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구하려 운동한다" 여경에 대한 편견 스스로 깨부순 40대 경찰
2026-04-2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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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대원에서 피트니스 모델까지, 여경의 편견을 깨다
아동학대 피해자를 돕는 '몸짱 경찰'의 이중 도전기
경찰다운 경찰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한 여성 경찰이 있다.
권혜림 인천 해양경찰서 경비구조과 경위(43)는 최근 화제가 된 ‘몸짱 경찰 달력’ 제작에 참여했다. ‘몸짱 경찰 달력’은 현직 경찰관들이 바쁜 업무 중에도 틈틈이 갈고닦은 신체를 모델로 삼아 제작하는 기부용 달력이다. 판매 수익금 전액은 아동학대 피해 아동들을 위한 지원금으로 쓰인다. 올해는 권 경위를 포함한 전국 63명의 경찰관이 뜻을 모아 약 3000만 원의 성금을 기부하며 따뜻한 온기를 전했다.
해당 달력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보디빌딩 협회에서 주최하는 ‘미스터폴리스코리아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야 한다. 권 경위는 2024년과 2025년 이 대회에 출전해 여자 피트니스 모델 부문에서 연속 2위를 차지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2011년 인천구조대에서 첫발을 뗀 그는 벌써 15년 차 베테랑 해양 경찰이다.

권 경위가 경찰의 길을 걷게 된 배경에는 가슴 아픈 가족사가 있다. 학창 시절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뇌경색으로 쓰러졌으나, 적절한 응급 처치 시기를 놓쳐 결국 반신마비 상태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사람을 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간절함은 그를 응급구조학 전공으로 이끌었고, 오늘날 거친 바다 현장을 누비는 해경 구조대원을 만들었다. 그는 지금도 현장에서 만나는 구조 대상자들을 자신의 가족이라 여기며 일한다.
현장에서 최상의 구조 능력을 유지하고자 시작한 ‘몸 관리’는 이제 그를 상징하는 수식어가 됐다.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진한 권 경위는 2024년 해양경찰청 주관 ‘바다 사나이 선발대회’에 유일한 여성 경찰관으로 참가해 당당히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권 경위는 “달력을 본 사람들이 감탄하며 짓는 웃음이 좋다”며 “나의 노력이 아동학대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작은 희망이 될 수 있어 기쁘다”고 덧붙였다.
권 경위의 활약은 대중적 찬사를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여경 혐오’와 ‘편견’이라는 해묵은 과제를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여성 경찰관은 약 15% 내외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번지는 ‘치안 조력자’ 혹은 ‘여경 무용론’은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여경들의 사기를 꺾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러한 편견의 핵심은 육체적 능력에 대한 불신이다. 강력 사건 현장에서 범인을 제압하거나 위험에 처한 시민을 구조할 때 여경이 남경에 비해 신체적 한계가 뚜렷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과거 일부 현장에서 여경이 뒤로 물러나 있는 듯한 모습이 담긴 영상이 악의적으로 편집되어 유포되면서, 여경 전체를 비하하는 ‘오또카지(어떡하지의 희화화)’라는 멸칭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낙인은 권 경위처럼 현장 대응력을 갖춘 베테랑 여경조차도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만 하는 피로감을 유발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경의 역할을 단순히 ‘근력’ 하나로만 평가하는 것은 현대 경찰 업무의 복잡성을 간과한 처사라고 지적한다. 성폭력 및 가정폭력 피해자 상담, 아동 관련 수사, 세밀한 현장 감식 등 여경만이 가진 섬세함과 소통 능력이 필수적인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력적 열세를 근거로 여경 선발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여론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여경 무용론과 체력 검정 기준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지속되자, 경찰청은 2023년부터 순경 채용 체력 검정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가장 큰 변화는 남녀 간에 차등을 두었던 종목별 등급 기준을 폐지하고, 남녀 모두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순환식 체력 검정’을 도입한 것이다.

기존의 체력 검사가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등 종목별로 기록을 측정했다면, 새로운 순환식 검사는 실제 경찰 업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약 4.2kg 무게의 조끼를 착용하고 250m 코스를 돌며 장애물을 넘고, 인명 구조를 가정한 72kg 인형 끌기, 범인 제압을 가정한 밀기 및 당기기, 트리거 당기기 등을 연속해서 수행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정해진 시간 안에 통과해야만 합격할 수 있다.
특히 가장 논란이 되었던 ‘무릎 대고 팔굽혀펴기’ 방식은 전면 폐지되었으며, 이제 여성 수험생도 남성과 동일하게 정자세로 근력을 증명해야 한다. 이는 여경에 대한 신체적 능력 불신을 잠재우고, 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강인한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이러한 변화는 여경 지망생들에게는 더 높은 진입 장벽이 될 수 있지만, 합격한 여경들에게는 ‘실력을 갖춘 경찰관’이라는 당당한 지위를 부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권 경위처럼 현장에서 실력으로 편견을 부수는 사례가 늘어날수록, 여경을 향한 차가운 시선도 조금씩 변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해양 경찰 구조대에서 묵묵히 구조 임무를 수행하고, 보디빌딩 대회를 통해 자신의 신체적 강인함을 증명하는 권 경위의 행보는 여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