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탐구 집’ 은퇴자의 집은 왜 달랐나…편안함 대신 택한 의도된 불편
2026-04-07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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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탐구 집' 4월 7일 방송 정보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편안함 대신 ‘의도된 불편함’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 공간이 삶의 태도를 바꾼다고 믿는 이들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이번 방송에서는 전남 곡성과 서울 서촌, 서로 다른 두 공간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지어진 집을 통해 ‘불편한 집’의 의미를 들여다본다.

먼저 전라남도 곡성의 한적한 마을. 봄기운이 스며든 풍경 속, 살구색과 민트색이 어우러진 독특한 주택이 눈길을 끈다. 이 집은 아내의 취향과 남편의 현실적인 조건이 결합해 완성됐다. 개성 있는 공간을 원한 아내와, 친환경 구조를 선호한 이공계 출신 남편의 선택이 맞물린 결과다.
현관에 들어서면 일반적인 타일 대신 자갈이 깔려 있다. ‘집의 첫인상이 마음을 다독이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비롯된 선택이다. 다만 청소를 담당하는 남편 입장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구조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공간을 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 부부는 집이 생활 습관을 만든다고 믿는다.
주방 역시 독특하다. ㄱ자 구조의 아일랜드와 식탁을 연결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마주 보며 소통할 수 있도록 했지만, 조리 동선은 일부러 길게 설계됐다. 효율보다는 ‘몸을 더 움직이게 하는 구조’를 택한 것이다. 실제로 이 집에서는 일상 자체가 운동이 된다.
서울 생활을 접고 곡성으로 내려온 배경도 흥미롭다. 이미 이곳에 정착해 있던 가족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시댁과 가까운 생활이 부담이 될 법하지만, 서로 간섭하지 않는 분위기 덕분에 예상보다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 집의 또 다른 특징은 ‘긴장감’이다. 거실 창을 통해 내부가 외부에서 그대로 보이도록 설계해, 스스로 흐트러지지 않도록 환경을 만든 것이다.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대신,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는 공간. 부부는 이를 ‘생활을 깨우는 장치’라고 표현한다.

이어 소개되는 공간은 서울 서촌의 100년 된 양옥이다. 한옥과 골목이 어우러진 이 동네에서 이 집은 오랜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품고 있다. 맞벽 구조로 지어진 건물은 과거 도시 구조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 집을 선택한 부부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시간의 가치’를 택했다. 주차 공간이 없는 조건 때문에 차량을 정리했지만, 그 대신 골목의 계절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삶을 얻게 됐다. 출퇴근길 자체가 일상의 일부가 된 셈이다.
내부는 더욱 독특하다. 외관은 근대식 양옥이지만, 내부는 한옥 요소를 적극적으로 살렸다. 툇마루와 단차, 댓돌 구조를 활용해 ‘집 안의 또 다른 집’을 만든 형태다. 특히 천장을 걷어내면서 드러난 100년 전 목조 구조는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힌다.
리모델링 과정 역시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현대식으로 덧씌워진 내부에 당황했지만, 작은 개구부를 발견한 것이 전환점이 됐다. 그 안에서 과거 구조를 확인한 뒤, 원형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집을 되살렸다.
다락 공간에서는 철거 과정에서 얻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활용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일부 단열을 포기하는 선택까지 감수했지만, 그만큼 공간의 개성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이런 ‘불편한 집’ 트렌드에 주목한다. 단순히 편리함만을 추구하던 주거 방식에서 벗어나, 생활 방식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건축 시장에서는 건강, 활동성, 정서적 안정 등을 고려한 설계가 점점 늘고 있다.
편안함 대신 의도된 불편함을 선택한 두 집. 이들이 만들어낸 공간은 단순한 주거지를 넘어, 삶의 방식을 바꾸는 장치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