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탐구 집’ 연예인·정치인 살던 1세대 주상복합 아파트의 놀라운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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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집에서 발견한 새로운 삶의 방식
낡은 공간을 감각적으로 되살린 부부들
서울 도심 한복판, 세운상가 위에 자리 잡은 59년 된 아파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때 연예인과 정치인들이 거주하던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였던 이 공간은 이제 오래된 건축의 가치를 새롭게 해석한 집으로 되살아났다. EBS1 ‘건축탐구 집’은 12일 방송에서 대한민국 1세대 주상복합 아파트와 1980년대 빌라를 감각적으로 재탄생시킨 두 부부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서울 중구 을지로, 이른바 ‘힙지로’로 불리는 골목 한가운데에는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세운상가군의 일곱 번째 건축물 위에 자리한 주상복합 아파트가 있다. 1967년 준공된 이 아파트는 당시만 해도 서울 도심의 상징 같은 공간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낡고 오래된 건물이 됐지만, 빈티지 가구를 수집하며 살아온 부부 권용식 씨와 변재희 씨에게는 오히려 더 특별한 공간으로 다가왔다.
아파트보다 한 해 늦게 태어난 재희 씨는 인테리어 전문가로 활동했고, 남편 용식 씨는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부부에게 오래된 집을 고치는 일은 단순한 리모델링이 아니라 숨겨진 시간을 발굴하는 작업에 가까웠다. 실제로 천장을 뜯어내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공간도 발견됐다. 막혀 있던 천장 위로 약 1m 높이의 숨은 공간이 나타난 것이다. 부부는 7층 전체의 물을 빼야 하는 대공사를 감수하면서까지 스프링클러 관을 위로 올렸고, 덕분에 답답했던 공간은 훨씬 높은 천장고를 갖게 됐다.

이후 부부는 높아진 공간을 활용해 철 구조물로 만든 복층 침대를 설치했다. 철제 수납장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독특한 구조의 침대는 작은 다락 같은 분위기를 완성했다. 청록색으로 통일한 벽면과 테라코타 타일 바닥은 공간에 따뜻한 빈티지 감성을 더했고, 한스 웨그너와 잉그베 엑스트롬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가구가 곳곳을 채우며 집 전체를 하나의 작은 전시 공간처럼 바꿔놓았다.
약 10평 규모의 공간이 실제보다 훨씬 넓어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철제 미닫이문과 회전형 벽 구조를 활용해 공간을 유연하게 나눴고, 작은 집 안에서도 침실과 생활 공간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부부는 이렇게 완성한 집에서 예술가들과 모임을 열고 다양한 국적의 지인들을 초대하며 자신들만의 살롱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오래된 아파트를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 대신, 시간이 쌓인 공간을 다시 살려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셈이다.

방송에서는 서울 서대문구의 40년 된 빌라를 새롭게 고쳐 살아가는 젊은 건축가 부부의 이야기도 공개된다. 같은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서준혁 씨와 최세진 씨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집을 찾았다. 대학가 기찻길 옆 원룸 생활부터 획일적인 구조의 아파트까지 경험한 뒤, 자신들의 방식대로 고칠 수 있는 구축 빌라를 선택한 것이다.
부부가 5년 전 약 1억5000만원에 매입한 이 빌라는 외부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꼭대기 층 집이다. 오래된 경사지붕 구조를 본 순간, 부부는 천장 위에 숨은 공간이 있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실제로 쇠지렛대로 천장을 뜯어내자 비어 있던 공간이 드러났고, 기존 2.2m였던 천장고는 무려 3.8m까지 높아졌다.
높아진 천장고를 살리기 위한 고민도 곳곳에 담겼다. 갓 없는 펜던트 조명으로 개방감을 극대화했고, 부엌의 햇빛이 거실까지 자연스럽게 들어오도록 장지문을 설치했다. 바닥은 전통 한옥의 우물마루 방식으로 시공해 시각적으로 더 넓어 보이는 효과를 냈다. 여기에 베란다 천장을 유리로 마감해 선룸처럼 활용할 수 있는 공간까지 만들었다.

집 안에는 눈에 띄지 않는 숨은 수납공간도 곳곳에 배치됐다. 과거 특정 용도로 쓰이던 공간을 개조해 수납장으로 활용했고, 1980년대 빌라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내민창 역시 그대로 살려 옛 건물의 분위기를 유지했다. 부부는 집을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바라봤기에 오래된 빌라를 선택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번 방송은 오래된 건축물이 가진 가능성과 함께, ‘새 집’이 아니라 ‘좋은 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공간의 가치, 그리고 오래된 집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완성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빠르게 철거와 재건축이 반복되는 도시 풍경 속에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EBS1 ‘건축탐구 집’은 12일 밤 9시 55분 방송된다.
※ 해당 글은 아무 대가 없이 작성됐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