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컴퓨터 회사인 줄 아는 한국인들이 대다수인데... 미국시장이 발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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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회사서 AI 인프라 기업으로... 델의 '극적 변신'
분기 매출 88% 급증... AI 서버 757% 폭증의 비결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델(Dell)은 여전히 PC 회사다. 2000년대 초반 한국 신문에는 델의 전면 광고가 자주 실렸다.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한 데스크톱과 비즈니스 노트북으로 유명한 회사였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귀사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는 카피와 함께 델은 한국의 개인 및 기업 시장을 거세게 두드렸다. 당시 델의 무기는 가격이었다. 별도 매장 없이 온라인·전화 주문만으로 PC를 판매하는 방식 덕분에 유통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었고, 그 차이가 가격표에 그대로 반영됐다. 2002년 국내 시장 점유율 0.6%에 불과하던 델은 2004년 3%, 2007년에는 6%까지 치고 올라왔다. 한때 델은 2010년까지 점유율 13%로 3위에 오르겠다는 계획까지 공언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한국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춰 세계 최초로 용산에 AS 센터를 열기도 했다. 결국 삼성전자·LG전자 같은 국내 대기업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한국 시장에서 존재감을 잃었지만 델이 한때 한국 PC 시장을 꽤 깊숙이 파고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시절 델만 기억하는 한국인들이라면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 뉴욕 증시에서 벌어졌다. 29일(현지시각) 델 테크놀로지스 주가가 하루 만에 32.76% 폭등하며 역대 최고 상승폭에 근접했다.
노트북·데스크톱 회사 델과 이날 뉴욕 증시를 뒤흔든 델 테크놀로지스는 부모와 자식 관계다. 델 테크놀로지스는 우리가 아는 델 컴퓨터의 모회사다. 1984년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마이클 델이 창업한 이 회사는 2016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술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완전히 다른 회사로 탈바꿈했다. 당시 델은 데이터 스토리지 분야의 거인 EMC를 670억 달러에 인수했다. 기술 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였다. 이 과정에서 EMC가 보유하고 있던 VM웨어 지분까지 흡수하면서 델 테크놀로지스는 PC 제조사가 아닌, 데이터센터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IT 인프라 기업으로 재편됐다.
지금 델 테크놀로지스의 사업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하나는 우리가 아는 노트북과 데스크톱을 만드는 클라이언트 솔루션 그룹, 다른 하나는 기업과 데이터센터에 서버·스토리지·네트워크 장비를 공급하는 인프라 솔루션 그룹이다. 이날 뉴욕 증시를 발칵 뒤집은 것은 후자였다.

델 테크놀로지스가 전날 장 마감 후 발표한 2026 회계연도 1분기 실적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분기 매출은 438억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88% 급증했다. 그 중에서도 AI 서버 매출은 161억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757% 폭증했다. 주당 조정 순이익은 4.86달러로 시장 예상치 2.94달러의 두 배에 육박했다. 분기 동안 쌓인 AI 서버 수주 잔고는 513억 달러에 달했다. 델 테크놀로지스는 2027 회계연도 연간 매출 전망치를 기존 1400억 달러에서 최대 1690억 달러로 대폭 올려잡았으며, AI 서버 매출만 6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메리우스 리서치의 기술 담당 수석 애널리스트 벤 레이체스는 "델의 이번 분기 실적 같은 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AI 서버란 챗GPT 같은 대형 언어 모델을 학습시키고 구동하는 데 필요한 초대형 컴퓨팅 시스템이다.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만드는 GPU(그래픽처리장치) 수천 개를 하나로 묶어 데이터센터에 납품하는 것이 델 테크놀로지스의 핵심 사업이 됐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AI 인프라 구축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고, 그 상당 부분이 델의 수주 잔고로 쌓이고 있다.
저렴한 데스크톱을 소개하는 광고를 내며 소비자들을 공략하던 회사가 이제는 분기에만 AI 서버를 161억 달러어치 파는 기업이 됐다. 델 테크놀로지스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234% 올랐다. AI 흐름을 타고 세상이 이렇게 바뀌고 있다.
델의 실적 발표는 AI 데이터센터 관련 종목 전체를 끌어올렸다. 경쟁사 휴렛팩커드는 12.64% 급등했고, 슈퍼마이크로컴퓨터는 11.60%, 오라클은 10.84% 각각 올랐다. AI 전환 우려로 약세를 이어왔던 소프트웨어 업종도 강세로 돌아섰다. 세일즈포스는 8.47%, 서비스나우는 14.38%, 어도비는 7.36% 각각 올랐다.
결국 이날 뉴욕증시 3대 지수는 모두 사상 최고치를 다시 썼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363.49포인트(0.72%) 오른 5만1032.46에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16.43포인트(0.22%) 오른 7580.06에, 나스닥 종합지수는 55.15포인트(0.20%) 오른 2만6972.62에 각각 마감했다. S&P 500 지수는 이날 상승으로 9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2023년 12월 이후 가장 긴 연속 상승 행진이다.