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0%대였는데… 2026년 가장 추천하고 싶은 한국 드라마 1위
2026-04-2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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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쉬어가도 돼”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를 꼭 봐야 하는 이유
언젠가 한 번은 꼭 다뤄보고 싶은 드라마가 있었다.
요즘은 드라마를 켜는 게 쉬는 게 아니라 또 다른 피로가 됐다. 화면 속에서는 매 회마다 누군가 배신당하고, 누군가 복수를 다짐하고, 누군가 죽거나 죽일 듯이 으르렁댄다. 볼 거리는 넘쳐나는데 보고 나서 편안한 한국 드라마는 좀처럼 없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마주친 드라마 제목 하나가 머릿속에 박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줄거리를 읽기도 전에 이미 반은 설득당한 기분이었다.

선뜻 재생 버튼을 누르기까지 망설임이 없었던 건 아니다. 설현은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녔고, 작품마다 연기력에 대한 말이 나왔다. 임시완도 충분히 검증된 배우지만 이 조합이 어떤 시너지를 낼지는 미지수였다. 그럼에도 드라마 소개글 한 줄이 발목을 잡았다. '인생 파업을 선언한 자발적 백수 여름과 삶이 물음표인 도서관 사서 대범, 일상에 지친 두 청춘의 쉼표 찾기 프로젝트.' 세게 치고 들어오는 드라마가 아니라 조용히 옆에 앉아주는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보였고, 그걸로 충분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는 2022년 11월 ENA에서 방영된 12부작 드라마로 주영현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주인공 여름(설현)은 서울의 한 출판사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다. 특별할 것 없는 삶이지만 늘 손해 보는 쪽이다. 참고 맞춰주는 게 몸에 배다 보니 직장에서도 관계에서도 소모되는 쪽은 언제나 여름이다. 그러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의지하던 엄마마저 갑작스럽게 잃는다. 버텨오던 일상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서울 반대편으로
그날도 출근길이었다. 플랫폼을 빠져나가는 지하철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역사 밖으로 벚꽃이 피어있었다. 여름은 반대 방향 열차에 올라탔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차 안이 비어갔고, 창밖이 조용해졌다. 드라마는 그 장면을 두고 "같은 세계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산하고 조용하고 평화로웠다"고 표현한다. 그 짧은 장면 하나가 이 드라마가 하려는 말을 압축하고 있었다.


여름은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배낭 하나만 챙겨 서울을 떠난다. 가장 필요한 것만 골라 담았다. 그러다 도착한 곳은 해안선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한적한 마을이었다. 안곡을 기웃거리던 여름의 발길을 붙잡은 건 작은 도서관이었다. 하루 종일 공짜로 책을 볼 수 있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서 살아보자 싶었다. 단돈 5만원에 오래 방치된 당구장 폐건물을 얻어 짐을 풀었고, 생전 처음으로 하루를 자기 뜻대로 쓰기 시작한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걷고 싶을 때 걷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들이었다.


안곡에서의 시간이 처음부터 편하지는 않았다. 외지에서 온 여름을 마을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텃세와 시선 속에서 여름은 혼자 버텨야 했다. 그 안에서 여름 곁에 먼저 다가온 건 안곡 도서관에서 일하는 대범(임시완)이었다. 말수도 적고 표정도 잘 내비치지 않지만 어딘가 오래 눌러온 것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름이 흔들릴 때 조용히 옆에 있어주는 존재였다. 동네 고등학생 봄(신은수)도 여름이 마을에 스며드는 데 한몫했다. 처음엔 서로를 밀어내듯 대하지만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관계가 드라마 안에서 제법 따뜻하게 그려진다.
시청률 0%가 말해주지 못한 것
드라마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결이 다르다. 잔잔하게 쌓아온 일상의 온도가 후반부에서 마을에 얽힌 사건으로 급격히 바뀐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전환이지만 그럼에도 드라마가 끝까지 놓지 않는 것, 지쳐있는 사람 곁에 조용히 앉아있겠다는 태도만큼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됐다.

그 태도를 가장 잘 살린 건 배우들이었다. 설현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이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설현이라는 배우에 대한 인상은 연기력 논란이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여름이라는 인물 안에서 설현은 달랐다. 오버하지 않고, 힘주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캐릭터가 배우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경우다. 임시완도 대범이라는 인물의 과묵함과 온기를 억지 없이 표현했고, 두 사람의 호흡이 드라마를 끝까지 지탱했다.
방영 당시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처참했다. 첫 회 0.633%로 시작해 끝내 1%대 초반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엔 존재 자체를 몰랐을 만큼 조용히 왔다 조용히 사라졌다. 그런데 넷플릭스를 통해 'Summer Strike'라는 제목으로 해외에 소개된 뒤 분위기가 달라졌다.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콘텐츠들 사이에서 이 드라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찾는 사람이 늘었다. 지금도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있는 이유다.
여름은 역사 밖 벚꽃을 보고 반대 방향 지하철에 올라탔다. 평생 유지했던 문법을 스스로 깼다. 바쁘고 지친 일상 속에서 잠깐이라도 숨을 고르고 싶다면, 이 드라마가 그 여유를 대신 살아준다. 우리도 우리만의 안곡을 찾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