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범죄 아니었다…23세 장윤기가 30시간 헤매다 여고생 살해한 이유, 분노가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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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 치밀한 계획 아래 분노 범죄 저질러

광주 도심에서 귀가하던 여고생을 흉기로 살해한 장윤기(23)의 범행이 충동적 우발 범죄가 아닌, 치밀한 계획 아래 이뤄진 분노 범죄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수사 결과 장윤기는 애초 자신의 교제 요구를 거절한 외국인 여성을 살해할 목적으로 흉기를 준비했고, 그 여성을 찾지 못하자 분노의 방향을 일면식도 없는 여고생에게 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 도심에서 일면식도 없는 10대 여고생을 살해한 23세 장윤기 / 뉴스1
광주 도심에서 일면식도 없는 10대 여고생을 살해한 23세 장윤기 / 뉴스1

광주 광산경찰서는 14일 살인·살인미수·살인예비 혐의로 구속된 장윤기를 검찰에 송치하며 수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흉기 구입하고 30시간 배회…분노 임계점에서 범행

경찰에 따르면 장윤기는 지난 3일 새벽, 아르바이트 동료였던 베트남 국적 여성 A씨의 주거지를 찾아가 협박성 행동을 벌였다. 이날 오후 5시 21분께에는 인근 생활용품 판매점에서 흉기 2점과 장갑을 직접 구매한 뒤 A씨의 자택과 직장 주변을 반복적으로 맴돌았다.

A씨는 장윤기의 접근을 목격하고 경찰에 스토킹 신고를 했다. 출동한 경찰은 신변 보호 조치를 취하고 장윤기에게 스토킹 범죄 경고 문자를 발송했지만, A씨가 타지역 이주를 선택하면서 정식 사건 접수는 이뤄지지 않은 채 사건이 마무리됐다. 경찰은 장윤기가 교제 요구를 거절한 A씨가 자신을 신고하자 살해를 결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장윤기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약 30시간 동안 A씨를 찾아 거리를 헤맸다. 이 과정에서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기존 휴대전화를 버리고 과거 사용하던 공기계로 교체했으며, 경찰 추적 방법을 검색한 기록도 남긴 것으로 드러났다. A씨를 결국 찾지 못한 장윤기의 분노는 극한으로 치달았고, 범행 대상은 일면식도 없는 무고한 여고생으로 바뀌었다.

14일 신상이 공개된 광주 여고생 살해 피의자 23세 장윤기 / 뉴스1
14일 신상이 공개된 광주 여고생 살해 피의자 23세 장윤기 / 뉴스1

1㎞ 추적에 CCTV 사각지대 매복까지…전형적 계획 범죄

지난 5일 0시 11분께, 장윤기는 광주 광산구 월계동 남부대학교 인근 보행로에서 혼자 귀가하던 고등학교 2학년 B양(16)을 발견했다. 경찰 조사 결과 장윤기는 약 1㎞ 떨어진 지점에서 B양을 처음 목격한 뒤 차량을 이동시키며 약 15분간 동선을 추적했다. 이후 CCTV가 설치되지 않은 유동 인구가 드문 인도를 골라 미리 대기했다가 B양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범행 직후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온 고등학생 C군(17)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범행을 마친 장윤기는 차량을 유기하고, 흉기를 인근 배수로에 버렸다. 혈흔이 묻은 옷을 세탁한 뒤 미리 파악해 둔 빈 원룸에 숨어 도주하는 등 증거 인멸 행위도 체계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여부를 두고도 경찰이 진단 검사를 실시했으나, 결과는 해당 없음으로 나왔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대상과 장소를 사전에 선택했고 범행 전 준비행위와 범행 후 은폐 행위까지 확인됐다"며 "특별한 이유 없이 발생한 전형적인 이상동기 범죄로 보기는 어렵고 계획성과 목적성이 개입된 일반 강력범죄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지난 5일 광주 도심에서 여고생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장윤기(23) / 뉴스1
지난 5일 광주 도심에서 여고생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장윤기(23) / 뉴스1

범행 동기 묻자 '죄송합니다'라는 말만…얼굴은 당당하게 공개

14일 오전 7시 신상정보가 공식 공개된 장윤기는 같은 날 오전 7시 45분께 광주 서부경찰서 유치장에서 검찰 송치를 위해 포토라인에 섰다. 취재진이 심정을 묻자 "죄송합니다"라고 짧게 말했지만, 범행 동기를 묻는 질문에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 당시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감췄던 것과 달리, 이날은 고개를 숙이거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경찰서 정문에서 호송차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고개를 꼿꼿이 든 채 포토라인 밖에 몰려든 취재진을 10초가량 응시했다.

그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사는 것이 재미가 없어 자살을 고민하던 중 범행을 결심했다. 누군가 데리고 가려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으며, 줄곧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하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번 살인·살인미수·살인예비 혐의 외에도 A씨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처벌법 위반 및 스토킹 혐의에 대해 추가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유튜브, MBCNEWS

"국가 시스템 실패"…여성단체들 구조적 문제 지적

경찰이 이번 사건을 '분노 범죄'로 규정한 반면, 여성단체들은 명백한 '여성혐오 범죄'라고 규정하며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광주여성의전화는 지난 12일 입장문을 통해 "이 사건은 개인의 돌발적 폭력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드러난 위험 신호를 제때 관리하지 못한 국가 시스템의 실패"라며 "현재 대응 체계가 단순 신고 접수와 사후 보호 중심에 머물러 있어 예방적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광주여성민우회도 지난 8일 입장문에서 "여성 대상 폭력이 발생할 때마다 사건이 '개인의 일탈', '충동적 범행', '묻지마 범죄'라는 이름 아래 구조적 맥락이 지워지는 현실을 반복적으로 목격해왔다"며 "여성 대상 폭력은 결코 우연히 발생하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통제와 대상화, 무시와 멸시가 용인되는 사회문화적 환경, 그리고 구조적 성차별과 젠더폭력이 그 배경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무엇보다 스토킹 신고 이력이 있었음에도 위험 신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피해자가 느끼는 공포와 위협은 오랫동안 과소평가돼 왔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대응은 수많은 여성폭력 사건에서 반복적으로 비극적 결과를 낳았다"고 강조했다.

어린이날 광주 도심에서 일면식 없는 여고생을 살해해 살인·살인미수 등의 혐의를 받는 장윤기(23) / 뉴스1
어린이날 광주 도심에서 일면식 없는 여고생을 살해해 살인·살인미수 등의 혐의를 받는 장윤기(23) / 뉴스1

강남역 사건 10년…여성 피해자 비율 여전히 80%대

이번 사건은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또다시 불거졌다. 최근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강남역 사건 이후 살인·강도·성폭력·방화 등 강력범죄 피해자 10명 중 8명은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강력범죄 피해자 중 여성 비율은 2016년 83.6%를 기록한 이후 80% 안팎을 유지해왔으며, 2022~2023년에는 70%대로 소폭 낮아졌다가 2024년에는 다시 80.3%로 올라섰다.

광주여성민우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성과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에 대한 예방·보호 체계를 전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며 "반복되는 여성 대상 폭력 사건을 단순한 개인의 일탈로 축소하지 말고, 여성과 사회적 약자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와 수사기관, 사회 전반의 책임 있는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home 윤희정 기자 hjyun@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