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할증료 폭탄인데...여름 앞두고 검색량 '129%' 급등한 '여행지' 정체

2026-04-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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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회피 트렌드, 비싼 항공료도 못 막는 쿨케이션 붐

올여름 해외여행 시장에서 뜻밖의 흐름이 포착됐다. 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치솟고, 고환율까지 겹치면서 국제선 유류할증료가 사상 최고 수준으로 뛰었는데도 특정 여행지로 향하는 관심은 오히려 더 빠르게 달아오르고 있다. 비용 부담이 커질수록 수요가 꺾일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여행객들의 시선은 지금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쏠리고 있다.

한국 여행객 쿨케이션 여행지 항공권 검색량 증가율 / 트립닷컴 제공, 뉴스1
한국 여행객 쿨케이션 여행지 항공권 검색량 증가율 / 트립닷컴 제공, 뉴스1

핵심 키워드는 이른바 ‘쿨케이션(Coolcation)’이다. 기후 변화로 폭염이 길어지고 강해지면서, 단순히 휴양을 넘어 시원한 기후 자체를 목적으로 떠나는 여행이 새로운 여름 공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한국 여행객 사이에서 특히 존재감을 키운 곳이 있다. 바로 일본 삿포로다. 올여름 6월부터 8월 기준 한국발 항공권 검색량이 전년 동기 대비 129.32% 급등하며, 비용 부담을 뚫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대표 여행지로 떠올랐다.

유류할증료는 최고치인데…사람들은 왜 더 시원한 곳을 찾기 시작했나

스마트경제 보도에 따르면 글로벌 여행 플랫폼 트립닷컴 그룹은 올해 쿨케이션 관련 검색량이 전년 대비 74% 증가했다고 21일 밝혔다. 특히 여름 성수기인 6월부터 8월 기준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237% 급증하며 수요 확대가 훨씬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여행자 커뮤니티 ‘트립 모먼트’에서도 시원한 여행지, 더위 회피 관련 콘텐츠가 전년 대비 15.4% 늘었고, ‘더위 탈출’, ‘여름 휴양지’, ‘시원한 여행’ 같은 키워드가 빠르게 부상했다. 이제 여름 여행은 단순히 휴가를 떠나는 개념이 아니라, 폭염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피난형 소비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이다.

고유가에 유류할증료 폭탄…사진은 인천국제공항에서 한 시민이 항공편을 보고 있다. 여행·항공업계에 따르면 5월 국제선 유류할증료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항공유 평균값(MOPS)이 갤런당 511.21센트(배럴당 214.71달러)를 기록하며, 최고 단계인 33단계가 확정되면서 여름철 성수기를 앞두고 해외여행 수요 위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 뉴스1
고유가에 유류할증료 폭탄…사진은 인천국제공항에서 한 시민이 항공편을 보고 있다. 여행·항공업계에 따르면 5월 국제선 유류할증료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항공유 평균값(MOPS)이 갤런당 511.21센트(배럴당 214.71달러)를 기록하며, 최고 단계인 33단계가 확정되면서 여름철 성수기를 앞두고 해외여행 수요 위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 뉴스1

지역별로는 유럽과 아시아의 저온 지역 중심으로 수요가 커졌다.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스위스 등 상대적으로 서늘한 유럽 지역 항공권 검색량이 늘었고, 아이슬란드는 검색량이 8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아시아에서는 내몽골, 일본 삿포로, 중국 윈난 등이 주요 목적지로 떠올랐다. 특히 윈난성 쿤밍은 여름 평균기온이 23~25도로 쾌적한 환경을 갖추며 항공권 검색량이 44% 증가했다. 한국 여행객 수요만 따로 봐도 흐름은 더 선명하다. 올여름 한국발 항공권 검색량은 호주 68.39%, 뉴질랜드 44.83%, 일본 삿포로 129.32%, 중국 윈난 159.57% 증가세를 보였다. 결국 지금 여행객들이 움직이는 기준은 가격 그 자체보다 ‘얼마나 덜 덥고, 얼마나 버틸 만한가’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왜 하필 삿포로일까…‘덜 답답한 여름’이 만든 폭발적 반응

폭설 내린 홋카이도 삿포로시 / 교도 연합뉴스
폭설 내린 홋카이도 삿포로시 / 교도 연합뉴스

이 가운데 삿포로가 특히 강하게 떠오른 배경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여름철 기후다. 일본 내에서도 홋카이도는 비교적 온화한 여름으로 잘 알려져 있고, 삿포로는 무더위와 높은 습도에 지친 여행객이 상대적으로 부담을 덜 느끼는 도시로 꼽힌다. 도쿄나 오사카처럼 빽빽한 도심 열기 속을 빠르게 이동하는 여행이 아니라, 넓은 공간 안에서 숨 돌리며 걷고 쉬는 체류형 동선이 가능하다는 점도 강점이다. 여름에 여행객들이 삿포로를 선호하는 건 단순히 “시원해서”만이 아니라, 덜 지치고 덜 답답한 여행 리듬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삿포로의 매력은 도시와 자연, 먹거리가 균형 있게 섞여 있다는 데 있다. 낮에는 오도리공원 같은 도심 녹지축을 따라 산책하고, 전망과 야경을 즐긴 뒤, 저녁에는 스스키노 일대에서 활기찬 거리 분위기와 식도락을 경험하는 식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여기에 근교 온천이나 외곽 자연 풍경까지 연결하면, 일정이 빡빡하지 않아도 만족도가 높은 여행이 완성된다. 특히 삿포로는 여름철 먹거리 만족도가 높다. 무더위에 지친 상태에서 즐기는 삿포로 맥주, 징기스칸, 해산물 덮밥, 계절 채소는 단순한 한 끼를 넘어 여행의 핵심 기억으로 남기 쉽다. 명소 몇 군데를 빠르게 찍고 끝나는 도시가 아니라, 먹고 걷고 쉬는 즐거움이 유독 강한 여행지라는 점이 삿포로 수요를 더 끌어올리고 있다.

삿포로, 구글 지도

폭염은 빨라지고 여름은 길어졌다…‘쿨케이션’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대응이다

무더위 / 뉴스1
무더위 / 뉴스1

이 같은 흐름은 올해 여름 전망과도 맞물린다. 지난 주말 전국을 달군 이례적 고온 현상은 올여름이 평년보다 훨씬 무덥고 습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18일과 19일 전국 대부분 지역 낮 최고기온은 30도 안팎까지 치솟았고, 서울은 29.4도를 기록했다. 1907년 근대적 기상 관측 이래 4월 중순 기준 120년 만의 최고치라는 점에서 이른 더위의 강도가 예사롭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도권뿐 아니라 경기 양주와 동두천 등 일부 지역은 30도를 넘겼고, 파주와 충남 홍성 등에서도 평년을 크게 웃도는 기온이 나타났다.

기상청은 내달부터 6월까지 평균 기온이 예년보다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사실상 6월이 오기 전부터 본격적인 여름 무더위가 시작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여름은 과거보다 빨라지고 길어지는 추세다. 예전에는 6월 중순 무렵 시작되던 여름이 최근에는 5월 말로 앞당겨졌고, 기간도 100일 안팎에서 118일 수준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엘니뇨 발생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기후 변동성은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해양대기청 기후예측센터는 올해 5~7월 사이 엘니뇨 발생 확률이 61%라고 봤고, 연말까지 지속될 가능성도 언급했다. 결국 사람들은 더위가 오기 전에 먼저 반응하고 있다. ‘쿨케이션’ 열풍은 유행이라기보다, 길고 뜨거워진 여름에 대한 선제적 대응에 가깝다.

결국 변수는 가격 아닌 체감 가치…비싸도 가는 곳은 이유가 있다

인천공항 출국장 / 뉴스1
인천공항 출국장 / 뉴스1

물론 여행 비용 부담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항공유 가격 급등으로 국제선 유류할증료는 최근 사상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유류할증료는 항공사가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운임에 추가 부과하는 금액인데, 현재는 2016년 현행 체계 도입 이후 처음으로 최고 단계인 33단계가 적용됐다. 5월 기준 산정단가가 최고 구간에 진입하면서, 대한항공은 다음 달 발권분 기준 편도 최소 7만 5000원에서 최대 56만 4000원까지 유류할증료를 올리기로 했다. 전쟁 영향이 본격화하기 전과 비교하면 많게는 5배 이상 오른 셈이다. 항공권 한 장에 수십만 원이 더 붙는 상황이라면, 통상적인 수요 둔화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도 삿포로 같은 여행지는 검색량이 급등했다. 이 현상은 결국 여행 소비의 기준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여행객들은 단순히 “어디가 싼가”보다 “어디가 덜 덥고, 더 오래 만족스러운가”를 따지고 있다. 삿포로는 바로 그 지점에서 경쟁력을 가진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여름 기후,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동선, 강한 먹거리 매력, 휴식형 일정 구성까지 한 번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류할증료 폭탄에도 검색량이 129% 뛰었다는 숫자는 단순한 일시적 화제가 아니다. 더워진 여름, 길어진 폭염, 높아진 여행 피로도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여행지를 ‘가치 있는 탈출구’로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다. 올여름 해외여행 시장의 승자는 단순히 유명한 곳이 아니라, 더위를 잊게 해주는 곳일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home 김희은 기자 1127khe@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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