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응원곡 김원준 '쇼'…사실 이 노래 작곡가는 엄청 '뜻밖의' 인물

2026-04-2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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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쓴 곡이 무려 전 국민 응원가로

금영 노래방 번호 4737, TJ 노래방 번호 3272. 1996년 이후 수십 년째 노래방 애창곡 목록에서 지워지지 않는 김원준의 '쇼(Show)'다. 운동회 응원가로, 야구장 응원가로, 각종 행사 BGM으로 소비돼 온 이 곡의 작사·작곡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대부분 고개를 갸웃한다.

히트곡 '쇼'의 주인공 가수 김원준. 자료사진. / 뉴스1
히트곡 '쇼'의 주인공 가수 김원준. 자료사진. / 뉴스1

정답은 의외의 인물, 바로 가수 김동률이다.

완벽주의 싱어송라이터라는 수식어로 각인된 김동률이, 사실은 30년 넘게 동료 가수들에게 조용히 명곡을 건네온 숨은 히트곡 제조기였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타 아티스트에게 제공한 곡들을 되짚으면, 한국 대중음악사의 주요 장면마다 그의 이름이 작곡·편곡 크레딧에 새겨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교 시절 써둔 곡이 '전 국민 응원가'로

'쇼'는 1996년 김원준의 5집 앨범 타이틀곡으로 발표됐다. 작사·작곡은 김동률, 편곡은 김동률과 김영석이 공동으로 맡았다. 세션 연주는 N.EX.T가, 코러스는 조규찬이 참여한 당대 최고 라인업이었다.

탄생 배경은 김원준의 직접 증언으로 확인된다. 과거 방송에서 김원준은 "김동률 씨가 저를 위해 선물처럼 써 주신 곡"이라며 "어느 모임에서 김동률 씨가 '형을 위해 제가 고교 시절에 써둔 곡이 있는데 들려드려도 되겠느냐'고 말하며 피아노를 치면서 '쇼'를 들려줬다"고 회상했다. 대학 시절이 아닌 고등학교 때 이미 완성된 곡이었다. 작곡가 김형석은 이 곡을 듣고 "무조건 이 노래가 1번이다"라고 단언했다.

김동률 특유의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 대신 경쾌한 브라스 사운드로 무장한 이 곡은 발표 직후 각종 응원가로 채택됐고, 현재는 삼성 라이온즈 외야수 최형우의 야구장 응원가로도 개사돼 사용된다. 뒤늦게 작곡가가 김동률이라는 사실을 접한 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그 곡이 김동률이었냐"는 반응이 절로 나온다.

가수 김동률. / 뮤직팜 제공
가수 김동률. / 뮤직팜 제공

1993년 대학가요제, 이미 고교 때 쓴 곡으로 대상

'쇼'만이 아니다. 고교 시절 완성된 곡이 빛을 발한 사례는 그 이전에도 있었다. 김동률의 출발점은 1993년 MBC 대학가요제다. 서동욱과 함께 결성한 듀오 '전람회'로 무대에 올라 대상과 특별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는데, 당시 대상곡 '꿈속에서' 역시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완성해 둔 곡으로 알려지며 음악계에 충격을 줬다.

전람회 시절 그의 음악은 당대 가요 트렌드와 분명히 달랐다. 1990년대 초반을 지배하던 화려한 신시사이저 사운드 대신 클래식한 피아노와 스트링 중심의 편곡을 고수했다. 전람회의 대표곡 '기억의 습작'은 한국 팝 발라드의 문법을 한 단계 끌어올린 곡으로 평가받으며, 2012년 개봉한 영화 '건축학개론'의 삽입곡으로 재조명되면서 발표 약 20년이 지난 시점에도 신보처럼 소비됐다.

이적과의 카니발, 장르 실험의 시기

1997년에는 가수 이적과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을 결성했다. 서정성이 짙은 김동률과 파격적인 감수성의 이적이 만난 이 조합에서 '거위의 꿈'과 '그땐 그랬지'가 탄생했다. 브라스 섹션을 전면에 내세운 펑키한 사운드와 대중적인 멜로디를 실험하며 전람회 시절의 클래식 발라드 문법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난 시기였다. '거위의 꿈'은 이후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과 학교 행사에서 수년간 반복 소환되며 특정 세대의 집단 기억에 각인됐다.

뮤지션 김동률. / 뮤직팜 제공
뮤지션 김동률. / 뮤직팜 제공

휘문고 선후배가 만든 90년대 발라드의 교과서

이승환과 김동률은 휘문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이승환이 선배다. 이 관계에서 탄생한 곡이 1995년작 '천일동안'과 '다만'이다.

'천일동안'은 작곡·편곡은 김동률이, 작사는 이승환이 담당했다. 웅장한 스트링 사운드가 이승환의 보컬과 맞물려 이승환의 최고 히트곡 중 하나로 꼽힌다. '다만'은 작사와 작곡 모두 김동률이 맡았다. 타인의 목소리에 맞게 가사까지 직접 쓴다는 것은 상대 아티스트의 정서와 표현 방식을 면밀히 파악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1994년 발표된 장혜진의 '1994년 어느 늦은 밤' 역시 김동률의 작품이다. 이 곡을 완성했을 무렵 그는 20대 초반, 정식 데뷔 전이거나 갓 데뷔한 시점이었다. 장혜진의 애절한 보컬 특성에 최적화된 구조를 그 나이에 이미 설계했다는 점이 이 곡의 핵심이다.

버클리 음악대학, 영화음악 전공이 바꾼 편곡의 문법

솔로 1집 'The Shadow of Forgetfulness'(1998) 발표 이후 김동률은 미국 버클리 음악대학(Berklee College of Music)으로 유학을 떠났다. 전공은 영화음악·작곡이었다. 이미 국내에서 이름이 알려진 상황에서 내린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영화음악은 대사 없이 음악만으로 감정의 흐름을 설계해야 하는 장르다. 그 훈련이 팝 발라드 편곡에 적용되면서, 단순히 노래를 받쳐주는 반주 수준이 아닌 서사적 구조를 가진 오케스트레이션이 그의 전매특허로 자리잡았다. 재즈 화성학을 기반으로 한 코드 진행, 대중음악에서 흔히 쓰지 않는 텐션 코드와 전조 방식을 활용하면서도 귀에 편안하게 들어오는 멜로디를 도출해내는 것이 이 시기에 체계화됐다.

김동률 일상사진. / 김동률 페이스북
김동률 일상사진. / 김동률 페이스북

편곡 단계에서 가상 악기를 지양하고 실제 대규모 오케스트라 세션을 고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세계 정상급 연주 집단과의 협업이 이를 뒷받침한다. 실제 악기 연주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뉘앙스와 공기감을 MIDI로 대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원칙이다. 이 때문에 그의 음반은 오디오 애호가들 사이에서 음질 기준으로도 필청 앨범으로 분류된다.

박효신·이소라·보아에게도 건넨 맞춤 설계

후배 가수들에 대한 협업도 같은 방식으로 이뤄졌다. 2001년 발표된 박효신의 '동경'은 김동률이 작사·작곡을 모두 담당했다. 짝사랑의 감정을 절제된 방식으로 풀어낸 이 곡은 박효신의 초기 음악적 방향성을 정립하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했고, 지금도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거론된다.

2016년 이소라의 '사랑이 아닌 말하지 말아요'는 이소라의 깊고 쓸쓸한 음색 위에 김동률 특유의 서정적 멜로디를 얹었다. 두 아티스트 모두 감성적 깊이로 정평이 난 뮤지션이라는 점에서 조합 자체가 이미 일종의 보증이었다.

보아의 경우는 더 이례적이다. 2010년 발표된 6집 수록곡 '옆 사람'은 작사·작곡·편곡 모두 김동률이 담당했다. 댄스 퍼포먼스 중심의 이미지를 가진 보아에게 서정적 발라드를 건넨 것 자체가 특이한 선택이었고, 보아의 섬세한 감성을 끌어낸 편곡이 이 곡의 핵심이라는 평가가 팬들 사이에서 꾸준히 나온다.

약 10년 전 김동률 사진. / 김동률 페이스북
약 10년 전 김동률 사진. / 김동률 페이스북

존박 초기 앨범 전반, 알렉스 솔로까지

존박의 국내 활동 초기 앨범에서도 김동률의 비중은 컸다. '이게 아닌데', '그 노래', '왜 그럴까' 등 주요 트랙 다수가 그의 손을 거쳤다. 단일 곡 제공이 아니라 앨범 전반의 색깔 형성에 관여했다는 점에서 음악적 방향성을 함께 설계한 것에 가깝다. 클래지콰이 출신 알렉스의 솔로 곡 '같은 꿈' 역시 김동률 색채가 짙은 발라드로 팬층 내에서 꾸준히 재발견되는 트랙이다.

바리톤 보컬, '첼로'에 비유되는 목소리

김동률 보컬은 한국 가요계에서 드문 바리톤 계열이다. 단순히 낮은 음역대를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흉성을 기반으로 한 깊은 울림과 비성을 혼합한 고음 처리가 공존한다. 악기에 비유할 때 첼로가 자주 언급되는 이유다. 화려한 고음보다 중저음 대역의 밀도와 울림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이고, 기교보다 가사의 의미와 호흡을 중심에 두는 창법이 '이야기하듯 노래한다'는 표현으로 이어진다.

작사·작곡·편곡·코러스·프로듀싱까지 직접 수행하는 구조는 앨범 발표 간격이 길어지는 직접적인 이유다. 이 과정을 외부에 위임하지 않기 때문에 한 장의 앨범을 완성하는 데 수년이 소요된다. 믹싱과 마스터링 단계에서도 미세한 소리 하나를 수정하기 위해 작업 전체를 재검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알려져 있다.

김동률 '동행' 앨범커버. / 김동률 페이스북
김동률 '동행' 앨범커버. / 김동률 페이스북

솔로 디스코그래피와 장르 도전

솔로 데뷔 이후 발표된 앨범은 매번 음원 차트와 음반 판매 양쪽에서 반응을 만들어냈다. 1집 수록곡 '취중진담'과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로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존재감을 확인시킨 이후, '아이처럼', '그게 나야', '답장', '여름의 끝자락' 등이 발표 직후마다 차트 상단에 진입했다.

2018년 발표된 '황금가면'은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이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김동률 특유의 서정적 발라드 문법과는 거리가 있는 파격적인 장르 도전으로 팬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30년 가까이 활동한 아티스트가 기존 자신의 문법을 스스로 깨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TV 출연을 거의 하지 않는 행보에도 콘서트 티켓 파워가 업계 최상위권에 속한다는 사실은, 미디어 노출이 아닌 음악 자체가 팬을 유지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의미다. 이런 방식으로 30년 이상 상업적 존재감을 유지한 사례는 가요계에서 극히 드물다. 박효신, 성시경, 존박 등 수많은 후배 가수들이 그의 곡을 리메이크하거나 그를 롤모델로 언급하는 것은, 그가 정립한 한국적 팝-클래식 발라드의 문법이 후세대 뮤지션들에게도 유효한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 Again 가요톱10 : KBS KPOP Classic
home 권미정 기자 undecided@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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