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변별력 없는 검정고시, 무거운 교실…대입 통로가 된 ‘학력인정 시험’ 이대로 괜찮나
2026-04-15 13:42
add remove print link
검정고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대입과 연결되는 만큼 변별력은 높이고, 학교 안 학생들의 역차별감 줄여야
제도는 지키되 기준은 손질해야…학력 인정과 대입 선발의 경계 다시 세울 때

[세종=위키트리 양완영 기자] 검정고시는 원래 배움의 기회를 놓친 사람에게 다시 문을 열어 주는 제도다. 경제적 곤란과 질병, 가족 돌봄, 학교 부적응, 이주 같은 사정으로 학교를 끝까지 다니지 못한 이들에게 학력 인정의 사다리를 제공하는 장치다. 이 제도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고 지금도 꼭 필요하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생긴다. 검정고시가 점점 ‘학력 회복’의 통로를 넘어, ‘대입 우회로’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논란의 초점도 제도 존폐가 아니라 대학 입시와 연결되는 방식의 공정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현재 고교 현장은 이미 크게 바뀌고 있다.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됐고, 2028학년도부터는 내신 5등급 체제와 통합형 수능이 적용된다. 학생들은 과목 선택과 이수, 내신 관리, 수행평가, 학생부 기록, 각종 학교 활동을 함께 감당해야 하는 구조 안에 놓여 있다. 학교가 단순히 대학 입시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가장 크게 체감하는 부담이 여전히 입시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학업 중단과 학교 밖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이 늘어나는 것도 낯선 풍경은 아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검정고시를 둘러싼 불만이 커진다. 학교 안 학생은 지필평가와 수행평가, 출결, 생활기록부, 비교과 활동까지 모두 안고 대학 입시를 준비한다. 반면 검정고시는 상대적으로 짧은 과정으로 학력을 인정받고 대학 지원 자격을 얻는 통로처럼 비친다는 것이다. 한 고교생은 기자에게 “문제가 너무 쉽다. 학교에서는 지필고사와 수행평가, 생활기록부 관리, 각종 학교활동을 다 하면서 대입을 준비하는데, 검정고시만 고득점을 하면 2등급 중반에서 3등급 정도의 점수를 얻는다는 인식 자체가 오히려 역차별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학교 안에서 오랜 시간 복합 평가를 감당하는 학생들 입장에선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문제 제기다.
실제 대학들도 검정고시 성적을 그대로 신뢰하는 분위기만은 아니다. 일부 대학은 검정고시 점수를 별도 기준으로 환산하거나 비교내신 방식으로 반영한다. 그만큼 검정고시 성적만으로는 고교 내신과 같은 정보량이나 변별력을 주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검정고시가 입시에 더 효율적인 것 아니냐”는 인식이 생기고 있다는 데 있다. 제도가 실제보다 더 쉽게 보이기 시작하면 학교 현장의 신뢰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핵심은 검정고시가 쉬우냐, 대학이 그 점수를 편하게 쓰느냐 중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둘 다 얽혀 있다. 누구나 최소한의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게 돕는 시험과, 대학이 지원자의 준비도를 가려내는 시험은 애초에 목적이 다르다. 그런데 지금은 이 두 기능이 한 제도 안에서 뒤섞여 있다. 학력 인정 장치로서의 검정고시는 필요하지만, 그 점수가 대입 선발 자료로까지 작동하는 순간엔 더 정교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해외에선 이 둘을 어느 정도 구분하려는 흐름도 있다. 미국의 GED는 고등학교 졸업 동등 학력을 인정하는 시험이지만, 단순 합격과 함께 대학 준비도를 보여주는 상위 점수 구간을 별도로 운영한다. 최소 학력 인정과 대학 수준 학업 준비 신호를 분리하려는 구조다. 한국처럼 검정고시를 대학 입시와 자연스럽게 연결하면서도 변별력 논란이 반복되는 상황에선 참고할 만한 방식이다.
방향은 분명하다. 검정고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 제도는 여전히 꼭 필요하고, 누군가에겐 삶을 다시 이어 주는 통로다. 다만 대학 입시와 연결되는 만큼 시험 난이도와 문항 구성, 대학 반영 방식의 손질은 필요하다. 학력 인정은 폭넓게 보장하되, 대입 선발 자료로 활용될 때는 일정한 변별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학교를 떠난 학생들도 정당하게 평가받고, 학교 안에서 복합 평가를 감당하는 학생들 역시 역차별과 소외를 덜 느끼게 된다. 검정고시를 제도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비판의 대상은 제도 설계다.
누군가에겐 생존의 통로인 제도가, 다른 누군가에겐 불공정한 지름길로 읽히는 상황을 방치한 채 교육의 신뢰를 말할 수는 없다. 검정고시의 본래 취지를 지키려면 오히려 지금 손봐야 한다. 대학 입시와 연결된 만큼 최소한의 변별력을 확보하고, 학교 안과 밖의 학생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