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넷플릭스 1위…미친 역주행으로 개봉 2년 만에 재평가 중인 뜻밖의 '한국 영화'
2026-02-2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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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서 4만 관객 모은 한국 영화, 넷플릭스서 역주행 1위 달성
극장에서 4만 관객을 채 모으지 못하고 조용히 막을 내렸던 한국 독립영화가 개봉 약 2년 만에 넷플릭스 정상을 밟았다. 오정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 '장손'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2월 14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장손'은 설 연휴 기간 시청자가 급격히 몰리며 2월 19일 국내 TOP 10 2위에 올랐고, 하루 만인 20일에는 1위를 차지했다. 극장 흥행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뒤늦게 대중과 만나며 극적인 역주행을 완성했다.

2024년 9월 11일 개봉한 이 영화는 12세 이상 관람가 등급의 가족·미스터리·드라마 장르 작품이다. 대구 시골에서 두부 공장을 운영해온 3대 대가족이 제삿날 한자리에 모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업을 물려받아야 할 장손 성진(강승호)이 가업 승계를 거부하면서 재산 분쟁과 세대 간 갈등이 폭발하고, 70년 세월 동안 묻어두었던 집안의 비밀이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오른다. 여기에 예기치 못한 이별이 더해지면서 갈등은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닫는다.

초라한 극장 흥행 성적과 달리 평단의 반응은 뜨거웠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장손'을 2024년 최고의 한국 영화로 꼽았고, 현재 네이버 평점은 8.68점을 기록 중이다. 설 연휴를 계기로 가족 단위 시청자가 대거 유입되면서 "우리 집 이야기 같다"는 공감의 목소리가 온라인 곳곳에 퍼졌고, 입소문이 확산됐다.

작품의 가장 큰 무기는 과장 없는 현실감이다. 화려한 사건 없이도 가족 구성원들의 미묘한 시선과 침묵만으로 감정의 균열을 포착해내고, 한 가족의 이야기를 한국 근현대사로 확장한다. 손숙, 차미경 등 베테랑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도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옥자 역의 정재은과 동우 역의 서현철은 극 중 부부로 등장하는데, 두 배우는 실제 부부 사이이기도 하다.

촬영은 영화 속 배경인 대구가 아닌 경남 합천 일대에서 진행됐다. 특히 상여가 지나가는 장면에 등장하는 아름드리나무도 합천에 위치한 실제 나무다.
이 영화는 오정민 감독의 자전적 경험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직접 집필하며 "스무 살 무렵 할머니가 돌아가신 기억에서 출발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도 창작 동기가 됐다. 그는 "20대 시절의 저는 가족의 속물적인 모습 같은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런 시선이 조금씩 변화한 것 같다. 저 또한 마음속에 그런 면을 가진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가족을 배척하기보다는 좀 더 이해해보고 싶어졌다. 한때 미워했던 윗세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보는 사람마다 다른 해석을 끌어내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혀온 만큼, '장손' 역시 다양하게 읽히도록 설계됐다. 그는 관객들의 천차만별 후기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고 전했다.

관객 반응도 심상치 않다. "소름끼치게 한국적인 영화.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서글프다", "너무나 소름 끼치게 리얼해서 다큐처럼 느껴질 정도. 영상미도 좋았음. 2024년에 본 한국영화 중 최고", "가족의 이야기가 역사적 이야기로 확장되며 한국 가족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남아 선호사상과 가부장제를 선명히 조명하다", "개봉 시기가 명절쯤이었던 것까지 완성이었던 영화" 등 묵직한 감상평이 줄을 잇고 있다. 일부 관객은 "명절 특선영화로 해마다 틀어줘야 한다"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극장에서 4만 관객을 넘지 못했던 독립영화가 넷플릭스를 통해 더 많은 관객에게 닿으며 뒤늦게 재평가되고 있다. '장손'의 역주행은 플랫폼의 힘이 작품의 수명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