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게도 큰 인기 끌었던 격투기 전설, 여성 살해 협박 혐의로 체포
2026-04-1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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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의 왕에서 법정의 피고인으로... 마크 헌트의 추락
'슈퍼 사모안'이라는 별명으로 전 세계 격투기 팬들의 열광을 받은 마크 헌트(52)가 여성을 향한 살해 협박 혐의로 호주 경찰에 체포됐다. K-1 월드GP 정상에 오르고 UFC 헤비급 왕좌를 넘봤던 격투기 레전드의 현재 모습은 링 위에서 보여줬던 위풍당당함과는 너무도 달랐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16일(현지시각) 처음 보도하고 ESPN, 야후 스포츠 등 주요 매체가 일제히 받아 전한 내용에 따르면, 호주 현지시각으로 지난 14일 밤 경찰이 뉴사우스웨일스주 노던 리버스 지역의 한 주거지에 출동해 헌트를 체포했다. 헌트는 이후 시드니 북쪽 노던 리버스 지역에 위치한 발리나 경찰서로 이송돼 밤을 보냈다.
검찰이 법정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헌트는 그를 아는 한 여성이 어떤 작업을 도와주던 중 갑자기 공격적으로 변해 ‘위협적이고 모욕적인 태도’로 피해 여성과 목격자에게 공포와 고통을 안겼다. 경찰은 법정에서 헌트가 해당 여성에게 "어차피 결국엔 널 죽일 거야"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헌트는 신체적 위해를 가할 의도로 스토킹 또는 협박한 혐의 한 건으로 기소됐다.
전날 첫 법정 출두를 앞두고 헌트에 대한 보석은 초기에 거부됐다. 검사 측은 헌트의 격투기 경력을 근거로 들며 그가 피해 여성과 지역 사회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헌트의 변호인은 "은퇴한 UFC 파이터라는 사실이 가정폭력 가해자임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반박했다. 결국 헌트는 엄격한 조건을 이행하기로 한 뒤 보석으로 풀려났다. 법원은 헌트에게 시드니 남서부 코비티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갈 것과 피해 여성과의 접촉 금지를 조건으로 달았다. 다음 법정 출두일은 오는 30일 발리나 지방법원으로 잡혔으며, 이날 피해 여성에 대한 보호 명령 신청도 함께 다뤄질 예정이다.
헌트의 법률팀은 문제의 문자 메시지를 헌트가 보냈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해당 문자에 대한 별도의 추가 기소는 이뤄지지 않았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따르면, 헌트의 변호인은 스토킹과 협박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헌트는 1974년 3월 23일 뉴질랜드 사우스오클랜드에서 사모아계 대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는 폭력적인 환경에서 보냈고, 두 차례 교도소 생활을 했다. 두 번째 출소 후 오클랜드의 한 나이트클럽 앞에서 벌어진 난투극에서 여러 명을 단번에 쓰러뜨린 것이 격투기 입문의 계기가 됐다. 그 장면을 목격한 트레이너 샘 마스터스가 그를 발굴해 훈련시켰고, 이후 헌트는 시드니로 이주해 알렉스 투이 밑에서 킥복싱을 본격적으로 갈고닦았다. 
2000년 K-1 오세아니아 토너먼트에 처음 출전했을 때 헌트는 철저한 언더독 취급을 받았다. 당시 그는 15승 4패의 아마추어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도소를 드나들던 선수에게 큰 기대를 거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헌트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8강부터 결승까지 세 경기를 모두 KO로 끝내며 오세아니아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듬해인 2001년에는 오세아니아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데 이어 그해 K-1 월드GP 파이널에 진출, 브라질의 킥복싱 강자 프란시스코 필류를 결승에서 꺾으며 K-1 월드그랑프리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가장 권위 있는 스탠딩 격투기 대회에서 세계 정상을 밟은 것이다. 이 시기 그는 세계 최고의 헤비급 킥복서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제롬 르 배너, 레이 세포 등 당대 정상급 선수들과 명승부를 펼쳤다.
킥복싱에서의 명성을 바탕으로 헌트는 2004년 종합격투기 무대인 프라이드FC에 데뷔했다. 프라이드에서는 당시 세계 최강의 스트라이커로 꼽히던 반달레이 실바를 판정으로 꺾었고, 크로아티아의 전설 미르코 크로캅과의 혈전에서도 스플릿 판정 승리를 거뒀다. 이후 드림에서도 활약하다 2010년 UFC에 입성했다. UFC에서는 8년간 18경기를 치러 8승 8패 1무 1무효 경기의 성적을 남겼다. 단순 승패 기록만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주니어 도스 산투스, 스티페 미오치치, 안토니우 실바, 프랭크 미어, 로이 넬슨 등 헤비급 탑 파이터들을 상대로 숱한 명경기를 만들어냈다. 2014년 11월에는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UFC 180에서 파브리시오 베우둠과 UFC 인터림 헤비급 챔피언십(UFC에서 정규 챔피언이 부상 등의 이유로 경기를 치를 수 없을 때 임시로 만드는 타이틀)을 놓고 격돌했다. 1라운드 종료 직전 베우둠에게 서브미션으로 패해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파이터로서 정상에 도전하는 위상을 세계에 다시 한번 증명했다. 
UFC 시절 헌트의 가장 굵직한 일화는 2016년 UFC 200에서 브록 레스너와의 대결이다. 당시 레스너는 WWE 복귀 후 특례로 USADA(미국 반도핑기구)의 정규 도핑 테스트 면제를 받고 출전했다. 레스너는 판정승을 거뒀으나 이후 도핑 검사에서 금지 약물 양성 반응을 보이면서 경기 결과는 무효 처리됐다. 헌트는 이에 강하게 반발했고, 2017년 UFC와 데이나 화이트, 레스너를 상대로 배터리·사기·공모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소송은 법원에서 잇따라 기각됐고, 지난해 제9 순회 항소법원이 항소심 판결도 피고 측 손을 들어주면서 헌트의 법적 싸움은 결국 패소로 마무리됐다.
헌트는 2018년 UFC를 떠난 뒤에도 현역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않았다. 2020년 12월 호주 시드니에서 럭비리그 스타 폴 갤런과 6라운드 복싱 경기를 치렀으나 판정패를 당했다. 이후 2022년 11월 시드니 켄 로즈월 아레나에서 럭비 유니온·리그를 넘나든 스포츠 스타 소니 빌 윌리엄스와 복싱 경기를 펼쳐 승리하며 현역 마지막 경기를 장식했다. 그것이 현재까지 그의 마지막 공식 경기로 남아 있다.
링 안팎을 통틀어 수십 년을 격투기 세계에서 보낸 헌트는 '킹 오브 워크오프'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하다. 자신의 펀치에 상대방이 쓰러지면 심판이 경기를 멈추기 전에 먼저 등을 돌리고 걷는 특유의 세리머니로 전 세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타고난 강펀치와 범접하기 어려운 맷집,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호탕한 태도로 오클랜드의 뒷골목 소년은 세계 격투기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그 이름이 이제 전혀 다른 이유로 다시 세상에 오르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