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막노동하며 버텼는데…이번 올림픽서 '기적' 만들며 은메달 딴 한국 선수

2026-02-0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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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생계 걱정으로 버틴 시간, 은메달 하나로 증명되다

수년간 생계를 걱정하며 훈련을 이어온 비인기 종목 선수의 시간이 은메달 하나로 증명됐다. 대한민국 스노보드 대표팀 맏형 김상겸의 힘들었던 시절 '막노동' 일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김상겸, 은메달 포효. / 뉴스1
김상겸, 은메달 포효. / 뉴스1

김상겸은 지난 8일(한국 시각)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선수단의 이번 대회 첫 메달이자, 대한민국 동·하계 올림픽 통산 400번째 메달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은메달이지만, 과정은 기적에 가까웠다. 김상겸은 예선을 8위로 통과했다. 우승 후보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결선 토너먼트에서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 8강에서는 예선 1위였던 롤란트 피슈날러를 꺾었고, 4강에서는 불가리아의 터벨 잠피로브를 제압했다. 결승에서는 오스트리아의 베냐민 카를에게 0.19초 차로 뒤졌지만, 마지막까지 승부를 예측하기 어려운 접전을 펼쳤다.

37세의 나이에 네 번째 올림픽 도전에서 이뤄낸 첫 메달이다. 김상겸은 경기 직후 시상대에 올라 큰절을 올렸다. 단순한 세리머니가 아니라, 선수 생활 내내 버텨온 시간에 대한 정리였다. 그는 “항상 해보고 싶던 세리머니였다”고 설명했고, 설을 앞둔 시점에서 응원해 준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새 역사 써 내려간 한국 스노보드 김상겸. / 뉴스1
새 역사 써 내려간 한국 스노보드 김상겸. / 뉴스1

김상겸의 이름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경기력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스노보드는 여전히 비인기 종목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이상호가 은메달을 따냈고, 이번 대회에서도 최가온과 이채운 등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지원 규모와 환경은 다른 종목과 비교해 열악한 편이다. 대표팀 선수라 해도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하기 어렵다.

김상겸 역시 그 현실을 피하지 못했다. 그는 대표팀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지만 실업팀에 들어간 시점은 서른이 넘어서였다. 그전까지는 사실상 수입이 없었다. 부모에게 계속 손을 벌릴 수는 없었고, 선택지는 제한적이었다. 그는 훈련이 없는 틈을 쪼개 인력 파견 회사를 통해 일용직 막노동에 나갔다. 1년에 300일 가까이 훈련을 해야 하는 대표팀 일정 속에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많지 않았다.

폭풍질주 중인 스노보드 김상겸. / 뉴스1
폭풍질주 중인 스노보드 김상겸. / 뉴스1

운동과 생계를 동시에 감당해야 했던 시간은 몸과 마음 모두를 소진시켰다. 그는 “운동만 해도 쉽지 않은데 생활까지 걱정해야 하니 버거웠다”고 돌아봤다. 그럼에도 스노보드를 내려놓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포기를 막았다. 주변의 응원, 특히 가족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김상겸은 국제무대에서 꾸준히 성과를 쌓아온 선수다. 2011년 유니버시아드 평행대회전 금메달, 2017년 삿포로 아시안게임 동메달을 따냈다. 국가대표로는 오랜 시간 붙박이였지만, 올림픽 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은메달은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시상식 장면에서도 그의 태도는 화제가 됐다. 금메달을 딴 베냐민 카를의 국가가 연주될 때 털모자를 벗었고, 상의를 탈의하며 기쁨을 표현한 카를을 안아주며 축하했다. 자신도 같은 세리머니를 하고 싶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며 웃어 넘겼다. 경쟁자이자 동료로서의 존중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값진 은메달 목에 건 스노보드 김상겸. / 뉴스1
값진 은메달 목에 건 스노보드 김상겸. / 뉴스1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결승 진출이 확정된 순간부터 눈물이 차올랐다고 했다. 첫 올림픽 메달이라는 사실보다, 그 과정을 함께 견뎌준 가족에 대한 감정이 컸다. 그는 부모를 떠올리며 “불효자에 가까운 자식이었는데, 오늘 결과로 조금이나마 보답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메달을 들고 직접 찾아뵙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내에게는 “묵묵히 믿어주고 버텨준 사람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했다.

김상겸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체력이 허락하는 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번 경기에서도 40대 중반의 선수들이 경쟁력을 보여줬다는 점을 언급하며, 관리만 잘하면 더 뛸 수 있다고 봤다. 다만 현실적인 걱정도 숨기지 않았다. 40대 이후에도 자신을 받아줄 실업팀이 있을지에 대한 불안이다.

그럼에도 이번 은메달은 선택의 정당성을 증명했다. 비인기 종목, 불안정한 생계, 늦은 나이. 그 모든 조건 속에서도 김상겸은 끝까지 버텼고, 결국 올림픽 시상대에 섰다. 기록으로 남는 은메달이지만, 그 뒤에는 8년 넘게 이어진 막노동과 훈련, 그리고 포기하지 않은 시간이 고스란히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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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권미정 기자 undecided@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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