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탐구생활] "이 문구 들어간 통장으로 입금하지 마세요... 전세보증금 다 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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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명 도용한 '삼행시 단체통장' 사기, 8억 원대 피해까지
금감원, 은행 송금화면에 '(단체)' 표시로 전세사기 방지
임차인 김모씨는 집주인으로부터 임대차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공인중개사의 말을 믿고 그가 알려준 임대인 명의의 통장으로 임차보증금을 송금했다. 이후 임대인으로부터 임차보증금을 받은 적 없다는 통보와 함께 보증금을 돌려받지도 못하고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금융감독원이 개인의 이름을 교묘하게 본뜬 임의단체 명의의 계좌를 이용한 신종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8일 이같은 내용의 소비자경보 주의 등급을 발령했으며 개인 성명처럼 보이는 임의단체 명의의 계좌가 전세사기 및 보이스피싱 등 각종 금융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 금융실명법상 고유번호증을 발급받은 임의단체인 동창회나 친목회 등은 해당 단체명으로 금융회사에서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사기범들은 이 같은 제도의 허점을 노려 악의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삼행시 단체통장 수법이라고 불리는 이 사기 방식은 먼저 개인의 이름을 각 글자의 앞머리로 하는 문장을 만든다. 예를 들어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타깃으로 한다면 '홍은동에서 길을 넓히는 동민들의 모임'이라는 형태로 임의단체를 설립한 후 단체명을 '홍길동'으로 등록해 계좌를 개설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계좌는 송금 화면에서 개인 계좌와 구별이 거의 불가능하다.
실제 발생한 전세사기 사례는 이 같은 수법이 얼마나 교묘한지를 보여준다.
공인중개사 A씨는 임대인 B씨로부터 부동산 관리 권한을 위임받은 후 임대인에게는 월세 계약을 체결했다고 거짓 보고를 했다. 그리고 임대인 B씨의 이름을 딴 허위 임의단체를 설립해 단체 통장을 개설했으며 이를 진정한 임대인의 계좌인 것처럼 속여 임차인들을 기망했다. 결국 임차인들로부터 약 8억 원의 전세보증금을 송금받아 가로챘다. 임차인들은 송금 시 표시되는 계좌주명이 계약서상 임대인 성명과 일치했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 없이 돈을 보냈다가 큰 피해를 입게 됐다.
이 같은 삼행시 단체통장 사기는 송금 화면에서 보게 되는 계좌주 이름을 정상적인 거래 상대방으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기존의 교묘한 피싱 수법들과 맥락을 같이한다.
동명이인 사칭 피싱 수법의 경우 보이스피싱 조직이나 중고거래 사기꾼들이 피해자의 지인 또는 공신력 있는 인물과 이름만 같은 동명이인의 대포통장을 구해 범죄에 활용한다. 피해자는 동명이인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이름만 보고 송금하게 되는 것이다. 법인명 사칭 피싱 수법도 유사한 원리로 작동한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이름을 미세하게 변형하거나 법인 형태를 속여 계좌를 만드는 방식으로 개인이 주식회사 OOO와 유사한 개인사업자나 임의단체를 만들어 투자금을 편취한다. 이 같은 수법들은 설마 이름이 똑같은 가짜 단체일 리 없다는 소비자의 심리적 허점을 노린다.
금감원은 금융소비자의 일반적인 예방 노력만으로는 이 같은 착시 사기를 피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금융회사의 계좌관리 방식을 즉각 개선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임의단체가 계좌를 발급받을 때는 단체명 옆에 반드시 (단체)라는 음절이 부기된다. 송금 화면에 홍길동이 아닌 홍길동(단체)으로 표시되게 함으로써 소비자가 개인이 아닌 단체 계좌임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은행권은 오는 6월 중 시행할 계획이며 중소금융권 역시 순차적으로 시스템을 개선할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전세보증금 등 거액을 송금할 때 거래 상대방이 개인임에도 계좌명 옆에 (단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면 개인이 아닌 단체 계좌이므로 절대 송금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