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준의 뚝심이 만든 잭팟 이익… 효성, 미국 전력망 핵심 파트너 등극
2026-02-1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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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붐 타고 미국 전력망 장악한 효성중공업의 비결
멤피스 공장 투자가 낳은 7870억 원 초대형 수주
효성중공업이 미국 전력망 시장에서 7870억 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한국 전력기기 기업 역사상 단일 프로젝트 기준 최대 수주 기록을 썼다.
미국 전력 시장이 인공지능(AI) 확산과 데이터센터 건설 붐으로 전례 없는 호황기를 맞이했다. 향후 10년간 전력 수요가 25% 이상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미국 내 주요 전력 사업자들은 송전망 확충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용량 전력을 장거리로 보낼 때 전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765kV(킬로볼트) 초고압 송전망이 핵심 인프라로 떠올랐다. 효성중공업은 미국 유력 송전망 운영사와 765kV 초고압 변압기 및 리액터(전력 품질 안정화 장치) 공급 계약을 맺으며 이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효성중공업은 이미 미국 765kV 초고압 변압기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 미국 송전망을 흐르는 765kV 변압기의 절반 가까이가 효성 제품이다. 지난해 한국 기업 최초로 변압기와 차단기를 포함한 전력기기 풀 패키지 공급 계약을 따낸 데 이어 이번 초대형 계약까지 성사시키며 경쟁사들이 넘볼 수 없는 진입 장벽을 세웠다는 평가다. 단순한 기기 납품을 넘어 변압기와 800kV 초고압 차단기까지 모두 공급 가능한 '토털 솔루션 프로바이더'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이러한 성과의 배경에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2001년 미국 법인을 설립한 뒤 2010년 한국 기업 최초로 765kV 변압기를 수출하며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결정적인 승부수는 2020년 테네시주 멤피스 공장 인수였다. 당시 내부에서는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나 경영진은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현재 멤피스 공장은 미국 내에서 765kV 초고압 변압기를 자체 설계하고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공장이다. 창원공장이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 관리 시스템과 표준화된 설계 노하우를 멤피스에 그대로 이식해 생산 효율을 극대화했다.
조현준 효성 회장의 '뚝심 경영'이 빛을 발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조 회장은 2020년 공장 인수 당시 "AI와 데이터센터의 확산으로 전력 인프라가 국가 안보의 핵심이 되는 싱귤래러티(특이점)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멤피스 공장 인수와 증설에 약 3억 달러(한화 4400억 원)를 쏟아부으며 공급망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조 회장의 예측대로 미국은 자국 내 생산 능력을 갖춘 파트너를 원했고 준비된 효성중공업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조 회장은 민간 외교관 역할도 자처했다. 빌 해거티 테네시주 상원의원, 빌 리 테네시 주지사 등 지역 정관계 인사들은 물론 스콧 스트라직 GE 버노바 CEO 등 에너지 업계 거물들과 수차례 회동하며 신뢰를 쌓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와 맞물려 한국 기업이 미국 전력 안보의 대체 불가능한 파트너로 인정받는 데 이러한 네트워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지 기술 대학과 협력해 우수 인재를 채용하고 지역 사회와 밀착한 것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적은 숫자로 증명됐다. 효성중공업은 2025년 매출 5조 9685억 원, 영업이익 7470억 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전년 대비 글로벌 수주 잔고는 약 34% 증가해 11조 9000억 원에 달한다. 폭발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진행 중인 멤피스 공장 증설이 완료되면 생산 능력은 미국 내 최대 규모로 확대된다.
효성중공업의 시선은 이제 차세대 전력망인 초고압직류송전(HVDC)으로 향한다. HVDC는 교류 전력을 직류로 바꿔 전송하는 기술로 전력 손실이 적어 '에너지 고속도로'로 불린다. 효성중공업은 국내 최초로 독자 개발한 HVDC 기술을 앞세워 정부의 전력망 확충 사업을 주도할 계획이다. 2027년 7월 완공을 목표로 창원공장에 HVDC 전용 공장을 짓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설계부터 기자재 생산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국내 유일의 HVDC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미국 시장에서의 압도적 지위 확보와 차세대 기술 투자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효성중공업의 행보는 한국 중공업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조 경쟁력과 선제적 투자가 결합했을 때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장벽을 어떻게 넘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사례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