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 트럼프 대통령 입장 이틀 만에 180도로 바뀐 이유
2026-03-08 07:20
add remove print link
“쿠르드족 개입 원하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이 주도하는 대이란 군사작전에 쿠르드족이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7일(현지시각) 밝혔다. 불과 며칠 전 쿠르드족의 이란 공격 가능성에 "전적으로 찬성한다"고 말했던 것에서 180도 달라진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미군 장병 유해 귀환식에 참석한 뒤 플로리다로 이동하는 에어포스원 안에서 기자들에게 "우리는 쿠르드족이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쿠르드족이 개입하지 않아도 전쟁은 충분히 복잡하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쿠르드족이 다치거나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우리는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쿠르드족의 이란 내 봉기 가능성에 대해 "그들이 그렇게 하고 싶다니 훌륭하다. 전적으로 찬성한다"고 밝혔다. 또 그보다 앞서 이라크 쿠르드 자치 지역 내 쿠르드 주요 정파 지도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란에 맞서는 봉기를 촉구하고 미국의 지원을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쿠르드 지도자들에게 "이번 전투에서 미국·이스라엘 편에 설 것인지, 이란 편에 설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압박한 것으로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CIA는 일부 쿠르드 민병대에 소형 화기를 지원했고, 미국과 이스라엘은 쿠르드 세력이 이란 국경을 넘기 수월하도록 이란 북서부 국경 지대의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기지를 집중 폭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르드족은 세계 최대의 독립 국가 없는 민족으로 불린다. 터키 남동부, 시리아 북부, 이라크 북부, 이란 북서부에 걸친 이른바 '쿠르디스탄' 지역에 2500만~4000만 명이 흩어져 살고 있다. 이란 내 쿠르드족은 전체 인구 9000만 명의 약 10%에 달하는 최대 소수민족 중 하나다. 이란 서부 산악 지대에 주로 거주한다. 1991년 걸프전, 2003년 이라크 침공, IS(이슬람국가) 격퇴전에 이르기까지 쿠르드 전사 '페슈메르가'는 미국의 가장 효율적인 지상군 대리인으로 활약해 왔다.
이라크의 이란 전쟁 개전 6일 전인 지난달 22일에는 이라크 쿠르드 자치 지역에 근거지를 둔 이란계 쿠르드 반정부 단체 5곳이 '이란 쿠르디스탄 정치세력연합(CPFIK)'을 결성했다. 쿠르디스탄 자유당(PAK) 대변인 하나 야즈단파나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우리 병력은 국경을 넘을 준비가 돼 있고 대기 중이지만, 아직 작전 승인은 없다"고 밝혔다. 쿠르디스탄민주당 이란 지부(KDPI) 지도자 무스타파 히즈리는 X에서 "이란 전역, 특히 쿠르디스탄의 모든 군인과 IRGC 병력에 병영을 떠나 가족 품으로 돌아가라"고 촉구했다.
이란은 쿠르드 세력의 움직임에 즉각 강경 대응에 나섰다. IRGC는 이라크 쿠르드 자치 지역 내 쿠르드 반이란 단체 본부를 겨냥해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이란 국영 IRNA통신은 "이라크 쿠르디스탄 지역에 있는 반혁명 분리주의 세력 본부를 미사일 3발로 타격했다"고 보도했다. 이란의 공격으로 이라크 쿠르드 자치 지역 에르빌 공항 인근에서도 폭발이 발생했다.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KRG)는 이란의 공격을 규탄하면서도 "쿠르드 자치정부와 정당들은 이란에 대한 공세 작전에 참여하고 있지 않으며, 전쟁과 역내 긴장을 확대하는 어떤 움직임에도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쿠르드족 입장에서도 선택은 쉽지 않다. 미국이 필요할 때 쿠르드족을 이용하고 이후 버렸던 역사가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은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 쿠르드족에게 사담 후세인에 맞서 봉기하도록 촉구했다가 전쟁을 조기에 끝내면서 쿠르드족이 이라크군의 보복 학살에 노출되도록 방치했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1기 집권 당시인 2019년 시리아에서 미군을 일방적으로 철수시키면서 IS 격퇴의 핵심 파트너였던 시리아 쿠르드 세력을 터키의 공세에 무방비로 내버려 뒀다. 올해 초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시리아 특사 톰 배럭이 미국-쿠르드 간 IS 격퇴 파트너십의 효용이 "만료됐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입장 번복은 쿠르드족의 이란 개입이 터키를 비롯한 주변국과의 외교 갈등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현실적 우려와 맞닿아 있다. 쿠르드 노동자당(PKK)과 연계된 쿠르드 자유생활당(PJAK)이 참전할 경우, 쿠르드 세력을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터키가 이에 맞서 군사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