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전쟁 벌어질 때... 이 '자격증' 갖고 있으면 여성도 동원

2026-04-2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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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격증 보유자는 전시 차출” 법령이 정한 253개 직종

전쟁은 늘 '가능성'의 언어로만 존재하다가 어느 순간 '현실'의 언어로 바뀔 수 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그랬다. 뉴스 속 이야기로만 여겼던 전쟁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다. 1953년 이후 이어진 정전 상태라는 특수한 구조 속에서, 평시는 일상처럼 흐르지만 유사시를 전제로 한 시스템은 조용히 작동하고 있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사진.

그중 하나가 '사람'을 준비해두는 일이다. 대한민국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인력과 물자를 법으로 관리한다. 단순한 군 병력만이 아니라, 국가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민간 기술 인력까지 포함된다. 평소에는 각자의 직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시민들이지만, 특정 조건이 갖춰지면 '동원 대상'으로 전환될 수 있다. 그 근거가 되는 법이 '비상대비에 관한 법률'이며, 이 법이 정한 인력자원 관리직종은 현재 253개에 이른다. 지게차 운전기능사부터 흉부외과 전문의까지, 업종과 직종을 가리지 않는다.

'비상대비에 관한 법률'이란...

비상대비에 관한 법률 제1조는 그 목적을 이렇게 규정한다. '전시·사변이나 이에 준하는 비상 시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가 차원의 비상대비에 관한 계획의 수립, 인력·물자 등 자원의 관리 및 교육·훈련의 실시 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핵심은 '이에 준하는 비상 시'라는 표현이다. 전면전이 선포되지 않더라도, 정부가 비상사태로 판단하는 순간 이 법은 작동한다. 대규모 테러, 국지적 무력 충돌, 사이버 공격에 의한 기간시설 마비 등도 발동 요건에 해당할 수 있다.

시민이 거리를 지나는 모습. AI 툴로 제작한 사진.
시민이 거리를 지나는 모습. AI 툴로 제작한 사진.

법 제2조는 '인력자원'을 두 가지로 정의한다. 하나는 정부 지정 중점관리업체 종사자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기술자격법 또는 그 밖의 법령에 따른 기술면허·자격 취득자로서 만 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부터 60세가 되는 해의 12월 31일까지인 대한민국 국민이다. 외국 법령에 따른 자격 취득자도 포함된다.

현재 행정안전부 시행규칙 별표에 등재된 인력자원 관리직종은 총 253개다. 기계, 금속, 화공, 전기, 전자, 통신, 조선, 항공, 토목, 건축, 섬유, 정보관리, 해양, 산업디자인, 에너지, 안전관리, 환경, 산업응용, 전문사무, 음·식료품, 의약 등 21개 대분류에 걸쳐 있다. 대한민국 산업 전 분야를 망라하는 구조다.

이 법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69년 박정희 정부 시절이다. 1968년 1·21 사태와 USS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직후 고조된 안보 긴장 속에서 탄생했다.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으며, 가장 최근 개정은 2019년이다. 당시 드론 조종자가 관리직종에 새로 추가됐다. 무인비행기·무인헬리콥터·무인멀티콥터 조종 자격자가 비상 인력 명단에 오른 것이다.

지게차 기사, 내과 전문의 같은 명단에

동원 대상 직종의 폭은 넓다. 그리고 구체적이다.

기계 분야(13개 직종)에서는 굴착기·불도저·로더·롤러·지게차 운전기능사가 포함된다. 피해 현장 복구와 물자 이동에 즉각 투입 가능한 인력이다. 제1종 대형 운전면허와 특수차량 면허(대형·소형 견인차, 구난차) 소지자도 차량기술자로 분류된다. 군수물자 수송과 장비 구난에 민간 운전 인력이 활용될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됐다. 용접기술자, 배관기술자, 판금제관기술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전쟁 피해 시설의 긴급 복구와 야전 장비 수리에 필요한 직종이다. 공조냉동기계기술자의 경우, 병원과 식량 저장 시설, 지하 대피소의 냉난방·환기 유지에 필수 인력으로 분류됐다.

금속 분야(4개 직종)에는 금속재료기사, 열처리기능사, 주조산업기사, 제강기능사가 포함된다. 무기·차량·구조물에 쓰이는 금속 소재를 현장에서 가공·처리할 수 있는 인력이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사진.

화공 분야(7개 직종)에서는 화약류 관련 자격이 두드러진다. 화약류제조기사·산업기사, 화약류관리기술사·기사·산업기사, 화약취급기능사가 포함된다. 위험물산업기사, 생물공학기사도 이 범주에 속한다.

통신 분야(8개 직종)는 현대전의 특성을 반영해 설계됐다. 정보통신기사, 무선설비기사, 방송통신기사, 전파전자통신기사, 통신선로기사, 통신설비기능장이 망라된다. 현대 전쟁에서 통신망 유지는 전선의 화력만큼 중요하다. 민간 통신 인프라와 전문 인력이 국가 비상망의 예비 자산으로 기능하도록 설계된 구조다. 정보관리 분야에서는 정보처리기사, 정보보안기사, 정보관리기술사가 포함된다. 전시 사이버 보안과 정보 시스템 유지에 대비한 인력군이다.

조선 분야(5개 직종)에서는 2~5급 기관사와 항해사, 소형선박조종사가 이름을 올렸다. 해상 수송로 확보, 연안 방어, 피난민 이송 등 다양한 해상 상황에 민간 선박 인력이 활용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항공 분야(3개 직종)는 더 세밀하다. 항공기관기술사, 항공산업기사, 각 분야별 항공정비사 면허 소지자가 포함되며, 2019년 개정 이후 무인비행기·무인헬리콥터·무인멀티콥터 조종자도 추가됐다. 드론이 정찰·수색·구조 현장에서 갖는 비중이 법령 안에 공식 반영된 것이다.

안전관리 분야(3개 직종)에는 소방설비기사(전기·기계 분야), 가스기사·산업기사·기능사, 기계안전기술사가 포함된다. 에너지 분야(3개 직종)에서는 원자력기사·기술사, 에너지관리기사, 방사선관리기술사가 이름을 올렸다. 전시 원전 시설 보호와 방사선 사고 대응에 대비한 인력이다.

환경 분야(3개 직종)에는 수질환경기사, 폐기물처리기사, 대기환경기사가 포함된다. 전쟁 피해로 인한 수질·대기 오염 대응과 대규모 폐기물 처리에 대비한 직종들이다.

통신 네트워크 엔지니어도 차출 대상이다. AI 툴로 만든 사진.
통신 네트워크 엔지니어도 차출 대상이다. AI 툴로 만든 사진.

가장 길고 구체적인 목록은 단연 의약 분야(31개 직종)다. 의사를 필두로 내과·신경과·외과·정형외과·신경외과·흉부외과·성형외과·마취통증의학과·안과·이비인후과·피부과·비뇨의학과·영상의학과·병리과·결핵과·재활의학과·응급의학과까지 18개 전문의 과목이 열거된다. 치과의사, 약사, 영양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1·2급),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치과기공사, 치과위생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까지 더하면 31개다. 전시 부상자 처치와 감염병 대응, 후방 병원 운영에 대비한 촘촘한 설계다.

관광통역안내사·임상심리사 등 눈길

눈길을 끄는 직종도 있다. '전문사무' 항목 아래에는 관광통역안내사(영어)가 포함돼 있다. 외국 군사 인력과의 소통, 국제 구호 활동 지원 등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 임상심리사(1·2급)도 있다. 전시 심리 외상과 민간인 공황, 군인 전투 스트레스 대응을 위한 수요가 법령 안에 반영된 것이다. 기상예보기술사도 목록에 있다. 기상 정보가 군사 작전 환경 예측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항목일 수 있다.

해당 직종 자격·면허 소지자라고 해서 당장 무언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법령은 단계적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중점관리대상인력 지정'이다. 대상자는 시·도지사로부터 중점관리대상인력 지정통지서를 교부받을 수 있다. 이 통지서는 단순한 안내문이 아니다. 법 제11조에 따라 '지정된 사실과 그에 따른 임무를 기재한 고지서'로서, 비상 시 동원 대상임을 공식 통보하는 법적 문서다.

두 번째 단계는 '인력동원훈련 참가'다. 중점관리대상인력 중 훈련 참가 대상으로 선정되면 별도 통지서가 발송되며, 해당 훈련에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법 제14조는 '정부는 전국 또는 지역이나 부문별로 훈련을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세 번째 단계는 비상 상황 발생 시의 실제 '동원'이다. 법이 정한 비상 상황이 선포되면, 정부는 지정된 인력을 소집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공식으로 비상 상황을 선포하고 법에 규정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법의 구조는 국가기술자격이 취업 스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개인이 직업적 목적으로 취득한 자격증이 국가 비상 체계의 일부로 편입된다. 자격을 취득하는 순간,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국가 동원 체계 안에 이름이 오른다.

해당 자격 보유한 여성도 동일하게 적용

이러한 구조는 대한민국만의 것이 아니다. 미국은 국방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을 통해 민간 산업 자원을 비상시에 동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예비군 제도와 민간 전문 인력 징발을 결합한 총력전 체계로 운용하고 있으며, 핀란드와 스위스 등도 각자의 방식으로 민간 기술 인력을 국가 비상 체계에 편입시켜 두고 있다. 한국의 비상대비 인력자원 관리 제도는 이러한 국제적 흐름과 궤를 같이하는 동시에 정전 상태라는 한반도 특유의 지정학적 조건이 반영된 결과다.

환경기사(수질환경기사)와 약사, 의약 분야 내 기술직도 차출된다. AI 툴로 만든 사진.
환경기사(수질환경기사)와 약사, 의약 분야 내 기술직도 차출된다. AI 툴로 만든 사진.

나이 기준은 어떨까. 법 제2조는 '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부터 60세가 되는 해의 12월 31일까지'를 인력자원 범위로 규정한다. 61세가 되는 해부터는 자동으로 대상에서 제외된다. 성별 구분도 없다. 해당 자격을 보유한 여성도 동일하게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 '어떤 기술을 보유하고 있느냐'가 유일한 기준이다.

2019년 개정에서 드론 조종자가 추가됐듯이, 기술 변화는 이 목록을 지속적으로 바꾼다. 인공지능 전문가나 사이버보안 전문가가 향후 명단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대전의 전장이 사이버 공간으로까지 확장되는 추세를 감안하면, 이 법의 적용 범위는 앞으로 더 넓어질 수 있다.


[비상대비 인력자원 관리직종 주요 분야 요약]

▶ 기계 (13개 직종) — 굴착기·지게차·불도저·로더·롤러 운전기능사, 자동차정비기능사·기사, 건설기계정비기사, 용접기능사·기사, 배관기능사, 제1종 대형·특수 운전면허, 공조냉동기계기사 등

▶ 금속 (4개 직종) — 금속재료기사, 열처리기능사, 표면처리기능사, 주조산업기사, 제강기능사 등

▶ 화공·세라믹 (7개 직종) — 화약류제조기사·산업기사, 화약류관리기술사·기사, 화약취급기능사, 위험물산업기사, 생물공학기사 등

▶ 전기·전자 (5개 직종) — 전기기사·기능장, 전기공사기사, 전자기사, 전자기기기능장, 전자계산기 계열 등

▶ 통신·정보 (9개 직종) — 정보통신기사, 무선설비기사, 방송통신기사, 전파전자통신기사, 통신선로기사, 정보처리기사, 정보보안기사 등

▶ 조선·항공 (8개 직종) — 2~5급 항해사·기관사, 소형선박조종사, 항공정비사(각 분야 한정), 드론(무인비행기·헬리콥터·멀티콥터) 조종자 등

▶ 건설·토목 (12개 직종) — 토목기사·기술사, 건축기사, 측량기능사, 콘크리트기능사, 잠수기능사, 건설재료시험기능사 등

▶ 에너지·안전 (6개 직종) — 소방설비기사(전기·기계), 가스기사, 에너지관리기사, 원자력기사, 방사선관리기술사 등

▶ 환경 (3개 직종) — 수질환경기사, 폐기물처리기사, 대기환경기사 등

▶ 의약 (31개 직종) — 의사·치과의사·약사·간호사·간호조무사, 18개 전문의 과목, 응급구조사(1·2급),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영양사, 치과기공사, 치과위생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등

▶ 기타 특이 직종 — 관광통역안내사(영어), 임상심리사(1·2급), 기상예보기술사, 한식조리기능사, 제품디자인기사, 영사기능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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