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떡볶이 하면 신당동, 족발 하면 장충동…우리가 몰랐던 서울에 담긴 한 그릇

2026-03-2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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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실수가 만든 검붉은 맛, 신당동 떡볶이의 탄생 비화
실향민의 향수와 스포츠의 열기가 빚어낸 장충동 족발의 역사

특정 지역을 떠올렸을 때 곧바로 연결되는 음식이 있다는 것은 그 동네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다. 서울의 수많은 골목 중에서도 신당동, 장충동, 남대문시장은 음식 이름이 동네 이름 앞에 붙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독보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 골목들은 단순히 맛집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다. 전쟁 이후의 가난, 산업화 시기의 역동성, 그리고 서민들의 고단한 삶이 섞여 만들어진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서울을 대표하는 음식 골목 세 곳의 시작과 성장 과정을 알아보자.


1. 신당동 떡볶이 골목: 고추장과 춘장의 우연한 만남

신당동 즉석떡볶이 / shutterism-shutterstock.com
신당동 즉석떡볶이 / shutterism-shutterstock.com

신당동 떡볶이의 역사는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 전쟁이 끝난 직후,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에 고(故) 마복림 할머니가 신당동 터를 잡고 노점을 시작한 것이 그 출발점이다.

이곳 떡볶이가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배경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마 할머니가 개업 초기 짜장면 집에서 짜장면을 먹던 중, 실수로 가래떡을 짜장 소스가 담긴 그릇에 빠뜨렸다. 아까운 마음에 그 떡을 먹어보았는데 고추장만 섞었을 때보다 훨씬 깊은 맛이 났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고추장 양념에 짜장 춘장을 섞은 독특한 양념법이 탄생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검붉은 색의 신당동 떡볶이 양념이다.

1970년대 들어서며 골목은 큰 변화를 맞이했다. 이전까지는 완성된 떡볶이를 그릇에 담아 팔았으나, 테이블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두고 즉석에서 끓여 먹는 ‘즉석 떡볶이’ 방식으로 변모했다. 1980년대에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골목 안에 수십 개의 떡볶이집이 들어섰고, 가게마다 음악을 틀어주는 ‘디제이(DJ) 박스’를 설치해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로 사랑받았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을 넘어 동시대 청년 문화를 이끄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2. 장충동 족발 골목: 실향민의 향수와 스포츠의 열기

족발  / MUKACAT-shutterstock.com
족발 / MUKACAT-shutterstock.com

장충동 족발 골목은 1960년대 초반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골목의 주인공은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다.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의 할머니들이 생계를 위해 고향에서 즐겨 먹던 돼지족 요리를 팔기 시작한 것이 시초다.

특히 1960년대 초 ‘뚱뚱이 할머니’로 알려진 전숙녀 할머니의 가게가 문을 열며 골목의 기틀이 잡혔다. 당시 장충동 족발은 지금처럼 달콤한 맛보다는 간장을 베이스로 한 짭조름하고 담백한 이북식 맛에 가까웠다. 족발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63년 장충체육관의 완공이었다.

당시 장충체육관은 한국 스포츠의 메카였다. 농구, 배구 경기는 물론 김일 선수의 레슬링 경기 등이 열리는 날이면 구름 인파가 장충동으로 몰려들었다. 경기가 끝난 뒤 흥분과 허기를 달래기 위해 체육관을 나온 관람객들에게 족발은 더할 나위 없는 안주였다. 저렴한 가격에 여럿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족발은 관람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고, 수요가 늘어나자 인근에 비슷한 족발집들이 하나둘 생겨나며 지금의 족발 거리가 만들어졌다. 실향민의 생계 수단이 국민적인 야식으로 거듭난 셈이다.


3. 남대문시장 갈치조림 골목: 시장 사람들의 치열한 삶이 빚은 맛

갈치조림 사진 / 1sun-shutterstock.com
갈치조림 사진 / 1sun-shutterstock.com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중 하나인 남대문시장에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로 이름난 골목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갈치조림 골목이다. 남대문시장 본동 상가 주변의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이곳은 1980년대 중반 ‘희락식당’을 시작으로 갈치조림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모여들며 형성되었다.

당시 갈치는 한국인이 가장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생선 중 하나였다. 남대문시장의 상인들은 한 평 남짓한 좁은 매대에서 하루 종일 손님을 맞이해야 했기에, 밥을 먹으러 멀리 나가거나 긴 시간을 들일 여유가 없었다. 식당들은 상인들의 입맛에 맞춰 강하고 자극적인 양념을 개발했다.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무를 큼직하게 깔고 갈치와 매운 고춧가루 양념을 듬뿍 넣어 졸여낸 갈치조림은 시장 사람들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최고의 반찬이었다.

양은냄비를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멋이 아니라 실용적인 이유였다. 열전도율이 높은 양은냄비는 짧은 시간에 음식을 끓여낼 수 있어 바쁜 시장 사람들에게 적합했다. 1990년대 이후 매스컴을 통해 이 골목이 소개되면서, 상인들의 전용 식당이었던 갈치조림 집들은 전국적인 명소가 되었다. 지금도 점심시간이면 좁은 골목길을 따라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는데, 이는 남대문시장의 활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신당동, 장충동, 남대문시장의 음식 골목들은 모두 시련과 변화의 시기를 관통하며 만들어졌다.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우연히 발견한 맛이 떡볶이 타운을 만들었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삶은 족발이 스포츠 문화와 결합해 장충동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시장 상인들의 바쁜 일상을 책임지던 갈치조림은 이제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home 김지현 기자 jiihyun1217@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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