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140억원짜리 불륜 응징 영화'라는 대작 한국 영화

2026-01-2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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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 신작 개봉 앞두고 새삼 화제 모으는 영화

영화 '황해'
영화 '황해'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올여름 개봉하면서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손익분기점 달성에 실패한 ‘황해’(2010년)에 새삼 누리꾼 관심이 쏠린다. 일부 영화팬이 ‘황해’는 불륜 고발이 목적인 영화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한 남자가 바다를 건넌다. 돈 때문이기도 하고, 아내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의 삶을 망가뜨린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황해’는 흔히 잔혹한 범죄 스릴러로 기억되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 영화의 출발점이 의외로 사적인 감정임을 확인하게 된다. 외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배신에 대한 공포, 그리고 치정이 낳은 폭력이다. ‘황해’는 불륜이라는 감정의 균열이 어떻게 살인과 파국으로 번져가는지 집요하게 밀어붙인다.

영화 '황해'
영화 '황해'

영화의 중심에는 연변의 택시기사 구남(하정우)이 있다. 구남은 연변에서 택시를 운전하며 구질구질한 일상을 살아간다. 한국으로 돈을 벌러 간 아내는 6개월째 소식이 없고, 빚을 갚기 위해 마작판을 전전하지만 결과는 늘 패배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살인청부업자 면가(김윤석)로부터 한국에 가서 누군가를 죽이고 오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빚을 갚고, 동시에 아내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구남은 결국 위험한 선택을 받아들이고 황해를 건너 한국으로 향한다.

매서운 바다를 건너 서울에 도착한 구남은 살인 기회를 엿보는 동시에 아내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하지만 계획은 어긋난다. 목표물은 구남의 손이 닿기도 전에 다른 인물에 의해 살해되고, 현장에서 도주한 구남은 순식간에 살인범으로 몰려 경찰의 추적 대상이 된다. 청부살인을 의뢰한 태원(조성하)은 사건이 꼬이자 증거 인멸을 위해 구남을 제거하려 들고, 연변에 남아 있던 면가 역시 뒤늦게 황해를 건너와 구남을 쫓기 시작한다. 살기 위해 도망치는 자와, 각자의 목적을 안고 그를 추격하는 자들이 얽히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겉으로 보기에 이 모든 비극은 조선족 밀항자와 범죄 조직, 잔혹한 추격전이 얽힌 범죄극처럼 보인다.

영화 '황해'
영화 '황해'

하지만 사건의 출발점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은행원 김정환(박병은)은 대학교수 김승현(곽도원)의 아내와 내연 관계에 있었고, 이 관계가 드러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살인을 교사한다. 영화 속 가장 큰 참사는 거대한 음모나 조직범죄가 아니라, 들킬 수 있다는 공포와 자기 일상을 지키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불륜은 이 영화에서 사적인 문제로 머물지 않고, 타인의 생명을 거래하는 동기가 된다.

나홍진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황해’의 핵심 동력으로 치정과 원한을 직접 언급해왔다. 그는 살인의 범행 동기 가운데 치정이 차지하는 비중을 강조하며, 외도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한 인간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는 실제 불륜이 있었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김승현의 아내가 정말 외도를 했는지, 구남의 아내 화자가 배신했는지는 끝내 확인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물들은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심만으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이 구조는 구남에게도 반복된다. 그는 아내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동시에 아내가 자신을 배신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사로잡힌다. 영화 속에서 구남은 직접적으로 불륜의 증거를 목격하지 않지만, 악몽과 불안은 그를 점점 광기로 몰아넣는다. 불륜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파괴력을 가진 감정으로 작동한다.

또 다른 축에는 버스회사 사장 태원(조성하)이 있다. 그는 내연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소유욕과 질투에 사로잡혀 극단의 폭력을 선택한다. 태원의 내연녀 주영(이엘)은 이 치정 관계의 말단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인물이다. 영화는 불륜 관계에 있는 인물들이 대부분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구조를 취하지만, 이를 도덕적 심판처럼 연출하지는 않는다. 대신 욕망과 공포가 결합했을 때 폭력이 얼마나 쉽게 확산되는지 보여준다.

영화 '황해'
영화 '황해'

이 지점에서 ‘황해’를 불륜에 대한 응징의 영화로 읽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불륜 혹은 불륜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파멸한다. 다만 영화의 시선은 처벌이나 교훈에 있지 않다. 불륜은 하나의 불씨일 뿐이고, 그 불씨를 키운 것은 자본과 생존 논리, 그리고 인간의 불안이다. 살인은 도덕적 분노의 결과가 아니라, 일상을 지키기 위한 선택으로 포장된다.

영화의 진짜 주제는 인간의 생존 본능과 허무주의다. 구남은 정의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그는 빚을 갚고 살아남기 위해, 또 아내를 찾기 위해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폭력에 노출된다. 영화는 그를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짐승이 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제목인 ‘황해’는 이런 허무를 상징한다. 구남이 건너온 바다는 국경이자 계급의 경계이고, 되돌아갈 수 없는 선이다. 영화 마지막에서 바다는 모든 사건을 삼킨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불륜에서 시작된 의심도, 그로 인해 벌어진 살인과 폭력도 바다 앞에서는 의미를 잃는다.

영화 '황해'
영화 '황해'

‘황해’는 순제작비 110억원, 마케팅 비용 등을 포함한 총제작비 140억원이 투입된 대작이었다. 손익분기점은 관객 수 약 400만명이었지만 최종 관객 수는 226만명에 그쳤다. 16년 전 영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제작비가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흥행 성적과 별개로 이 영화가 남긴 해석의 여지는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이런 문제의식은 올해 여름 개봉을 앞둔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로도 이어진다. 비무장지대 인근의 고립된 항구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는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을 비롯해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테일러 러셀, 카메론 브리튼 등 국내외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외계인이라는 SF적 설정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제작진은 이 영화 역시 인간의 공포와 불안,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폭력의 연쇄를 중심에 두고 있다고 밝혀왔다. ‘황해’가 불륜과 치정, 생존 본능을 통해 인간의 밑바닥을 파고들었다면, ‘호프’는 낯선 존재 앞에서 드러나는 선택과 공포를 통해 또 다른 방식의 파국을 그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황해'
영화 '황해'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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