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군대' 타령하기 전에 제대로 된 '대우'가 먼저...한계점 온 예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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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예비군 사고, 이미 분노는 임계점
1993년 6월 10일. 경기도 연천 예비군 훈련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현역장병 3명과 예비군 17명이 사망했다.
2015년 5월 13일.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소재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송파·강동 동원예비군 훈련장에서 일어난 총기난사로 가해자를 포함해 예비군 3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2026년 5월 13일. 경기도 포천 육군 73사단 예비군훈련장에서 동원훈련을 받던 예비군 1명이 이날 저녁 7시쯤 쓰러져 사망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늑구(대전 오월드에서 탈출했다 포획된 늑대)보다 못한 대접 받는 한국 예비군"이란 자조가 급속히 퍼졌다.
세월이 흘러도 계속 되는 예비군 사고와 서서히 차오르고 있는 분노. 한국 예비군은 어디쯤 와있을까?

"국가가 부르면 군말 없이 간다"는 것도 다 옛날 얘기
요즘 예비군 훈련 통지서 나오면 가슴부터 턱 막히는 게 현실이다. 다. 20대 청춘 바쳐서 군대 다녀왔더니, 사회 나와서도 몇 년 동안 일 멈추고 학업 멈춰가며 예비군으로 끌려가야 하니까. 국가 안보를 위해 일터를 비우고 학업을 멈춘 대가는 고작 하루 만 원짜리 교통비와 부실한 안전망뿐이다. 평시에는 남의 집 귀한 자식, 전시에는 값싼 소모품으로 취급받는 275만 예비군의 현실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그런데 최근 국방부가 들고나온 카드는 뜬금없게도 '상비군 수준의 예비군 정예화'다. 인구 절벽으로 현역 상비병력이 급감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니, 유사시 즉각 투입할 수 있도록 예비 전력의 훈련 강도를 높이고 과학화 장비를 도입하겠다는 게 국방부의 공식 입장이다. 취지는 거창하지만 현장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예비군은 매일 체력 단련을 하는 현역 군인이 아니다. 일상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직장인, 밤샘 공부를 하는 대학생, 생계를 위해 뛰는 자영업자들이다. 이들의 신체적 조건과 피로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보여주기식 성과를 위해 무리하게 강도를 높인 훈련 기조는 현장 참가자들에게 극심한 부담을 주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들여다 보면 2030 남성들 여론은 이미 폭발 직전이다. "우리가 노예냐", "국가가 부를 땐 애국 자식, 다치면 너희 자식, 죽으면 누구세요냐" 같은 뼈 때리는 말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회사 눈치 보며 겨우 시간 내서 갔는데 날씨나 개인 건강 상태는 고려하지 않고 통제만 앞서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다. 몸이 안 좋다고 하면 의지박약 취급이나 하니, 다들 속으로 '여기서 다치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으로 몸 사리기 바쁘다.

턱없이 부족한 비용 지원...점점 올라가는 훈련 강도
대한민국 예비군은 대략 275만 명으로, 휴전 국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전쟁 발생 시 초기 전력을 보충하고 후방을 방어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직이다. 법적으로 병역 의무를 마친 남성들은 전역 후 8년간 예비군에 편성되어 매년 동원훈련이나 동미참훈련 등에 참여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의 시간과 기회비용을 쳐주는 꼴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하루 일당 수십만 원 날리고 온 자영업자나 직장인 연차 수당에 비하면 보상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국방부도 보상비가 현실에 미치지 못함을 인정하고 지속적으로 인상안을 추진 중이라지만, 예산 편성의 한계 때문에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교통비나 식비도 실제 이동 비용을 완벽히 보전하기엔 미흡한 실비 수준이다. 군 당국은 의무 인력 배치 등 안전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장에서는 전문 의료 장비나 응급 대처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사실상 내 돈과 시간을 써가며 강제 징용당하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국방부가 인구 감소를 이유로 들며 예비군의 역할을 키우고 싶다면, 훈련 강도부터 올릴 게 아니라 예산 확보와 안전 체계 구축을 선행하는 게 상식이다. 응급 상황 발생 시 즉각 대처할 수 있는 전문 의료 인력과 장비를 현장에 촘촘하게 배치하고, 폭염 같은 가혹한 기후 상황에서는 통제관의 재량으로 훈련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융통성부터 배워야 한다.
육군 측은 최근 포천 예비군 사망 사건에 대해 브리핑하면서 "사망자가 쓰러진 건 저녁 시점이라, 폭염과는 무관"이라고 말했다. 수십만 예비군이 듣고 싶은 말은 단순히 이런 게 아닐 것이다.
예비군을 세상에서 제일 값싼 대체재로 보는 그 고질적인 마인드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앞으로 누가 국가를 믿고 총을 잡겠는가. 청년들의 저렴한 희생 위에 세워진 안보는 모래성과 같다. 예비군을 부리기 전에 의무에 걸맞은 예우와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