법’은 더불어민주당의 한정애·이재강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안들이다. 비군사적·평화적 목적에 한해 우리 정부가 민간인의 DMZ 출입을 승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안의 핵심이다. 이는 이재명 정부의 남북 교류 및 생태 관광 활성화 구상을 뒷받침하기 위한 입법으로 풀이된다. 현행 체계에서는 민간인이 DMZ에 들어가기 위해 통일부의 허가를 받더라도 최종적으로 유엔사의 승인을 얻어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유엔사는 정전협정 1조 7·8·9항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해당 조항은 군사분계선 이남 DMZ에 대한 관할권이 유엔사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특히 유엔사 측은 “비군사적 부분에서 유엔사가 관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측은 서문의 ‘군사적 성질’이라는 단어 하나에만 집중한 것 같다”며 “정전협정은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의 역할을 맡기 때문에 서문의 표현은 오해를 방지하고자 추가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반면 통일부는 정전협정 서문에 협정의 성격이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있다고 명기된 점을 들어, 비군사적인 평화적 이용까지 유엔사가 가로막는 것은 영토 주권 침해라고 맞서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29일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만나 “법안에는 유엔사와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명시돼 있어 정전협정과 충돌하지 않는다”며 “유엔사가 말하는 것은 그들의 입장일 뿐이며 국회의 법 제정은 입법부의 고유 권한”이라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또한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법안은 관계기관과 의견을 조율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유엔사의 관할권을 존중하는 취지가 포함돼 있음을 피력했다. 하지만 유엔사 측은 협의가 아닌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유엔사 관계자는 “DMZ법은 유엔군사령관의 권한을 제3자에게 넘겨주면서도 모든 책임은 결과적으로 사령관이 지게 만드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며 책임 구조의 모순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만약 DMZ에서 우리 국민이 다쳤다면 그것이 오롯이 유엔사 책임인지는 모르겠다”며 유엔사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DMZ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안에 대해 유엔사가 실질적인 책임을 지고 있진 않다는 점을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양측 간의 감정적 기류가 상당함을 시사한다. 여당 일각에서는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철도 조사나 타미플루 지원 등 남북 협력 사업에 유엔사가 제동을 걸었던 사례를 언급하며 이번 입법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 내부의 시각차가 뚜렷하다. 국방부는 상대적으로 유엔사의 입장을 존중하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빛나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정전협정에 의한 유엔사의 권한을 존중하며 DMZ 이용과 관련해 유엔사와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유엔사의 관할권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방부는 2024년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도 “유엔사와 사전 협의 없는 입법은 정전체제 관리에 혼선을 초래하고 한미 관계와 국제적 신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외교부 역시 신중하면서도 창의적인 해법을 모색 중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관훈토론회에서 “유엔사의 주장은 그들의 입장”이라며 “조문별로 면밀히 검토해 양측의 입장을 일치시킬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일 외교부 대변인도 “국회의 입법권과 정전협정에 따른 유엔사의 권한을 모두 존중해야 하며, DMZ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국민적 열망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정부·여당의 입법 추진을 ‘안보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 규정하며 강력한 공세를 펼쳤다.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29일 논평에서 “정치적 발언을 자제해 온 유엔사가 이처럼 강도 높은 우려를 표명한 것은 이번 사안을 중대한 안보 위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DMZ는 목함지뢰 도발 등이 발생했던 일촉즉발의 최전선인데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출입 체계를 흔드는 것은 무책임한 안보 실험”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최 대변인은 “정부 내부에서도 부처 간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설익은 법안을 밀어붙이는 것이 과연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인지 묻고 싶다”며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한미 공조에 균열을 초래할 DMZ법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한 안보에 집중하라”고 촉구했다.

이처럼 정부와 유엔사, 그리고 정치권 내의 입장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DMZ를 둘러싼 갈등은 한미 간의 외교적 문제로까지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엔사가 미국 합참의 통제를 받는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의 전개 양상에 따라 한미 동맹의 균열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유엔사와 협의를 통해 접점을 찾겠다는 계획이지만, 양측의 정전협정 해석 차이가 워낙 확고해 접점을 찾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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