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체온은 36.5도인데 왜 28도만 돼도 더위를 느끼는 걸까

작성일

인체는 열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발열 기관'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29일 서울 최고 기온은 28도였다. 아직 6월도 되기 전인데 이렇게 벌써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본격적인 여름이 되면 기온이 체온(36.5도)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으로 치솟는 날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혹시나 이런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기온이 체온이랑 똑같은데 왜 이렇게 더운 거지? 온도가 같으면 안 더워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람은 왜 체온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도 더위를 느끼는 것일까. 인체가 열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발열 기관'이기 때문이다.

■ 인체는 가만히 있어도 ‘열’을 만든다

사람의 몸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열을 생산한다. 심장이 뛰고, 폐가 호흡하고, 간이 대사 작용을 하고, 뇌가 신호를 처리하는 모든 과정에서 에너지가 소모되고 그 부산물로 열이 발생한다. 성인 남성이 완전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 즉 기초대사 상태에서도 시간당 약 70~80와트(W)의 열을 만들어낸다. 60와트짜리 백열전구 하나를 켜놓은 것과 비슷한 열량이 몸 안에서 쉼 없이 발생하는 것이다. 걷거나 운동을 하면 이 수치는 순식간에 수백 와트로 치솟는다.

이 열을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면 체온은 계속 올라간다. 체온이 40도를 넘어서면 단백질이 변성되기 시작하고, 42도 이상이 지속되면 뇌 손상과 장기 부전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인체는 이를 막기 위해 체온 조절 시스템을 항상 가동한다.

■ 인체가 열을 방출하는 ‘네 가지 방법’

인체가 열을 밖으로 내보내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다. 복사(Radiation), 전도(Conduction), 대류(Convection), 그리고 증발(Evaporation)이다.

복사는 적외선 형태로 열을 주변 공간에 방출하는 방식이다. 손바닥을 얼굴 가까이 가져가면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이 바로 복사열이다. 전도는 피부가 더 차가운 물체에 직접 닿아 열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차가운 금속 의자에 앉으면 시원한 이유다. 대류는 피부 주변의 공기가 데워져 위로 올라가고 새로운 찬 공기가 유입되면서 열이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바람이 불면 시원한 이유가 여기 있다.

문제는 기온이 체온에 가까워지면 이 세 가지 방법이 모두 무력해진다는 점이다. 복사는 주변 온도가 피부 온도(약 33~35도)에 가까워지면 방출량이 급감한다. 전도는 앉거나 기대는 물체가 이미 뜨거워져 있어 열을 흡수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받게 된다. 대류도 주변 공기가 피부보다 뜨거우면 열을 빼앗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받아들이게 된다.

■ 마지막 열 방출 수단은 바로 ‘땀’

결국 기온이 체온에 근접하거나 초과하는 상황에서 인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열 방출 수단은 증발, 즉 땀이다. 땀이 피부 표면에서 기화하면서 열을 빼앗아 간다. 물 1그램이 증발할 때 약 2430줄(J)의 열을 가져간다. 이 기화열 덕분에 땀을 흘리면 실제로 체온이 내려가는 효과가 생긴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그러나 땀도 만능은 아니다. 땀이 제대로 증발하려면 공기 중의 습도가 낮아야 한다. 습도가 높으면 공기가 이미 수증기로 포화돼 있어 땀이 잘 증발하지 않는다. 땀은 그냥 피부 위에 맺혀 흘러내릴 뿐, 기화열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 이것이 '체감 온도'가 실제 기온보다 훨씬 높게 느껴지는 이유다. 기온 33도에 습도 80%인 날의 체감 온도는 40도를 훌쩍 넘는다. 한국의 여름이 특히 고통스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온 자체보다 고온다습한 조합이 문제다.

■ 기온이 체온을 넘어서면 무슨 일이...

기온이 36.5도를 넘어 37도, 38도로 올라가면 상황은 더 악화한다. 이제 복사·전도·대류를 통해 열을 방출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해지고 오히려 환경에서 열을 흡수하게 된다. 땀 증발만이 유일한 탈출구인데, 직사광선 아래에선 태양 복사열까지 피부에 직접 가해진다. 이때 인체는 극도로 빠른 속도로 땀을 만들어내야 하고, 그만큼 수분과 전해질 손실이 급격히 커진다. 제때 수분을 보충하지 않으면 탈수가 오고, 탈수가 심해지면 땀 분비 자체가 줄어 체온 조절 시스템이 무너진다. 이것이 열사병이다.

노인과 어린이, 만성질환자가 폭염에 특히 취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인은 땀샘 기능이 저하돼 같은 더위에도 땀을 덜 흘린다. 어린이는 체표면적 대비 체중이 커서 외부 열을 더 많이 흡수한다. 심혈관 질환자는 혈액순환을 통해 체내 열을 피부로 전달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 왜 그늘에 있으면 시원함을 느낄까

기온이 같아도 그늘에 들어가면 확연히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원리다. 직사광선 아래에서는 태양 복사에너지가 피부에 직접 닿아 기온 이상의 열부하가 가해진다. 맑은 날 한낮 태양 복사 강도는 약 1000와트/㎡에 달한다. 그늘에 들어가면 이 복사열 부담이 사라지기 때문에 기온이 같아도 체감 온도가 크게 낮아진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도 대류 효과로 피부 주변의 더워진 공기층이 걷혀 열 방출이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정리해보자. 기온과 체온이 같아도 더운 이유는 인체가 끊임없이 열을 생산하는 발열체이기 때문이다. 외부로 열을 방출해야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데, 기온이 체온에 가까워질수록 복사·전도·대류를 통한 열 방출이 막히고 땀 증발에만 의존하게 된다. 습도까지 높으면 그 마지막 수단마저 효율이 떨어진다. 결국 온도계 숫자가 아니라 몸이 열을 얼마나 잘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느냐로 더위 여부가 결정된다. 이날엔 28도로도 충분히 더웠다. 굳이 기다려보지 않아도 기온이 체온과 같아지는 때가 오면 더위 수준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