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가해자 대신 피해자에게 '전학' 권유... 아빠 “이성 놓기 일보직전”
2026-04-2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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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딸이 살아있는 걸 확인하고서야 잠든다는 아빠

새벽 두 시. 아버지가 딸의 방문을 조용히 연다. 불은 꺼져 있다. 몸을 숙여 딸의 숨소리를 확인한다.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서야 자기 방으로 돌아간다. 이 일이 매일 밤 반복된다.
학교폭력과 사이버 성폭력을 당한 고3 여학생이 3월 개학 이후 50일 넘게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여학생 아버지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가 가해자에게 솜방망이 처분을 내리면서 피해자 보호조치는 아예 취하지 않았다고, 가해자가 지금도 같은 학교를 정상 등교하고 있다고 울분을 토한다.
비슷한 외모만 봐도 몸이 굳는 딸
여학생 아버지 A씨가 21일 보배드림에 올린 게시물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해 고2 때 시작됐다. 당시 교제 중이던 남학생은 딸의 머리채를 잡아 끌고 다니는 신체 폭력을 가했고, 딸의 성적 행동에 대한 허위사실을 친구들에게 반복 유포했다고 한다. A씨는 "폭력을 당한 후 딸은 신경정신과, 정신과에 다니면서 약 없이는 잠도 못 자고, 극도의 불안과 우울감으로 몇 달을 보내야 했다"고 했다. 비슷한 외모의 사람이나 음성을 들으면 몸이 굳는 증상이 이어지면서 정상적인 등교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학교 측의 권유로 학폭 신고와 경찰 고소가 동시에 진행됐다. 오랜 기다림 끝에 학폭위가 열렸고 A씨는 딸이 겪은 피해를 상세히 진술했다. "이 정도의 피해면 딸이 보호받겠지 싶었다"고 했다. 결과는 가해 남학생에 대한 등교정지 3일과 사회봉사 수 시간이었다. 딸에 대한 보호조치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분리 조치도, 전학 권고도 없었다. 3월 개학과 함께 딸은 가해자와 다시 같은 학교에 다녀야 하는 상황이 됐고, 지금까지 단 하루도 등교하지 못하고 있다.
이의신청을 제기했다는 A씨는 "뭐만 하면 최소 석 달은 소요된다"며 절차가 너무 느리다고 했다. 상급기관에 민원을 넣어도 결국 담당 장학사에게 다시 돌아오는 구조라고 한다. 현재 딸은 학업중단 숙려제를 활용해 등교를 유예한 채 버티고 있다.
가해 남학생, 오히려 맞학폭 신고
A씨에 따르면 학폭위 처분 이후 가해 남학생은 오히려 딸을 상대로 맞학폭 신고를 제기했다. 동시에 교제 중 얻은 딸의 사적인 사진을 딸의 친구들에게 SNS 다이렉트 메시지로 유포했다. A씨는 즉시 2차 고소를 진행했다.
경찰은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검찰은 사건을 소년법원으로 송치했다. 아버지는 "적어도 사이버 성폭력은 중범죄로 취급해주길 바랐고, 가해자와 격리를 해야 딸이 다시 학교에 복귀할 수 있는 희망이라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법원에서 돌아온 답은 "사건이 많아 1년 내 재판이 열릴지 어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기일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그는 "법이 멀기에 딸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온갖 생각과 잡념으로 밤을 지새우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교육청, 되레 피해자에게 전학 권유
딸은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러야 한다. 하루하루가 중요한 시기지만 딸은 개학 이후 그 시간을 교실 밖에서 보내고 있다. 가해자는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 상황에서 교육청이 아버지에게 내놓은 해법은 딸의 전학이었다. 아버지는 "자퇴나 전학을 강요하며 피해자보고 떠나라 한다"고 했다. A씨는 "고3인데 공정한 학업의 기회도 받지 못하고, 가해자는 아직도 웃으면서 학교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A씨는 학폭위 결정이 피해의 심각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피해를 입어본 적 없는 위원들로서는 피해자 가족이 겪는 트라우마를 알 길이 없을 것"이라며 "그러니 ‘대충 친하게 지내렴’ 식의 판단이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같은 학교에 계속 두는 학폭위 판단에 대해 "그 자체가 범죄"라고 했다.
A씨가 글에서 가장 힘겹게 털어놓은 부분은 따로 있었다. "매일 새벽 딸이 숨은 쉬고 있는지 확인하러 간다"고 했다. 딸의 상태가 그만큼 위태롭다는 뜻이었다. 그는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 상황에 다다르고 있어서 이성을 놓기 일보직전"이라고도 했다.
"피해자 전학 말고는..." 안타까운 반응도
댓글란에서 위로와 함께 실질적인 조언이 이어졌다.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으로 학폭위 처분의 적절성을 다시 다툴 수 있고, 소년부 송치 이후에도 의견서를 통해 재판부에 사안의 심각성을 알려 엄중한 보호처분을 끌어낼 수 있다"는 조언이 달렸다. 두 딸을 가진 아버지라고 밝힌 한 이용자는 학교안전공제중앙회의 피해자 지원 제도와 국민신문고 소극행정 신고를 안내했다.
그런가 하면 "교육당국은 절차 타령하며 시간만 끌 것이고, 결국 피해자가 전학 가는 것 외엔 현실적인 답이 없다"는 안타까운 반응도 적지 않았다. "학폭위는 이런 사건에서 항상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는 댓글에도 공감이 모였다.
A씨는 댓글마다 직접 답글을 달며 "마음은 간절한데 현실이 너무 멀고 힘들다"고, "현실을 사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