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개 점포의 세월…이우람 작가의 렌즈로 기록한 제천의 오늘과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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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상인의 얼굴에 담긴 삶의 무게, 미술관에서 만나다
22개 점포 28명의 서사, 예술적 기록으로 재탄생하다

제천문화재단이 오는 6월 14일까지 제천중앙시장 내 제천 작은 미술관 175에서 2026년 첫 번째 기획 전시인 ‘시장-사람’을 개최하며 지역 공동체의 서사를 예술적 시각으로 재구성한다. 사진작가 이우람의 시선으로 포착한 이번 전시는 단순히 시장의 풍경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일상적 공간이 미술관이라는 장치를 통과할 때 발생하는 시각적 변화와 인간 존재의 무게감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시장-사람 포스터 / 제천시
시장-사람 포스터 / 제천시

제천 작은 미술관 175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작은 미술관 조성 및 운영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25년 제천중앙시장 내 유휴 공간 두 곳을 개조해 탄생한 문화예술 거점이다. 조성 첫해에는 시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가진 특이성과 건축적 형태에 집중한 전시를 주로 선보였다면 사업 2차년도에 접어든 올해는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과 그들이 만들어낸 ‘서사’에 무게중심을 둔다. 시장이라는 장소성이 지닌 사회적 관계망을 예술적 기록으로 확장하려는 시도가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인 이우람(Rama Lee) 작가는 그동안 해외를 무대로 활동하며 인물과 빛의 관계를 탐구해 온 사진가로 이번이 국내에서의 첫 번째 개인전이다. 작가는 제천중앙시장에서 수십 년간 생업을 이어온 22개 점포를 방문해 28명의 상인을 렌즈에 담았다. 전시된 33점의 사진 작품은 인위적인 연출을 배제한 채 시장 특유의 조명과 인물의 표정이 어우러지는 찰나를 섬세하게 포착했다. 거친 손마디와 깊게 팬 주름은 시장이라는 삶의 터전이 빚어낸 훈장이며 작가는 이를 경외 어린 시선으로 기록했다.

작가는 시장과 미술관이라는 두 공간이 지닌 ‘시선의 문법’ 차이에 주목한다. 시장은 상인과 손님이 물건을 매개로 즉각적이고 실용적인 관계를 맺으며 시선을 교차하는 역동적인 공간이다. 이와 달리 미술관은 관람자가 작품과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사유와 감상에 몰입하는 정적인 공간이다. 이번 전시는 시장 상인이라는 익숙한 이웃을 미술관이라는 낯선 프레임 안으로 초대함으로써 관객들이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타인의 삶을 새로운 존재로 인식하게 유도한다.

전시 현장에는 관람객의 깊이 있는 이해를 돕기 위해 시민 전시해설사(도슨트: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가 상주한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해설사로 참여함으로써 예술이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닌 지역사회의 공유 자산임을 확인시킨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매월 첫째 주와 셋째 주 일요일은 휴관한다. 별도의 관람료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입장해 시장의 어제와 오늘을 잇는 예술적 기록을 마주할 수 있다.

제천문화재단 측은 이번 기획전이 단순한 사진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한다. 시장이라는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사람’의 모습과 그들이 쌓아온 시간을 예술적 데이터로 구축하는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이는 지역 소멸 위기 속에서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지역 예술의 자생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 통로를 걷다 마주치는 작은 미술관은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에게는 뜻밖의 휴식을, 예술가들에게는 지역 밀착형 창작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실험적 무대가 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이번 전시가 지역 주민의 삶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을 물리적으로 확장하는 과정이라며 앞으로도 제천중앙시장이 지닌 역사적 맥락을 예술로 재해석하는 시도를 지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문화적 도시 재생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제천 작은 미술관 175의 이번 행보는 전통시장의 유휴 공간이 어떻게 지역의 자긍심을 높이는 문화 자산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전시는 6월 14일까지 한 달간 이어지며 제천의 삶과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을 확인하고 싶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기다린다.

home 이윤 기자 eply69@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